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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Jul 12. 2024

배를 매며

장석남

아무 소리도 없이 말도 없이

등뒤로 털썩

밧줄이 날아와 나는

뛰어가 밧줄을 잡아다 배를 맨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배는 멀리서부터 닿는다

사랑은,

호젓한 부둣가에 우연히

별 그럴 일도 없으면서 넋 놓고 앉았다가

배가 들어와

던져지는 밧줄을 받는 것

그래서 어찌할 수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

잔잔한 바닷물 위에

구름과 빛과 시간과 함께

떠 있는 배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랑이란 그런 것을 처음 아는 것

빛 가운데 배는 울렁이며

온종일 떠 있다




이 시는 행복한 시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사랑의 본질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 꼭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랑을 한 번이라도 주어 본 사람이라면

혹은 사랑을 한 번이라도 받아본 사람이라면

사랑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 선물을 빼앗기거나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큰 상처를 받고 버림받았다고 좌절한다. 

하지만 사랑은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놓인 저울과 같아서

우리가 저울에 올라서는 순간, 수평을 이루며

그 사랑을 지켜가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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