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시도(1)_직장인 사춘기
이대로 노력하면 훌륭한 MD가 된다는 평가 코멘트는 내겐 칭찬보다는 요한계시록의 절망적 예언 같았다. MD가 못난 직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외부에서 그럴듯해 보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직무이다.
나는 약 2년여간 방송MD 일을 하면서 나는 잠깐이지만 처음으로 TV에도 출연해 보고, 구찌 등 명품 브랜드의 신규 F/W 아이템 소싱을 위해 해외출장도 몇 번이고 다녀오는 호사를 누렸다. 어릴 때부터 TV에서 줄곧 봐왔던 연예인과 브랜드 기획미팅을 수차례 진행한다든지, 초청인 자격으로 패션쇼도 몇 군데 참석해 보게 되었다. 물론 당시의 나와 내 동기들은 신입사원이었기에, 이들 중 주도적으로 진행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보조하는 역할만이었지만, 철없는 사회 초년생들이 이른바 방송 뽕에 취하기엔 충분한 환경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하는 경험들이 신기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바이어라고 적힌 명찰을 걸고 밀라노의 쇼룸에 입장할 때는 설레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계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동기들이 이 세계에 깊이 몰입하는 동안, 나는 표면적으로만 참여하고 있었다.
내 동기 중 한 명은 방송 쪽 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최고의 입사 난이도를 자랑하던 회사를 관두고 온 중고신입도 있었다. 나의 흥미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서 10년을 더 근무한들 적성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지금껏 내 인생의 여정을 문을 여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떤 특별한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우선 문을 열고 나서 고민하는 삶이었다. 많은 고등학교 교사들이 ‘그런 건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어’라 이야기하듯, 일단 어딘가에 들어가고 나서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이미 연 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걸 들여다본들 특별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난 이제 겨우 나와 맞지 않는 일이 무엇인지 찾았을 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혀 알지 못했다.
고민을 안고 강남역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는 대학교 ROTC 동기로 S전자에 재직 중이었다. (임원면접에서 존경하는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이야기한 내게 미친X끼라 일갈했던 그 친구다)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전 쪽 사업부에서 근무하던 그 친구의 고민이 참 인상적이었다. 회사가 워낙 크다 보니 구조상 말도 안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예컨대 그 친구가 속한 팀을 남미 담당이라 하자. 매주 월요일 오전에 주간 실적이 집계되어 보고된다. 운이 없게도 실적은 저조했고 보고받은 임원은 길길이 날뛴다. 오후 2시까지 대책을 보고하라는 서릿발 같은 지시가 떨어진다. 현지 주재원에게 협조를 구해야 하는데 시차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하다. 현지는 아직 한밤중인 것이다. 결국 현장과 아무런 소통 없이 소설 같은 대책이 마련되어 보고된다. 상상만으로 작성된 기획안이 현장에서 먹힐 리가 없다. 실적은 또 망가진다. 다음 주 월요일,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대충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이야기하며, 그 친구는 본인을 영화 베테랑의 유해진과 같은 처지라 말했다. 유아인(조태오)의 기행과 실수에 화가 난 조 회장은, 유아인 대신 유해진(최상무)을 팬다. 조 회장에게는 단지 화풀이 상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임원은 분노를 표현할 샌드백이 필요했고, 친구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한다. 누구나 각자가 받는 월급만큼의 사회적 결함을 감당해 내는 것이다.
어딜 가도 똑같은 거구나. 결국 월급 받고 일하는 한 누군가 만든 구조적 모순에 기생하는 삶에 불과하다. 이럴 거면 업종을 아예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짧은 인생에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던가? 말할 것도 없이 대학생 시절이었다. 그럼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을까? 난 군대 중위시절 대대 인사장교로 복무했고, 그때 당시 루틴한 업무를 효율화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더랬다. 겨우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가벼운 결론을 내렸다. 대학으로 가자.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는 건 너무 힘드니 교직원이 되자. 에너지와 생기가 넘치는 교정에서 후배 대학생들을 지원하고, 행정업무를 효율화하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렇게 이직처가 정해졌다.
입사 3년 차는 그야말로 이직의 적기이다. 일단 받는 회사에서 부담이 없다.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대부분 3년 차 정도면 회사생활의 기본적 이해와 비즈니스 매너를 갖추고 있다. 신입사원으로서 어떠했는지는 평판조회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 무엇보다 아직 승진을 경험하기 전이므로 연봉이 초임에 머물러 있다. 즉 연봉협상이 용이하다. 또한 경력이 짧아 인정기준에 미달할 경우, 후려쳐서 중고신입으로 뽑으면 그만이다.
또한 지원자 입장에서도 가장 많이 흔들릴 시기이다. 당시의 나처럼 배치받은 직무에서의 성장 한계점을 고민하거나 본인 적성에 맞는지 혼란스러움이 찾아올 시기이다. 팀 선배들이 이직하거나 승진을 누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조직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쳐보기도 한다.
한국인들이 3을 좋아해서인지, 3개월과 3년이 보통 직장인 사춘기를 맞이하는 시기로 묘사된다. 내가 종종 인용하는 웹툰 ‘미생’에서는 장백기를 통해 직장인 사춘기에 대해 짤막하게 그려낸다.
숫자 3개월/3년은 최소한의 익숙해짐을 의미할 것이다. 처음 입사해서 정신이 없을 때는 ‘언제쯤 익숙해지나’ 싶다가도 막상 일이 손에 잡히면 역설적이게도 일의 재미는 반감된다. 입사 3개월 만의 익숙해짐은 아마도 섣부른 감정이다. 아직 내가 아는 게 뭐고 모르는 게 뭔지에 대한 감조차 없기 때문에 익숙해졌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반면 입사 3년 차 이상이 겪는 익숙해짐은 권태를 야기한다. 권태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이직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굳이 극단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이직 외에도 고려할만한 대안이 많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평생 하는 이직 횟수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몇 회가 한도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직 횟수가 너무 잦은 건 개인의 커리어에 틀림없는 마이너스다. 살면서 몇 번 없는 이직 기회를 단순한 권태 극복을 위해 소비하는 것은 너무 아깝지 않은가. 이직한 직장도 별것 없구나라고 깨닫는 순간 코너에 몰리게 된다. 더 이상 쓸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권태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무전환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직무전환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이직 못지않은 리프레시를 경험하는 동시에 시야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다음 글에서 마저 작성하겠지만, 나는 결론적으로 이직을 실패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 그곳으로 이직했더라면 과연 어땠을지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