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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애 Jun 19. 2024

김환기 <집,1956>

사랑일까?

김환기 <집,1956>

사랑일까?

 

뾰족한 기와집 지붕 아래, 돌담 안에, 사람인 듯한 형상이 서로 꼭 붙어있다. 지붕 처마 끝엔 딸랑딸랑 맑은 소리가 날 것 같은 물고기 풍경이 걸려있다. 지지베베 지저귀는 새가, 바닥에 내려와 앉았다. 

 

일과 연애

 

98년 3월 동춘서커스 관람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는 길, 첫키스를 하며 우리의 1일이 시작되었다. 당시 IMF금융위기로 아버지의 사업은 부도가 났다. 아버지는 더 이상 학비와 생활비를 대줄 수 없다고 하셨다. 내게 휴학을 하고, 생활비를 보태라고 하셨다. 

 

처음 한 일은 보습학원의 예비중1반 수학강사였다. 매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대 목이 아팠지만, 선생님~ 선생님~ 하며 쫓아다니는 아이들이 예뻤다. 그러나 나는 예비반 강사였기 때문에, 새학기에 아이들이 중1반으로 올라가며 필요 없어졌다.

 

동네의 한 팬시점에 파트타임 구인광고가 붙었다. 매장을 감시하고 물건값을 계산해주는 일을 했다. 팬시점 맞은 편에 서점이 위치해 있었는데, 그 곳에서 일하는 나를 훔쳐보는 그를 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미끼를 물고 말았다.

 

벼룩시장을 뒤져, 풀타임 까르푸(창고형 대형마트) 주차도우미 자리를 찾았다. 백화점 안내 도우미 같이 예쁜 유니폼에 둥근 모자를 눌러 쓰고, 높은 구두를 신고 차가 들어올 때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일이었다. 매일 매시 매분 들어오는 차에 대고,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니 요통이 가시지 않았다. 

 

그 뒤론 내가 백화점이나 마트에 갈 땐, 주차 도우미를 보면 안쓰러워, 내게 인사 안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요즈음 주차요원은 허리도 숙이지 않고, 유니폼에 구두도 신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싶다.

 

근무가 끝나면 그가 나를 마중하러 나왔다. 까르푸 앞 중앙공원에 가서 산책도 하고, 벤치에 앉아 부은 내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하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했다.

 

다음 아르바이트는 부천 송내역의 ㅇㅇ기원이었다. 아침에 매장 문을 열고 매장을 깨끗이 청소 한 뒤, 손님을 맞이하고 이용료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바둑기사님을 사범님이라고 불렀다. 손님들은 사범님의 대국을 보며 배우기도 하고, 손님끼리 대국하기도 했다. 

 

일과가 끝나면 매장을 정리하고 문을 닫고 퇴근했다. 일은 고되지 않았지만,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해 질 때까지, 송내역 앞 건물 4층 한 구석에 갇혀, 창밖을 보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답답했다.

 

그는 영화 ‘쉬리’의 스텝으로 참여한다고 하더니,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지 만나기도 어려웠다. 가끔 만나면 아파트단지 내 벤치나 화단에 앉아, 본인 일 얘기며 어렸을 적 얘기를 풀며, 짧게나마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조각난 꿈

 

사회복지부문에 공공근로 모집공고가 났다. 나는 나름 사회복지학도로서의 비전을 가지고 지원했다. 근무지는 시립 ㅇㅇ동 어린이집이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보육교사 자격이 엄격하지 않아, 사회복지사도 보육교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오전엔 조리사님을 도와 오전간식과 점심을 준비한 뒤, 영아반으로 가서 아기들 간식을 먹이고 영아반 선생님을 도왔다. 영아반 점심을 먹이고 낮잠까지 재우고 난 뒤, 유아반으로 가서 유아반 선생님을 돕는다. 

 

다시 영아반으로 와서 아이들을 깨우고 간식을 먹인 뒤, 일과 정리 후 청소를 한다.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선생님들 교구재를 만들 때 함께 만든다. 매일 매시 허리를 접었다 폈다하는 주차도우미보다 훨씬 고됐다. 

 

원장님은 다른 어린이집 공공근로는 어르신들이 와서 일을 못한다는데, 우리는 젊은 사람이 와서 일을 잘 해서 너무 좋다며 반색하셨다. 공공근로 기간이 끝날 즈음에는 월급을 맞춰 줄테니, 더 일해 줄 수 없냐고 부탁하시기까지 했다. 

 

졸업하면 꼭 찾아오라며, 사회복지관 관장님께 얘기해 줄 수 있다고도 하셨다. 그러나 나는 너무 지쳤다. 그는 바빴고 나는 지쳤고,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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