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
이 시는 행복한 시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사랑의 본질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 꼭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랑을 한 번이라도 주어 본 사람이라면
혹은 사랑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선물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큰 상처를 받고 버림받았다고 좌절한다.
하지만 사랑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놓인 저울과 같아서
우리가 저울에 올라서는 순간, 수평을 이루며
그 사랑을 지켜가기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