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05
보이(지 않)는 위협, 인류의 선택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말 그 자체로 우리에게 심오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을 이토록 직접적으로 강렬하게 전해주는 표현이 또 있을까!
칼 세이건의 과학자로서의 학문적 성취와 커뮤니케이터로서 대중에게 과학을 친숙하게 해 준 공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가 왜 인간적으로도 배울게 많은 성숙하고 품격 있는 사람인지, 우리 존재와 우주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철학자로서의 면모는 어떠한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이나 <코스모스> 와 같은 역작들이 과학자나 이공계 연구자,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문학자, 철학자, 인문계 분야 연구자 및 학생들에게 더욱 깊은 깨달음과 큰 울림을 주었는지 생각해 보라.
'창백한 푸른 점'이란 표현은 인류가 만든 기계로, 지구로부터 역사상 가장 머나먼 곳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그런 한 장 사진 이상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를 반 이상 지나 우주의 깊은 곳에서 찍은 이 사진은 우리가 사는 지구와 인류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작은 점 위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꿈꾸고, 싸우고, 평화를 찾아 헤매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소중한 행성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 지구는 심각한 환경문제와 기후변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기후 변화는 지구의 온도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있어, 극지방의 빙하를 빠르게 녹이고 해수면을 상승시켜 이미 수많은 생물들이 서식지를 잃고 있다. 오죽하면 안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이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이젠 지구가 펄펄 끓는다며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라고 명명했겠는가. 공기와 물의 오염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으며, 쓰레기 문제는 드넓은 태평양 바다에 쓰레기 섬을 만들 만큼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매일 뉴스에서 쏟아내는 관련 소식과 영상들을 보고 있자면 지구와 인류의 미래는 암담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일으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이 문제만큼 '결자해지'가 시급하고 절실한 문제는 그야말로 공전절후일듯 하다. 각 개인의 실천과 지역공동체, 국가 단위, 그리고 국제적인 협력의 수많은 노력들이 온전히 모여야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직까지도 각자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전 지구적인 신속한 단합은 안되고 있지만 말이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재활용을 실천하며,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등 우리의 일상에서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노력하되, 그것만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이 문제가 진정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제품의 성분에서부터 과도한 포장을 하지 않는 등 산업생산 전체 프로세스에 있어서의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은 이제 공허한 말의 성찬에서 끝나서는 안되며, 각국 정부의 빠른 법 개정과 규제 및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규약의 정립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과 기술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 언론 또한 개인의 실천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기사나 캠페인에서 벗어나 후자의 전개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정부와 기업을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이제는 상당수 과학자들이 이미 지구가 감당 가능한 (정확히는 '지구'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감당 가능한) 임계점을 돌파했고, 위와 같은 실질적인 노력이 빠르게 전개된다고 해도 기후변화의 흐름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빠른 때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함께 노력한다면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의 미래를 다시 밝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의 생존이 심각하게 위협받도록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앞으로 해 나가야 할 이러한 실천만도 난망한 문제 이긴 하나,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발자취를 또한 뒤돌아 봐야만 한다. 우주의 역사를 1년의 달력으로 비유한 우주력 기준으로 볼 때, 산업혁명이며 근현대 과학의 태동과 눈부신 발전은 고작 12월 31일 11시 59분 59초, 우주 역사 마지막 순간의 딱 1초 전에 불과하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우리 인류가 얼마나 많은 식물과, 동물들 - 타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없애버렸는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지 못하는 유일한 종..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되는 이 우주의 티끌 같은 지구 위에서, 우리 인류가 서로 죽고 죽여온 역사 속의 허무함도 되짚어 볼 수 있었지만, 이제 시선을 확장해 보자.
인간 이외의 생명들이 보기에 이 지구가 얼마나 끔찍한 곳일지를 생각해 보라. 동물들, 특히 인간이 집중적으로 키우는 가축들의 경우는 죽어라 낳거나 혹은 죽어라 찌거나,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직 인간을 위해 태어나고 죽는 삶.. 지옥도 이런 지옥이 따로 없겠다. 평소 우리는 우리 눈 앞에 보이지 않는 현대사회의 공장식 사육과 도축시스템 덕분에 아무런 의식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매일 맛있게 치킨과 소고기, 돼지고기를 먹으며 웃고 떠들고 있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Our World in Data(OWID) 홈페이지에는 ‘매일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도살되나요?(How many animals get slaughtered every day?)’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발표되어 인간이 소비하는 육류로 인해 매일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도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인간이 섭취하는 육류로 소비되기 위해 죽어가는 동물의 수가 무려 1,000억 마리에 달한다는 것. 충격적이지 않은가.
이 작은 지구 위에서 매일 약 90만 마리의 소가 도살되며 돼지는 380만 마리가 도살당하고 있고, 닭의 경우는 매일 무려 2억 2백만 마리, 1년에 700억 마리 이상이 도살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 수를 정확히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대규모 상업적 어업이 자행하는 남획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물고기의 수 역시 매일 수억 마리가 희생되고 있다고 한다.
압도적 마릿수의 닭의 경우는 육계처럼 단지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죽는 것뿐만 아니라, 산란계의 경우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로 태어나면 곧바로 죽음이 닥쳐온다. 그대로 마대자루에 떼로 들어가 깔려 죽거나 분쇄기에 들어가 갈려 죽는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하는 삶.. 몇 년 전 이민자의 삶을 조명하여 각광받았던 영화 <미나리>에서 이민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알도 못 낳고 맛도 없는 쓸모없는 수평아리는 폐기된다'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마트에 깔려 식품으로 소비될 도축되는 동물들은 그나마 동물보호법의 규정에 따라 가스나 전기 등으로 고통을 최소화하여 죽임을 당하지만, 도축단계까지 가지도 못해 처분 규정이 없는 동물들이 매일매일 어떻게 죽어나가고 있는지는 상상하기도 싫다.
동물들은 이렇게 희생되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태어나서 사육되는 동안에도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전 세계 농장 동물의 대부분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 비좁고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 갇혀 괴로움 속에 살아가는 동물들, 인간을 위해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암컷 동물들, 인간에게 팔려갈 고기에 냄새가 나지 않게 한다고 어린 시절 그냥 손으로 잡아 뜯겨 거세당하는 수컷 동물들.. 서로 싸우는 것을 막기 위해 마취도 없이 이빨이나 부리를 잘리는 동물들... 지옥도가 따로 없다.
우리는 각종 자연재해나 사고 등으로 인해 고작 몇 명, 몇십 명의 인명 피해만 나도 끔찍한 재앙으로 인식하고 슬퍼하며, 미디어 역시 엄청난 뉴스를 송출하고 있는데, 그들이 보기에 이런 뉴스와 인간들의 반응이 얼마나 끔찍하고 가증스러울까. 다른 이의 피와 살을 취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운명은 어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저 미안하다.
이러한 공장식 사육시스템은 환경과 자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수질 오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밀집형 사육으로 발생하는 질소와 인 폐기물은 강과 바다 생물의 사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게 배출되는 메탄가스와 배설물은 인간의 항생제 내성을 높여 전염병 위험을 높이고, 바다와 강 등 지구의 자연을 오염시켜 기후변화 대응에도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잠시 잠깐의 미각을 채워주기 위해 자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결국은 우리에게 재앙으로 돌아올 부메랑 같은 일들을, 안타깝지만 우리는 아직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우매함에도 불구하고 칼 세이건은 우리의 미래에 긍정적이었고 무엇보다 인류의 지성과 지혜를 믿었다.
그런 의미에서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가 이 지구를 어떻게 대하고,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우리는 이 작은 점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 작은 점 위에서 우리의 모든 역사가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미래는 결국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이 '작은' 지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고,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행성을 물려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이러다 우리 다 죽어!"
<오징어게임> 속 대사. ... 여기서 더 늦으면 끝장이다.
나도 그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