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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l 16. 2024

 칼 세이건 아저씨를 추모하며

창백한 푸른 점 03


‘창백한 푸른 점(a pale blue dot)’이라는 표현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1990년 2월 14일에 보이저 1호가 지구로부터 60억 km 떨어진 먼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의 사진을 묘사할 때 사용한 말이다. 당시 보이저 1호의 사진 촬영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고장 등의 우려로 주저하던 NASA 당국을 집요하게 설득해 보이저 1호의 방향을 지구로 돌려 찍은 사진이다.


사진 촬영 30주년을 맞아 디지털 기술로 더 선명하게 업그레이드 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 (NASA 제공)


이 사진에서 지구의 크기는 0.12 화소에 불과하며, 보이저 1호의 관측장비에 햇빛이 산란돼 형성된 밝은 색 띠 안의 아주 작은 점으로 나타났다.  촬영 당시 보이저 1호는 태양 공전면에서 32도 위를 지나가고 있었으며, 태양이 시야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좁은 앵글로 촬영했다. 사진에서 지구 위를 지나가는 광선은 실제 태양광이 아니라 보이저 1호의 카메라에 태양빛이 반사되어 생긴 것으로, 우연한 효과에 불과하다.


이 사진은 지구가 광활한 우주 속 작은 먼지 하나에 불과한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우주의 사진으로 꼽힌다. 그래서 이 ‘점(dot)’은 우리에게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 살고 있는’ 인류와 우리의 존재, 그리고 삶의 찰나성을 성찰하게 하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당시 보이저 1호가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사실 행운이었다고 한다. 이 거리에서 지구의 크기는 보이저 카메라의 화소 한 개보다도 작으며, 따라서 카메라에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다. 그런데 카메라에 부딪혀 산란된 햇빛 광선 가운데 하나가 우연하게도 지구와 극적으로 교차했다. 게다가 보이저 1호에서 본 지구는 해의 강렬한 섬광에서 불과 몇 도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벗어나 있었다.  이 사진을 찍으면서 보이저 1호는 다른 5개의 행성(목성, 금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과 태양 사진 60장도 함께 촬영했는데, 화성과 수성은 햇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바람에 찍지 못했다. 이때 찍은 사진들을 `태양계 가족 초상화'(The Family Portrait of the Solar System)라고 부른다.



우주의 광막함을 생각하면 인류의 존재는 극히 미미하다. 태양계는 은하수라는 거대한 우주의 일부에 불과하며, 그 은하수조차도 무수히 많은 은하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지, 그 끝이 어디인지조차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이러한 우주의 거대한 스케일 앞에서 인간의 존재는 한없이 작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그저 광막한 우주 속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은 점 위에서 우리 인류의 모든 역사와 드라마가 펼쳐졌다. 나름의 문명을 이루고,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키며,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저 광활한 우주 속 티끌보다도 작은 몸체로 외롭게 떠 있는 창백한 점 위에서 우리의 기쁨과 슬픔, 승리와 패배, 사랑과 증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는가?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60억km 거리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 원본.  아래 쪽이 태양 방향 (NASA 제공)


우리는 이 작은 점 위에서 사랑하고, 꿈꾸고, 싸우고, 평화를 찾아 헤맨다. 이러한 우리의 삶은 우주의 시간 스케일에 비하면 찰나와도 같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로 138억 년, 지구가 형성된 이래 약 45억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중 인간이 존재한 수십만 년이란 시간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이 문명이 발달한 지는 길게 집아도 고작 1만 년 전후.. 우리의 개인적인 삶은 더욱 짧아서, 한 사람의 일생은 우주의 시간 속에서 찰나조차도 안 되는 순간일 뿐이다.


이렇게 광막한 우주와 우리의 찰나적인 삶을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허무와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허해진다는 말은 당연하다. 우리가 쌓아 올린 업적과 성취, 우리의 갈등과 고민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되겠지.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로 인해 우리의 희소성과 소중함이 다시금 일깨워질 수도 있으며, 그 작은 점 위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망원경의 각도를 아주 조금만 바꿔서 보아도 저 먼 우주에 이르러서는 엄청난 거리의 차이가 생기는 것처럼, 아주 조금 약간만 관점을 달리 해서 본다면 말이다.  



우리는 우주의 광활함을 인식할 수 있는 전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서로에게 베푸는 작은 친절과 사랑,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는 모든 순간순간들이 우주의 거대한 무대 속에서 작지만 빛나는 푸른 점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어찌하겠는가.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이렇게 태어난 것을.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을 통해 인류에게 겸허함과 동시에 책임감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우리의 행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집이며, 우리는 아직 바로 근처의 이웃집조차 찾아갈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하나뿐인 이 집을 소중히 지키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 작은 점 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니.


결국,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보잘것없게 느껴지는 우리의 존재가 한편으로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그 점 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찰나적인 삶이 광막한 우주 속에서도 의미를 가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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