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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 아줌마 Jun 14. 2024

셰어 하우스 0102

 2.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

 토요일인데도 아내는 어디론가 나가고 없다. 가끔이지만 토요일에도 일하러 나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은근슬쩍 화가 치민다. 평일에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굳이 토요일까지 거절해도 되는 일을 떠맡는 이유가 뭘까? 토요일이라 큰아이도 집에 있고 반수를 하는 작은 아이도 집에 있는데 아내는 저녁 시간이 돼도 돌아오지 않는다. 마감에 쫓기는 내 일의 특성상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 몸도 피곤하고 두통도 심한데 아이들 저녁이라도 좀 챙겨주면 내가 굳이 신경을 안 써도 될 텐데, 아내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랴부랴 포장해 온 감자탕으로 두 아이와 저녁을 먹고 나니 그제야 들어오는 아내,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10년 전 어느 날, 갑자기 파견 근무를 신청했다며 중국으로 떠나 버렸다. 아이들은 얼마든지 돌볼 수 있었지만, 때마침 사춘기를 맞은 큰아이 때문에 학교에 불려 다니길 밥 먹듯 해야 했다. 엄마가 없어서인지 큰아이는 유난히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며 튕겨 나가는 탱탱볼 같았다. 담임에게 반항하는 바람에 교권 침해란 명목으로 선도 위원회가 열리고 중간에 반이 바뀌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학교에 불려 다니길 7, 8번 정도 했던 것 같다. 그때의 그 피곤함과 쓸쓸함을 그녀는 짐작이나 하려나?


  무더운 한여름, 시원한 거실을 두고도 두 아이와 아내는 좁은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게임에 빠진 큰아이와 막 반수를 시작한 작은 아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내는 도대체 왜 그 좁은 방에서 에어컨도 켜지 않은 채 들어앉아 있는 걸까? 어수선한 방, 널브러진 책과 옷가지,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한마디로 정리와는 거리가 먼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이다. 자기가 생각해 처리해도 되는 간단한 일도 물어보질 않나?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일을 생각 없이 질문할 때면 말이 곱게 나가지 않는다. 정리는 물건을 위로 쌓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여기저기 널려 있는 물건들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주방에 음식이 나와 있으면 위생상 안 좋다고 그렇게 말을 했건만 오늘도 인덕션 위에 떡 하니 올라가 있는 국 냄비를 보면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안 맞는다. 조용하게 일 좀 하려 하면 주방에 나와 부스럭거리는 바람에 온통 신경이 곤두선다. 문 닫는 소리와 발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주변에 대한 배려심이 부족하고 언제나 자기 일 외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처음엔 그런 모습을 고쳐 보려 잔소리를 한 적도 있지만 어느 순간 헛수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 말을 들은 건지, 안 들은 건지 늘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그만큼 잔소리했으면 듣는 척이라도 할 텐데 내 말은 죽어라 안 듣는 쇠고집이다.     


  어느 순간부터 말을 안 하기로 했다. 말을 한다고 듣는 것도 아니고 변하는 것도 아니기에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내조는 바라지도 않지만 아이들 저녁이라도 좀 신경 써 줬으면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가끔 뜬금없는 행동으로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기도 하고, 음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어 내가 밀키트를 주문해야만 하는 이 상황, 늘 자기 생각대로인 온몸에 엉뚱함을 장착한 채 도통 이해 불가인 아내와 이렇게 23년째 살고 있다. 오늘은 갑자기 오더니 뭐, 인터뷰해 달라고? 꿈도 꾸지 말라지.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본 거야. 그래도 요즘은 변화의 기미가 좀 보인다. 아들 수능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주말 외출을 자제하고 저녁을 챙겨 달라는 말에 순순히 알았다는 말이 얼마나 반갑게 들리던지. 이젠 포기해서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가족에게 약간의 신경을 좀 더 써 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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