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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ckMatter Jun 10. 2024

100bpm, 100fps

SLOWMO - 양홍원 리뷰


SLOWMO

양홍원

2024. 05. 24

Best Tracks JEALOUSYVALHALLA, SAHARA, GOSLOW






Review by BlackMatter

★★★☆ 3.5/5


인간은 스틸컷으로 삶을 기억해나간다. 순간의 이미지를 모아 장면을 기록하고, 이 스틸컷을 모아 엮어낸 플립북으로 삶을 정의하는 것이다. 어느덧 랩 10년 차에 접어든 양홍원은 그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 SLOWMO로 타인과는 다른 삶을 기억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제시해 온다. 하나의 사진으로 담아낸 순간의 단편적 이미지가 아닌 영상으로, 그것도 100fps의 슬로우 모션으로 삶을 기록하여 관조하자는 것이다. 느리게 보는 만큼 정확하게 곱씹을 수 있고, 결국 이로 하여금 암흑기를 버텨낼 수 있기에.

이토록 진지하고 자아 성찰적인 테제를 설파하는 데에 양홍원은 결코 멀끔히 닦아진 포장도로를 걷지 않았다. 유사한 서사를 담은 예술 작품에서 으레 사용되는 사뭇 진지하고 우울한 어조보다는 유머러스하며 때로는 천박하기까지 한 가사를, Emo 스타일의 감정적이고 몽환적인 비트보다는 Reggaeton과 Moombahton이라는 댄스 장르를 선택한 것이다. SLOWMO의 비트는 대부분 이와 같은 레게 Dance 계열의 타입 비트와 양홍원, 그리고 BANGJAHAIF, kwakseungeon 등의 프로듀서의 손에서 태어난 비트로 이루어져 있다. 레게에서 파생된 장르들이 뒤얽힌 앨범인 만큼 킥과 스네어, 퍼커션으로 이루어진 특유의 리듬이 만드는 흐릿하면서도 흥을 돋우는 바이브는 양홍원이 밝힌 의도에 따라 진지한 속마음을 담은 편지를 유쾌한 글귀로 써내린다. 특정 장르의 채택과 같은 다분히 의도적인 음향적 장치들은 앨범 전체에서 계속되어 발견된다. 뭄바톤 장르의 24YB (Intro)에서 뭄바톤 리듬이 아닌 킥에 맞춰진 강한 댐핑의 래핑은 댄서블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뱅어 플레이리스트의 그것과 유사한 본 믹스테이프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담아내는 서론과 같은 역할을 해준다. 또한, 기존의 깊게 박아 넣는 래핑 스타일과 혼재하는 얕고 짧은 랩 디자인은 느린 템포의 곡들로 이루어진 구성에도 불구하고 속도감을 유지하며 지루함을 방지하기도 한다. JEALOUSYVALHALLA에 사용된 리버브 또한 미니멀한 비트 위에서 양홍원의 래핑과 결합하여 음향적 충만함을 충족해 주고, 혼탁한 가사들로 작품이 과하게 무거워지고 깊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뱅어 트랙의 형성은 근데와 같은 트랙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Euro Synthpop 속 두드러지는 클랩과 신디사이저가 자아내는 복고적 감상은 느린 템포 속에서도 댄서블한 무드를 만들어내며 앨범의 유흥성을 끌어올린다. Aftrobeats의 리듬이 진동하여 만들어내는 파도 위 몸을 맡긴 듯한 색깔별로 하얀걸로 (feat. KOVV) 또한 로우톤과 하이톤의 더블링으로 디자인해 가는 무드와 개별의 질감으로 믹싱 된 피처링을 통해 강한 청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SLOWMO의 가장 선명하고 거대한 강점이자 특징은 아티스트 본인의 퍼포먼스이다. 극단적으로 낮고 허스키한 톤과 과거 붐뱁 스타일 속 강한 댐핑, 그리고 <오보에>의 Emo 싱잉 랩 스타일의 멜로디 메이킹을 섞어 만들어낸 래핑은 레게 기반의 비트들에 얹어져 국내 힙합 앨범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셀렉된 타입 비트 위에 자신만의 래핑을 얹어냄으로써 정석적인 음악적 교보재를 가진 장르에서 한국어로 자신만의 그루브를 만들어냈다는 점은 이제 10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 래퍼의 숙련도와 그동안 거쳐온 연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게 해준다. 뭄바톤과 레게톤의 리듬에 얹어진 퍼포먼스들에 대한 레퍼런스에 이끌려가지 않고 자신의 그루브를 고집해 나가며 결국 청자에게 청각적 쾌감을 증여하는 것은 결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업적이다. 이를 장르의 근원지의 언어가 아닌 지구본 반대편에 위치한 국가의 언어로 이뤄냈을 때 그 대단함은 배가 된다. 연음과 동음이의어라는 한국어의 특성을 이용한 양홍원의 래핑이 생성해 내는 멜로디 또한 전작들부터 꾸준히 두드러지는 강점이다. 비트와 랩 스타일에 상관없이 양홍원의 톤과 댐핑은 반복적이지 않으면서도 뇌리에 박히는 멜로디 라인을 생성해 내는 데에 그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이는 앨범과 트랙의 작품성을 떠나 유흥성에 크게 기여한다. 또한 하나의 단어를 분리하여 다른 단어들과 이어 나감으로써 만들어내는 특유의 음절 분리법은 리드미컬함이 중요한 요소인 레게 기반 비트를 만나 잠재력을 발화한다. 특히 SAHARAGOSLOW와 같이 전작의 프로듀싱에서 돋보이던 공간감에 뛰어난 멜로디 메이킹을 혼용한 트랙들은 앨범의 하이라이트로 손꼽히며 청각적으로도 작품적으로도 가장 큰 성과를 보여준다.

다만 청자로써 끊임없이 묻게 되는 것은 과연 이러한 라틴을 만난 코리안이라는 방향성이 창의성과 실험성의 가치를 넘어 작품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냐는 것이다. 자기 복제를 선택하지 않고 또다시 음악적 변화를 꾀한 것은 분명 양홍원이라는 아티스트의 발전 가능성과 천재성, 음악적 성숙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레게 기반의 비트와 양홍원의 새로운 래핑은 참신함을 넘어 트랙의 감정에 청자를 흡수시키는 경험에 이르기까지에는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앨범의 하이라이트라고 느껴지는 SAHARA와 같은 트랙이 새로움을 향한 강박이 가장 적게 느껴지는 트랙이라는 점 또한 이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복제에 대한 기피가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였으나, 순수하지 않은 착공의 의도가 단단하지 않은 내실로 이어진 것이다. 전작에서 지적받음과 동시에 칭송받던 양홍원 특유의 난해한 리릭시즘 또한 오보에와는 달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과 시계 등의 모티프에서 드러나는 단번에 이해하기 어렵지만 번뜩이는 재치가 담긴 트랙 간의 얽히고설킨 서사와 비유가 가득했던 오보에의 가사는 청자가 직접 해석해 나가고 의미를 부여하며 작품에 애착을 가지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러나 SLOWMO의 가사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서사와 동음이의어라는 한국어의 특징에서 자라난 해석의 다양성과 깊이보다는 개인적이면서도 동떨어진 단어들의 선택과 조합에 있다. 양홍원이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본작은 청자의 이해를 얻기 위한 서사를 가진 앨범은 아니다. 그렇기에 스튜디오 앨범이 아닌 믹스테이프라는 매체를 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수 있는 청자의 이해와 공감을 얻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뚜렷한 메세지를 담은 앨범에게는 커다란 흠결로 작용하기도 하며, 본 작품이 실험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발전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긴다. SLOWMO의 발매까지 잦은 연기와 유출로 인해 더해진 피로감은 이 아쉬움이 실제의 그것에 비해 과장되어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청자가 해석해 내야 할 점은 과연 SLOWMO라는 믹스테이프에 담긴 양홍원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제목의 의미에서 드러나는 메시지가 맞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하고 심오한 메시지가 중심이 되는 듯한 본 믹스테이프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추가적인 몇 가지의 아티스트의 인터뷰와 음향적 특성이 주장하는 가장 유력한 의도는 우리나라에서 꾸준히 경시 받아오던 댄스 뮤직에 힙합을 결합한 음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다수의 DJ에게서도 지적받았듯, 국내의 댄스 음악은 ‘춤’에 대하여 한국인이 느끼는 거리감에 의해 유럽과 미국 등의 지역에 비해 더디게 발전되어 왔다. 특유의 유교 문화에서 영향을 받아 고착된 듯한 이러한 특징은 글로벌 차트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라틴 계열 음악의 발전이 국내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데에 일조했다. 그리고 양홍원은 자신의 두꺼운 팬층과 스타성을 이용해 뭄바톤과 레게톤, 아프로비츠와 힙합을 사용한 SLOWMO를 한 장르의 도입과 부상을 일으켜내기 위한 비기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SLOWMO라는 믹스테이프의 진정한 목적일 때, 본작의 음향적 장치와 양홍원의 퍼포먼스는 그 어느 ‘장르 문익점’으로 불리는 아티스트들의 앨범보다 성공적이고 효과적인 것일 수 있다.

이처럼 SLOWMO의 강점과 약점은 플로팅 칵테일만큼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 청자의 취향에 따라 이 강점과 약점이 강조되는 정도가 다르며, 아티스트가 자신의 첫 믹스테이프에 담은 메세지에 대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기에 본작에 대한 만족도가 굉장한 간극을 가진 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다행히 모든 예술품의 가치가 오직 작품성과 완성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청자의 취향과 가치 부여가 무게추의 어떤 쪽에 쏠려 있다고 하더라도 SLOWMO가 가지는 선구자적인 가치는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앨범이 발매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현재, 어쩌면 정확한 가치 판단을 위해 택해야 할 자세는 서둘러 내리는 단적인 판단이 아니라 본 작품이 댄스와 힙합을 결합시킨 장르에 미쳐올 영향을 ‘제 속도대로’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이 남들에게 느리고 답답한 슬로모션처럼 보이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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