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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포드 Nov 09. 2024

행성 미러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이란 스스로도 다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수많은 '면'을 가지고 있는 '미러볼'과도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따라서 언제 어느 면이 빛을 받아 어떤 색으로 빛날지 모르는 무작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미러볼들과 함께 빙글빙글 공전도하고 자전도 하며 '관계'라 불리는 하나의 은하를 형성하며 살아가게 된다.


서로 부단히도 당겼다 놓았다 중력을 주고받으며 자신과 같은 빛을 내는 형제 행성은 아닌지 확인을 거듭하던 끝에 자신과 꼭 닮은 새하얀 빛을 내는 행성을 발견한다. 중력을 한껏 발산해 서로를 끌어당기고 마주 보며 빙글빙글 돈다. 온 은하가 자신들의 것이 된 듯 아름답고 행복하다.


하지만 계절은 언젠가 두 행성의 회전축을 슬며시 비틀어 놓기 마련이고 그 비틀린 각도를 통해 미러볼들은 숨겨져 있던 무수한 면을 드러내면서 사실은 서로가 새하얀 행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몰랐던 면 중에는 빨갛게 빛나는 부분도 보이고 그 옆에는 푸르스름하기도 하다. 조금 더 비틀면 시커먼 색을 띠는 면도 있을지 모르겠다.


섣불렀던 미러볼들은 끝내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상처를 안은 채 서로 간의 중력의 끈을 놓아 버리고 은하계 저편으로 궤도를 이탈하여 뿔뿔이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우연히 같은 은하에 편입되었으나 각자가 서로를 처음 마주 보며 든 생각은 '너는 너무 빨갛고' 그러는 '너 역시 너무 파랗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어느새 비틀려 보이기 시작한 각자의 뒷면에는 서로 미리 꼭 맞춘 듯 같은 색으로 빛나는 금빛 대륙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역시 이 넓은 은하에 지름길이나 정답이란 없다. 서로 당겼다 놓기를 반복하며 때로는 안고 싶어 다가간 것이 태양인 줄도 모르고 그을리기도 하며 사랑, 증오, 슬픔, 후회 속에서 자신만의 최적화된 궤도를 찾아내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저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미처 빛내지 못한 채 숨어있을 나의 면들이 이 은하를 끝까지 그리고 무사히 향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궤도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것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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