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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Jun 04. 2024

멈춰볼까? 질주하는 삶은 이제 그만

Ride or Die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제대로 본 게 한편도 없었다.


카레이싱이나 카체이싱은 흔하디 흔한 액션 영화에 빠지지 않는 장면이고, 굳이 그걸 메인으로 잡고 러닝타임 내내 '질주'만 해대는 영화를 굳이 뭐 하러. 하는 편견이 있었다.

스토리도 뻔한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고, 더구나 빈디젤은 정말 뭐 하나 주는 거 없이 그냥 별로 호감이 안 가는 배우였다. 그러다 더락 드웨인 존슨이 나오고 제이슨 스타뎀도 나오고.. 그러는 것을 보고 이제 기존 멤버로 뽑아먹을 게 없으니 어느 정도 검증된 액션 배우들을 추가로 투입하는구나 싶었다. ​


그러던 내가 시리즈 한두 편을 채워 본 것은 어느 영화 프로그램에서 최신작을 소개하면서 들은 평론가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2001년에 첫 개봉을 했던 분노의 질주 시리즈가 이렇게 11편까지 장수하고 매번 꽤나 히트를 하는 것은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 스릴만점의 카 체이싱 액션 때문만이 아니라 속편이 제작될 때마다 매번 새롭게 시도하는 다양한 장르와의 결합과 스타일 변신, 편편이 연결되는 완성도 있는 스토리 라인 때문이라는 이야기.



이 영화의 시작은 90년대 초반 페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가 나온 '폭풍속으로'를 오마주한 스포츠 드라마였고, 2편에서부터 액션영화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서, 3편은 10대들의 성장 드라마, 4편부터 본격적으로 액션영화의 길을 걸으며 이후 하이스트물, 케이퍼 무비, 첩보 영화에서 최근작은 SF적인 요소까지 가미되고 있다.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체급이 달라지는 악당들의 면면도 관객들의 관심과 몰입에 도움이 되는 듯하고. 한참 철 지난 보지 않은 예전 속편들을 찾아서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흔치 않은데 말이지..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재평가하게 된 영화라 생각한다.




그러다 문득..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인생을 저기 나오는 차들에 비유한다면 말이지. 난 어떤 차고,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 계속 달리고 있는 것은 그나마 아직 나락에 떨어지지는 않은 채, 그런대로 살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그러다 거세게 비가 오면 와이퍼를 켜 흐르는 빗물을 닦으며 달리고, 먼지에 더럽혀지면 세차도 하면서 그렇게.. 가끔씩은 엔진오일도 갈아야 할 것이다. 어쩌다간 스팀 손 세차도 받아보고, 엔진오일도 좀 더 비싼 고급 합성유를 넣어보면서 말이다.


누구나 고성능의 스타일 좋은 고급차를 타고 다니고 싶겠지만, 타고난 금수저이거나 로또라도 당첨되지 않으면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헌데 말이지, 현실이 그러하다면 언젠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로 업그레이드하는 몽상이나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 튼튼하게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엥꼬(えんこ)가 나면 기름을 넣어주고 너무 더러워지면 세차를 하고 그러면서 쳇바퀴돌 듯 살고 있지만..  엔진에는 문제가 없는지, 평소 너무 많은 매연을 내뿜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안전장치들은 이상이 없는지, 이런 것들엔 사고라든가 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정작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왜일까. 그러다 가끔 오랜 길에 너무 지쳤을 때, 혹은 큰 사고가 나봐야 그때서야 정신 차리고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후회하는 건.


화려한 액션 씬에서 질주하는 수퍼카, 머슬카들은 결국 처참히 부서지거나 절벽으로 떨어져 장렬한 최후를 맞는 법. 순간을 위해 그렇게 뿜어내고 사라져도 좋다고 가오(かお) 잡고 허황된 욕망만 좇으며 살아가기엔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다.



무릇 그렇게 날고 기던 주인공들도 결국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소박한 미니밴을 몰며 떠나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니던가.


목적을 잃은 질주는 곤란하다.

목적을 잃은 전력질주라면 내 주변과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칠 수도 있을터.  우리는 너무 공허한 목표와, 끝없는 욕망과, 허투른 외양에만 신경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작 내 심장이 지금 어떻게 뛰고 있는지, 내 말과 내 행동 하나하나가 어떤 향기를 품고 있는지. 혹여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볼 그런 나이는 되었다.



#질주 #분노의질주 #수업료 #수퍼카 #머슬카 #미니밴 #세단 #인생수업 #Ride or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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