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비오는 날 아침이나 전날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된 경우 다음날 아침에, 혹은 어떠한 이유로 잠을 잘 못 잔 다음날 아침에, 혹은 스트레스가 누적된 어느 날 아침에 이유 없이 강한 편두통이 찾아오곤 한다. 편두통이 올 때마다 먹는 처방받은 약이 있는데 공복에 먹으면 미식거리는 증상이 생기므로 너무 힘들 때는 아침에 회사에 지각을 달고 여유있게 간단히 음식을 먹은 후 그 약을 먹고 약 1~2시간 정도 경과를 본다.
약 한 달 전이었다. 그날도 위 중의 어떤 이유로 아침에 편두통이 발생했고 그날은 병가를 상신했다. 집에서 음식과 약을 먹은 후 쉬다가 오후 4~5시가 되니 나아졌다. 왜 또 갑자기 이러한 통증이 찾아와 내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걸까 왈칵 짜증이 났다가 기분 전환을 위해 과일과 화장품을 사러 외출했다.
안양중앙시장에 가서 오렌지 10개와 사과를 한 6개 정도 샀던 것 같다. 안양역을 거쳐 집으로 걸어오려는데 엔터식스몰 2층에 들러 파운데이션을 하나 사야겠다 싶었다. 가게에 들러 파운데이션을 하나 추천받고 계산하려는 찰나 봉지에 있던 오렌지들이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다행히 쏟지는 않았으나 위험했던 순간 계산을 도와주시던 점원분이 구석에서 큰 종이백 하나를 꺼내 내 짐들을 담아주었다. 그 종이백에는 아모레퍼시픽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는데 그 가게는 다른 가게였다. 점원분은 ‘제가 예전에 여기(아모레퍼시픽)에서 오래 일했었어서요’ 라며 묻지 않은 질문에도 친절한 답변을 내주었다. 헌데 인상적이었던 점은 종이백의 중간 중간을 박스테이프로 붙여놓았다는 것이었다. 보통 종이백이 해지면 그냥 버리는데 이 분은 언젠가 다시 쓰려고 테이프로 붙여 보관해 두었다가 우연히 방문한 손님에게 기꺼이 꺼내주었다. 그날은 봄비가 꽤 내리던 날이었는데 나는 다행히 집까지 짐을 흘리지 않고 도착했다.
사실 물건만 제대로 계산했다면 점원의 역할은 끝난 것이 아닌가. 요즘은 어디에서도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 최소한의 역할 그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분은 처음 만난 손님이 돌아가는 빗길에 행여 오렌지들을 쏟지 않을까 하여 새로 종이백을 꺼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무사히 가져온 오렌지들을 꺼내먹을 때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영업의 이유였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