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애 Jun 19. 2024

신봉철 <one more light,2021>

내 마음의 세

신봉철 <one more light, 2021>

유리의 메타포

 

독일에서 유리를 재료로 미술작업을 하는 한국인 작가. 유리라는 매체의 메타포가 좋아 자신의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유리는 오랜 세월을 견디는 내구성이 있는 반면 깨어지기 쉬운 약함을 가졌다. 또한 투명하게 공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쪽과 저쪽의 공간을 나눈다. 

 

세상일이 뭐든 양면성이 있다고 하지 않나? 나를 낳아주신 부모에게조차 사랑과 미움의 마음이 함께 드니 말이다. <one more light>작품은 반짝이는 초록 유리조각이 싱그러운 잔디 같다. 그 가운데 하얀 유리조각들이 글자를 이룬다. 

 

유리의 경계

 

예전에 우리네 단독주택에 도둑이 들지 못하게 하려고, 담벼락 위에 깨진 유리를 꽂아놓았던 풍경이 떠올랐다. 요즈음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많이 사라진 풍경이다. 깨진 유리가 날을 세우고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계를 세운다. 

 

이 작품도 미술관 벽에 걸려 조명을 받을 땐 아름답지만, 바닥에 놓으면 날선 유리조각들이다. 아름답지만 상처를 줄 수 있는 날 선 유리조각들... 내 생각엔 언어도 그런 것 같다. 나를 표현하고 상대를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 

 

우리가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 이 글도 그렇다. 내 생각을 언어로 표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상대에게 비수를 꽂을 수도 있는,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언어. 

 

마음의 경계

 

때로는 나도 나의 마음의 담벼락에 이런 유리조각들을 꽂아놓아 경계를 세우고 싶었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의 마음의 경계를 침범했다. 성격 급하신 부모님은, 행동이 느린 내가 언제나 답답하고 못마땅하셨다.

 

“내가 너를 시키느니...”, “니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무슨 일을 해도 잘한 부분보단 잘못한 부분만 혼내셨다. 아이인 내가 어른만큼 일처리 할 수 없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내가 무엇이든 못하는 사람으로만 여겨졌다.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또 혼을 내시니, 해도 혼나고 안 해도 혼나고 늘 상 혼났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지시와 꾸지람이 전부였다. 엄마에게 따뜻함이라곤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나한테 뭐라고 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지금도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할까봐, 나를 표현하는데 스스로를 제약한다. 아직도 내 안에 부모님이 나를 계속 혼내는 것이다.

 

4년 전 전환 장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엄마에게 엄마의 인생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13살 어린나이에 가족을 위해 친척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셨다고 한다. 집으로 도망쳤으나 다시 보내져서 갓난아이를 돌보고 집안 일를 해야 했다고... 

 

성인이 되었을 무렵에 동네 친구와 함께 서울로 도망쳐, 버스안내양을 하고 공장을 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돌보았다. 그러던 중 아빠를 만나 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어머니 자신도 어머니의 따뜻한 보호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출산 후엔 늑막염과 결핵으로 사경을 헤맸고, 혹시 전염될까봐 나를 멀리했다고 한다. 혼전임신과 산후병을 가진 며느리를 맞고 싶지 않았던 할머니는 그 결혼을 반대하셨다, 더구나 아들도 아니고 딸인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셨다고 한다. 

 

아빠 역시 맏이로 가족을 위해, 정비공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어느 겨울 드럼통 화로에 몸을 녹이다가, 작업복에 묻어있던 기름에 불이 옮겨 붙어 크게 화상을 입으셨다. 그래서 군대도 면제되었다고 한다.

 

그 어린 나이에 옆구리에 책을 끼고 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본인의 자식은 꼭 대학을 보내리라 다짐하셨다고 한다. 아직도 내 친정집엔 내 학사모사진이 액자에 당당히 걸려 있다. 그런 그분들에겐 맏이인 내가 동생을 돌봐야하는 걸 당연했다. 

 

나는 노는 동생을 놀이터로 오락실로 찾아다니며 학원을 보내고 숙제를 시켰다. 내 할 일을 잘해도 동생 때문에 혼나야했던 어린 나는, 억울했고 동생이 미웠다. 그렇게 늘 상 혼나기만 했던 나는 나의 마음의 세계가 내 것인 줄도 몰랐다. 

나에게 마음의 세계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미술을 접하고, 이렇게 작품 속에 자신의 세계를 펼치는 작가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모두 자신의 마음의 세계가 있다는 걸. 

그 지분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걸. 

그 땅을 자신만이 일구어 갈 수 있다는 걸.

작가의 이전글 로댕 <다나이드, 1889년 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