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푸른 점 02
창백한 푸른 점.. 0
C (탄소) :
탄식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하고 있는 끔찍한 짓거리들
H (수소) :
수없이 광막한 우주에서 생명체는 우리로 유일한 것인지
O (산소) :
산맥 속에서 물고기를 찾듯 허망한 일이지만, 또 다른 이웃을 바라는 외로운 마음.
N (질소) :
질문을 던져본다. 지구는 이미 글러먹은 것일까.
A (아데닌) :
아! 대답 없는 메아리, 신조차 답을 주지 않는구나.
G (구아닌) :
구하라, 찾으라! 마태오의 복음을 누가 맞다 했는가
C (사이토신) :
사고하는 존재가 오히려 우리 행성에 짐이 되는구나.
T (티민) :
티끌 같은 존재, 우리뿐이면 얼마나 큰 공간의 낭비인가.
우리 인간을 포함한 동물과 식물이라는 생명의 존재는 크게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의 4대 주요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물론 황(S)과 인(P), 기타 미량의 필수 원소들이 더 있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단 넘어가자고.
빅뱅에서 생겨난 우주라는 허허로운 공간이 확장하면서 물질과 반물질의 극히 미미한 분포의 차이가 생겼지. 우리는 그 차이가 왜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혹은 순전한 우연인지는 알 수 없어.
그 불균등함으로 인해 원자가 합쳐지고 물질이 만들어지며 중력의 작용으로 무거운 물질이 생긴 곳으로는 점점 더 많은 물질이 모이게 되어 중력도 더 세지게 되었고, 반대로 가벼운 물질 혹은 물질이 없는 곳은 계속해서 물질을 끌어당기지 못하고 물질이 조금밖에 없거나 텅 비어있는 보이드(Void)로 남아있게 되었지. 이건 천문 관측 결과로 확인된 사실이야.
실제 우주의 크기를 우리는 가늠조차 할 수 없어. 현재 가지고 있는 우리의 알량한 기술로는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름만 해도 900억 광년이라고 하거든. 900억 light year.. 상상이 되니? 초속 30만 km에 가까운 빛의 속도로 움직여도 900억 년을 가야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얘기야. 그런데 우주는 지금도 계속 팽창하며 커지고 있지. 그것도 점점 더 빠르게 말야 (가속팽창).
그런데 그거 아니? 우주가 팽창하며 별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그 별들이 멀어지는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해. 그래서 설령 광속의 우주선을 개발하더라도, 머나먼 은하를 우리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지. 우주의 끝을 인간은 결코 알 수 없는 거야.
빛보다 빠른 건 없다면서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건 정말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도록 별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게 아니라, 이 우주라는 공간 자체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의미야. 점을 찍어놓은 풍선을 불어서 풍선이 커지면(팽창하면) 찍어놓은 점들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상상하면 될 거야.
나도 이해하긴 어렵지만 어떤 물질이나 물체가 아닌 우주라는 공간 자체는 그럴 수 있다고, 그건 우리가 아는 물리법칙을 깨뜨리지 않는다고 해.
애초에 생명이 없는 그냥 원자가 뭉친 원소 덩어리의 무생물에서 어떻게 생명이 출현하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영원한 수수께끼야.
스스로 움직이고 살아 숨 쉬며 물질대사를 하고 번식을 통해 후손을 남기고 ‘죽음’이라는 형태로 사라지는 거대한 생명의 순환이 시작되었지. 적어도 여기 지구에서는 말이야.
생명이 곧 유전자를 의미하고, 세포는 그 유전자를 보호하는 껍질이고, 그 세포들로 이루어진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의 프로그래밍대로 그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숙주이자 도구일 뿐인 것일까. 그래서 적어도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의식‘이랄까, ’영혼‘이라는 것조차 유전자의 명령을 받는 생명의 화학작용의 결과로써 생명이 유지되는 동안만 발현되는 현상일 뿐일까.
아니면 대다수 인류의 믿음처럼 무언가 고귀한 것이 우리의 죽음 뒤에도 다른 차원에서 영속하는 것일까. 생명이 그저 우연 속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신화와 종교 속에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신‘의 설계 아래 생겨난 것은 아닐까. 의식과 영혼의 본질은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철학과 과학이 만나는 지점이었지.
우리는 보편적인 믿음 속에서도 그렇지만, 이제는 과학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도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식물도 감정을 가지고 고통이나 기쁨 등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리의 기술은 우주 밖으로 뻗어나가고 심해를 탐사하며 미세한 나노기술의 영역까지 뻗쳐 뇌의 신비까지 벗겨보려 애쓰고 있지. 지구가 좁아 우주에 눈을 돌리지만 한편으론 가상의 세계와 가상의 화폐까지 구축하고 싶어 하고 우리를 대신해 우리보다 더 일을 잘해줄 인공지능까지 만들고 싶어 해. 우리의 욕망은 끝이 없거든. 죽지 않는 히드라처럼 계속계속 자라나기만 해.
그렇게 똑똑한 인류가 아직은 이곳밖에 없는, 유일한 삶의 터전 ’지구‘를 황폐화시키고 있어. 우리가 소소한 욕심에 펼쳐놓은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 목을 옥죄어 오고 있지. 지금 뉴스에서 도배하고 있는 기후 환경 위기에 대해서는 수십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 수많은 과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의 외침은 공허하게 사라져 갔지. 이젠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정부는 눈앞의 득실계산이 우선이고 사람들은 알면서도 지금 누리고 있는 당장의 안락함을 포기할 생각을 하지 않지. 적어도 ’내가 먼저는 못해‘ 라면서 말야.
다 같이 멸망하는 단계까지 현실로 다가오면, 그제야 정신 차리고 뒤늦게 수습해 보려고 하겠지만 때는 늦었을 거야. 운이 좋아 설령 문명의 멸망과 인류의 멸종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크고 혹독해 살아남은 자들이 치러야 할 고난과 희생은 상상할 수조차 없겠지.
지구 위에서 일어난 지금까지의 일, 그리고 생명이라는 존재가 우주에서 유일한 현상인지 아니면 곳곳에 존재하는 데 우리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어. 다만 확률 수학적인 근거로 이렇게 광막한 우주에 생명 현상이 지구에서만 있을 리는 없을 거라고들 하지.
지구 또한 우주의 구성원으로 이 광막한 우주 속에서 떠돌고 있는 티끌 같은 존재이자 ’창백한 푸른 점(a pale blue dot)‘이니까.
똑똑한 척은 혼자 다하고 아무리 문명을 발전시킨들, 그 문명이 발전할수록 자신이 사는 행성의 다른 생명체들과 그 행성 자체에까지 해를 끼치는 것이 소위 ‘지적 생명체’의 숙명이라면, 그리고 그게 보편적인 현상이라면 이 광막한 우주에 아무리 생명이 넘쳐나고 있다 한들 우리는 결코 서로 마주치지 못할 거야.
왜냐하면 문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자신의 행성을 파괴하며 스스로 자멸할 것이고, 만약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다른 항성계의 행성들을 여행할 정도의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즉 스스로 자멸하지 않고 성간 이동이 가능할 정도까지 유지된 초고도 문명이 있다면 그들은 그때까지도 그들의 행성을 잘 관리했다는 얘기가 될 거야.
그들의 자연계를 망가뜨리지 않고 그 안에 있는 다른 생물 종들과 공존하고 있다는 것으로 그들은 우매한 우리 인류와는 다르게 ‘현명하고 평화로운 지적 생명체’일 것이기 때문에, 다른 행성을 방문하더라도 그곳의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조용히 관망하다 스쳐 지나가겠지. 우린 아마 그들이 왔다 간 사실도 모를 거야.
그들은 전쟁과 환경파괴, 우리 입맛대로 다른 생명체를 가두고 죽이고 심지어 유전자 조작까지 하는,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짓거리들을 보고 혀를 차며 상종 못할 존재로 치부해 버릴지도 몰라. 혹은 우리가 벌레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거나 혹은 벌레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에겐 우리 인류 역시 그런 하찮은 존재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난 여러 가설 중에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지적 생명체는 문명과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언젠가 자신의 행성을 파괴하며 스스로 자멸할 것’ 이라는 가설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 우리보다 과학기술도 그 정도로 뛰어나고, 자멸하지 않을 만큼 현명하거나 평화로운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지잖아.
이런 판단엔 나름 과학적인 합리성도 부여해 줄 거야.
모든 우주에 있는 생명체가 우리와 동일하게 몇 가지 주요 원소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 생명체들이 하는 행위에 그 정도로 초격차가 생기진 않지 않겠어? 적어도 탄소 기반의 생명체라면 말야. SF 영화에서 나오듯 탄소가 아니라 규소(Si) 기반의 생명체라던가, 아예 근본이 다르면 또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말야.
그렇게 생명은 덧없고 무지한 것 같아.
목적없이 낳아졌고, 그래서 살아가고, 나이들며 죽어가지.
그렇기에 발버둥치며 더욱 '의미'를 찾으려는 것일까.
한편으론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찰나 간에 소멸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모든 것이 무생물 뿐인 이 우주에서 '생명'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희소한 현상이라면, 우린 선택받은 일원이고 그렇기에 이 또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 우주에 대한 통찰력 있는 코멘트와 가설들 몇 가지를 소개할께. 워낙 유명해서 다들 들어본 말들일 거야.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다 똑같이 끔찍하다.“
”Two possibilities exist: Either we are alone in the Universe or we are not. Both are equally terrifying.“
- 아서 C. 클라크 (Arthur C. Clarke)
'코스모스'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왔었지.
"이 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얼마나 큰 공간의 낭비겠니"
"If it’s just us, it seems like an awful waste of space."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Robert A. Heinlein)과 함께 SF 분야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는 또 이런 말을 했었어.
"우주는 우리 문명만 존재하기는 너무 넓다. 그리고 문명이 서로 만나기에도 너무 넓다"
"The universe is too big for us to be the only intelligent species and too old and too big for any two civilizations to meet."
* 페르미 역설 (Fermi paradox) 도 많이 들어봤을 거야.
"그들은 어디에 있나? (Where are they?)"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우주의 규모를 보자면, 인류 문명과 같이 또 다른 지성체가 세운 외계 문명의 존재는 너무나도 당연해. 그리고 정말로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그중에는 지구 문명보다 먼저 발생해 오랜 시간 존재해 온 선구적인 문명도 있겠고, 일부는 이미 지구에 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래서 페르미가 "하지만 그 외계 문명들은 대체 모두 어디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 건가?" 라고 질문을 던진 거야.
(페르미 역설의 가설들)
외계인은 벌써 우리 곁에 와 있다
외계인은 존재하지만 우리와 의사 소통할 수 없다
- 너무 멀리 있어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 의사소통 수단이 우리와 다르다
외계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 우주에는 원래부터 우리뿐이다
- 외계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 외계인은 존재했으나 다 죽거나 숨었다
- 어둠의 숲 가설
- 대여과기 가설
- 외계인은 과거에 존재했었다
- 버서커 가설
* 드레이크 방정식 (Drake Equation)도 들어봤을 거야.
이건 인간과 교신이 가능한 지적인 외계생명체의 수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SETI 프로젝트의 창시자격 인물인 프랭크 드레이크 박사가 고안한 방정식이지.
N = R* × fp × ne × fl × fi × fc × L
N : 우리은하 내에 존재하는 교신이 가능한 문명의 수
R : 우리은하 내에서 항성이 탄생하는 속도
fp : 항성이 행성계를 가지고 있을 확률
ne : 행성계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의 수
fl : 조건을 갖춘 행성에서 생명이 발생할 확률
fi : 발생한 생명이 지적인 생명체로 진화할 확률
fc : 그러한 지적인 생명체가 교신을 원하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확률
L : 그러한 문명이 존재할 수 있는 기간
각각의 값에는 해답이 없기 때문에, 연구자마다 상당히 다양한 값이 나왔는데,
드레이크가 1961년에 사용한 값은 다음과 같아.
R* = 10/년
fp = 0.5
ne = 2
fl = 1
fi = 0.01
fc = 0.01
L = 10,000 년
계산은 각자 해보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