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걱정 있어?"
새벽녘 선잠에서 깬 아이가 나의 얼굴을 보고 묻는다. 그저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아이에게 마음을 들킨 거 같아 조금 놀라고 말았다.
"엄마 얼굴에 걱정이 있는 거 같아?"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 그래 보여. 일루 와 내가 안아줄게."
조그마한 가슴팍에 나의 머리를 묻으니 토동한 두 팔이 목을 힘껏 그러 안는다. 녀석에서 안기어 콩닥거리는 작은 심장의 소리를 듣는다. '콩닥콩닥.. 콩닥콩닥'
아들만 둘씩 나란히 낳아 키운 친정오빠와 나에게 누구든 딸하나 더 낳았으면 좋겠다 말하던 친정아빠.
키워줄 것도 아니면 그런 험한 소리 하지 말라고 정색을 하며 말했지만 정작 아빠가 돌아가시고 친정오빠는 뒤늦게라도 딸을 하나 낳아 키우고 싶다 희망했다. "네가 아빠 곁을 지키는 걸 보고 딸은 하나 있어야 하겠더라"
아빠의 임종을 마치 알기라도 하듯 때맞춰 서울에 도착해 밤새 그의 곁을 지켰다. 생각해 보면 말수가 없는 아빠의 기분과 필요를 먼저 눈치채고 아는 체 하던 나였다. 그것은 딸과 아들의 성별적 특성의 문제가 아닌 40년간 아빠와 내가 서로에게 쌓아둔 신뢰와 사랑에서 비롯된 일들이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요즘에서야 부모자식 간의 텔레파시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된다. 초자연적 의미의 텔레파시가 아닌 상대를 향한 관심과 관찰에 의해 만들어지는 신비롭고 경이로운 오로라. 숨소리 하나에도 언어가 섞여 있는 듯 다른 감정들을 알아챌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이었다. 아이들에게 일방적인 사랑을 쏟아붓고 있다 착각하는 순간, 저렇듯 선선한 사랑의 표현들이 아이를 통해 나올 때마다 나는 숨이 멎을 듯 벅차오른다.
동이 트는 새벽녘, 세상에 없는 아빠의 생일을 생각했다. 태어난 날을 축하받을 당사는 정작 이 세상에 없는데 케이크에 초를 꼽아 축하를 해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곰곰이 지난날 아빠의 생일을 떠올려 본다.
볼을 크게 부풀려 후~하고 불던 촛불을, 꺼져가며 피어오르던 연기를, 함박웃음을 짓던 그의 표정을.
슬픔으로 물들 찰나, 아이가 나를 향해 묻는다. '무슨 걱정 있어? 일루 와 내가 안아줄게'
그래, 엄마는 지금 따스한 위로가 필요했어. 너는 그걸 어떻게 느낀 거니? 엄마의 텔레파시가 너에게 와닿은 걸까? 네 품은 작지만 무척이나 따스하고 사랑가득 하구나. 콩닥콩닥 울리는 심장소리가 마치 내 아버지의 품 같아 귀를 기울이게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