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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연 Jun 27. 2024

장수사진을 찍다

일상이 마무리 되던 초여름 저녁 어느날, 퇴근 후 아이를 챙기느라 이미 몸은 기진맥진한 상태였고, 아이를 재우며 습관처럼 까무룩 잠이 들어 있던 찰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그 시간에 전화를 할리 만무한 친정오빠의 번호에 등 쪽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아버지 정기 검진 결과가 나왔는데, 이번에 좀 안 좋은 게 생겼네...” 

“혹시 재발한 거야?” 

“아니, 이번엔 췌장 쪽에 문제가 있는데 만성 췌장염 이라고도 해, 시한폭탄을 몸에 단거라 생각하면 쉬울 거야.”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의료인인 친정오빠는 늘 최악의 상태를 나에게 얘기하는 버릇이 있어 반은 거르고 들으려 해도 이건 도무지 진정이 안 되는 설명이었다. 나는 당장 아빠가 죽기라도 한 것 마냥 펑펑 울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남편이 놀라 무슨 일이냐 물어도 나는 통곡을 했다. 이미 5년 전 암수술을 하고 고비를 잘 넘겼다 생각했는데 또다시 아빠 몸에 문제가 생긴 것에 대한 좌절감 그리고 눈앞에 불쑥 나타난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어야 했다. 



 아빠는 입이 무척이나 무거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문제를 아내에게도 쉬이 말하지 않는 찐 충남 남자였다. 새엄마와 나는 아빠의 이런 성격이 여자 피 말리고 속 터지게 하는 요인이라며 함께 흉을 보곤 했는데, 이번에도 검사결과를 말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눈치였다. 친정오빠가 새엄마에게도 사실을 알려야 한다 야단이었다. 배우자의 일을 타인에게 듣는 게 옳은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지만, 아빠 본인 스스로 입을 열지 않으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새엄마의 사무실로 향하며 나는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껴야만 했다. 아픈 아빠를 부탁해야만 하는 입장, 당당하게 요구하기 어려운 간호라는 책임감을 그녀에게 떠넘기는 기분, 그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을 최대한 가볍게 전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수많은 문장들을 짜깁기 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쩐 일이야? 무슨 일 있어?” 갑작스레 방문한 나를 보고 새엄마도 마른침을 삼키는 눈치였다. 

“이번에 아빠 검사 결과 얘기 들었어? 오빠가 연락 왔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 거 같아”

최대한 순화한 머릿속 문장들을 그녀에게 전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그녀도 생각을 정리한 듯

“아니야~지금부터라도 건강관리 잘하고 조절하면 돼. 수술하고 우리가 너무 신경 안 쓰고 놔뒀어. 이렇게 아빠 5년만 더 살다 칠십에 가도 하나님께 감사한 거야”라고 했다.

그녀의 말처럼 예순여섯의 아빠 나이를 생각하니 칠십이면 아쉬움이 덜 묻어날 나이 같이 느껴졌다. 막상 칠십 셋에 세상을 떠난 아빠를 두고 새엄마와 난 너무 아까운 사람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에 가슴을 부여잡고 울고 말았지만 말이다. 


 새엄마와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사진스튜디오에 예약을 했다. 변변한 가족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조금이라도 젊고 멋진 아빠의 얼굴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기 때문이다. 

‘가족사진 단체복 콘셉트는 화이트 & 청바지입니다. ‘ 

사진 콘셉트와 준비 사항을 가족 단톡방에 알리고 드디어 촬영날이 다가왔다. 

스튜디오에 10명의 식구가 모이니 왁자지껄 했다. 특히나 아들 손주만 넷이다 보니 스튜디오는 더욱 떠들썩 해졌다. 아빠와 엄마를 필두로 좌 아들 내외, 우 딸내외와 틈틈이 옥수수 알갱이 마냥 박혀있는 네 명의 손주들. 한 프레임에 꽉 차게 들어선 가족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빠는 연신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작가에게 다가가  “ 옷도 이렇게 차려입었는데 , 혹시 내 장수 사진도 찍어 줄 수 있을까요?” 라며 물었다. 장수 사진을 찍으면 오래 산다니깐 하나 찍어 둬야지. 그리곤 의자에 앉아 정갈한 포즈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 볼뿐이었다. 




“ 이 사진으로 할게요. 표정이 온화해 보이니 영정사진으로 좋을 거 같아요.” 

2023년 11월 22일. 아빠의 장례식 준비를 위해 사진관에서 영정 사진을 고르며 그날의 장수사진 파일을 꺼내 보았다. 사진사 선생님과 몇 장의 클로즈업 컷을 고르다 의견이 일치하는 한 장의 사진을 선택했다. 지난 몇 달간 항암으로 변해버린 아빠의 얼굴과 너무도 다른 사진이었다. 

‘ 너무 멋지다 아빠. 우리 아빠가 이렇게 예뻤지.’  액자에 넣어온 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오빠와 나는 연신 감탄을 해야 했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입술, 한없이 부드러운 눈매, 반듯하고 꼿꼿한 어깨. 마치 모나리자의 미소를 연상케 하는 사진이었다.  

“그날, 가족사진 찍길 정말 잘한 거 같아.”  

급하게 사진을 찍자고 고집을 부리던 과거의 나를 칭찬했다. 우리가 원하던 만큼의 장수 효과는 없었지만, 아빠의 아름 답던 노년의 모습은 영원히 사진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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