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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l 14. 2024

아빠와 딸의 시간

묻고 싶은 말들을 집어삼키며.

“아들, 이따 8시 30분 되면 동생 잘 챙겨서 학교에 늦지 않게 가야 해, 엄마 다녀올게” 


아이들이 먹을 간단한 아침식사와 물통을 식탁 위에 올려두고 바닥엔 그날 아이들이 입을 옷을 두벌 꺼내 늘어놓았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몽롱한 얼굴의 아이들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이지만 마음이 급하다.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 서울로 가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 사는 나에게 입원한 아빠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 이틀. 오고 가는 시간을 감안해야 하니 조금이라도 더 아빠 곁에 있기 위해선 아침 첫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내가 이렇게 아이들의 등교 준비를 마치고 서울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나면, 남편이 서울에서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어 제주로 내려왔다. 가끔 남편이 먼저 제주공항에 내리는 날이면 공항 카페에서 20분 정도 얼굴을 보고 헤어졌다. 3년 전 코로나로 휴직을 하던 남편과 제주도로 이주해 지내다 남편의 회사 복직이 결정되며 우리 부부는 1년째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월말 부부 삶을 살고 있었다. 아빠의 입원이 시작되며 서로 위치를 바꿔 열흘에 한 번씩 이렇게 견우와 직녀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남편은 아이들의 아빠로, 나는 우리 아빠의 딸로,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 우리는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공항에서부터 나의 마음은 온통 아빠에게로 향했다. 한 달에 두 번, 내가 아빠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그의 곁에 가고 싶어 초조해지곤 했다. 군대 간 남자친구 면회 가는 심정이 이러했을까? 대상이 다르긴 했지만 그 마음은 비슷했을 거라 짐작해 본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들어야 숨이 쉬어질 거 같았다. 매일 전해 듣는 환자의 상태, 죽어가는 아빠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나는 매일 받지도 않는 전화를 걸고 문자를 해야 했다. 병색이 완연해지면서부터 아빠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들어했다. 입원 기간 대부분의 시간을 약에 취해 잠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복닥거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드디어 병실 앞에 도착해 침대 위 누워있는 남자 곁에 섰다. 


2주에 한번 하얗게 올라온 흰머리를 습관처럼 염색하던 구릿빛 피부의 건장하던 아빠는 온데 간데없이 내 앞에 누워있는 남자는 한없이 창백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과 새로 올라오는 하얀 머리카락이 너무도 낯설어 눈물이 핑 돌아 버렸다. 눈에 힘을 꽉 주고 솟아올라오는 물기를 다시 끌어내리곤 잠든 아빠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희미하게 떠지는 그의 눈 속에 내가 보였다.  


“아빠~나왔어, 숲 속의 잠자는 공주님이 여기 있었네?” 


“우리 강아지 왔어?” 


쉬이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마흔이 넘은 딸을 아직도 강아지로 불러주는 병든 아버지라니,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안부를 농담으로 주고받는다. 쉽지 않았던 지난 세월 동안 우리 부녀에게 슬픔을 잊고 웃을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농담 섞인 한마디였다. 희미하게 웃는 얼굴을, 몸을 차례로 손으로 쓸어 보았다. 항암으로 회춘을 한 거 아니냐며, 기름기 하나 없이 맨들 해진 얼굴이 마치 갓 태어난 아기 피부와 같다며 그를 웃게 해 본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에 빠져있는 아빠에게 ‘때가 되어하는 일’ 들은 무의미 해져있었다. 

먹을 수도 없었지만 굳이 먹지 않아도 호수로 연결된 영양제로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되었고 그러므로 자연스레 양치와 세수도 생략되는 날이 늘어갔다. 나는 아빠 머리맡에 걸려있는 수건을 들어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시고 양치컵에 물을 담았다. 그리고 그의 곁에 앉아 얼굴을 닦았다. 따스한 스팀 타월의 온도로 창백하던 그의 얼굴에 붉은 생기가 돌았다. 기분이 좋은지 얌전히 미소를 띤 아빠의 얼굴이 예뻐 보였다. 그리곤 치약을 묻힌 칫솔을 건네 양치를 하게 했다. 양치하는 그의 손이 힘찼다. 


“어우, 양치하는 거 보니 환자 아니네” 나의 농담에 칫솔모가 너무 약해 입안이 개운치 않다며 투정으로 말을 되돌려준다. 우리는 티키타카가 잘 맞는 부녀였다.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빠도 알고 있었다. 당신의 곁에서 딸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억누르며 억지웃음을 지어내고 있는지를.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창밖으로 어둠이 깔리고 암병동에도 차가운 고요가 찾아왔다. 여전히 잠에 빠져있는 아빠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끝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 아빠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묻고 싶은 질문은 많은데 입 밖으로 그 말들을 꺼내면 아빠가 사라져 버릴 거 같아 모든 말들을 삼키고 말았다.

'아빠의 꿈은 뭐였어? 가장 행복하던 순간은 언제였어? 앞으로 남겨질 우리가 어떻게 아빠를 기억해 주길 바래?'


아빠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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