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로그 #19] 그림책박물관 자기탐구 워크샵 (2025.11.22
2025. 11. 22. 토요일 저녁 7시
1. 오늘의 장면: “토요일 저녁, 그림책박물관에 스며든 따뜻한 빛”
토요일 저녁의 일산 그림책박물관은 평소보다 조금 더 깊고 조용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포근한 조명 아래 놓인 그림책들,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커피 향이 천천히 번지는 공기… 모든 것이 오늘을 위한 무드처럼 느껴졌다.
이미 우리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 박물관의 온기를 즐기고 계신 분들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하나둘 자리에 앉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지만 서로의 표정에는 비슷한 마음이 묻어 있었다. “오늘만큼은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는 작은 의지. 테이블 위의 아직 셋팅되지않았지만 타이밍에 맞춰 대기하고 있는 새 하얀 캔버스, 아직 열리지 않은 물감 튜브들, 스퀴지 도구 한 가지가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만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2. 오프닝: “당신 안에 조용히 빛났던 기쁨이 있나요?”
문대표의 오프닝은 설명보다는 ‘건네는 말’에 가까웠다.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가벼운 질문들을 건넸고, 참가자들은 각자 질문을 골라 대답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많은 참가자들은 이 곳에 오기 전까지 기뻤던 순간을 그림책 박물관에 들어왔을 때의 따뜻한 느낌을 이야기하셨다.
오늘의 주제가 기쁨인 이유. 기쁨은 다른 감정들에 비해 즉각적인 동시에 굉장히 솔직하다. 그렇기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에 내가 느끼는 기쁨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과하지 않지만 깊게 닿는 목소리로 그녀는 이렇게 물었다. “요즘, 나를 가장 환하게 만든 순간이 있었나요?” 그 짧은 한 문장이 공기 속에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미소를, 누군가는 작은 숨을, 누군가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는 눈빛을 남겼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기억 속에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한 장면 하나로 남아 있었다. 그 조용한 울림 위에 드디어 예술의 시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3. 예술의 시작: “색이 먼저 말을 꺼내는 순간들”
오프닝이 끝나고, 공간의 호흡이 조금 가라앉을 즈음 최대표의 예술 시간이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말보다 감각이 중심이 되는 순간이었다. 먼저, 최대표는 이전에 예술가들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왔는지를 작품과 함께 천천히 이야기했다.
샤갈의 기쁨: 사랑이 몸을 띄우던 순간
스크린에 〈생일〉이 비춰지자 참가자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샤갈은 사랑하는 아내 벨라와 함께 했을 때 기쁨을 표현했다. 기쁨이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 몸을 움직이게 하는 순간임을 그림 하나로 설명하는 듯했다.
반고흐의 기쁨: 노랑이라는 감정의 온도
반고흐의 〈해바라기〉와 〈꽃피는 아몬드나무〉를 보여주며 그의 편지 구절을 읽어주었다. “노랑은 나에게 기쁨을 주는 색이야.” “해바라기들은 그에게 줄 환영의 기쁨을 보여줄 것이다.” 그에게 기쁨은 빛, 따뜻함, 환대, 설렘 같은 감정이 색 하나로 환원된 결과였다. 누군가는 말로 기쁨을 설명하고 누군가는 일기로 기쁨을 기록하지만 반고흐는 색으로 기쁨을 고백하는 사람이었다.
칸딘스키·로스코: 형태가 사라지고, 감정이 남은 상태
칸딘스키와 로스코의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기쁨이란 감정은 꼭 해바라기나 꽃처럼 구체적인 형태가 아니어도 색과 결만으로 충분히 드러날 수 있다고. 형태를 지우고 색을 남겼을 때, 오히려 감정은 더 정확해진다. 말을 덜어낼수록 마음이 드러나는 것처럼. 바로 그 지점이 오늘 ‘추상화’를 선택한 이유였다.
왜 스퀴지인가. “생각보다 마음이 앞서게 되는 도구”
그리고 나는 사용할 방법을 소개했다. 물감을 올리고 스퀴지로 밀어내는 간단한 방법. 하지만 그 간단함 속에 오늘 찾고 싶은 기쁨의 결이 숨어 있었다. 스퀴지는 내가 통제하는 것보다 순간의 감정과 힘, 리듬에 따라 색이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마음이 먼저다. 그래서 기쁨이 먼저다.
천천히 물감을 짜고 스퀴지를 한 번 밀어냈다. 물감은 내가 계획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스치듯 번지고, 서로 만나 다른 색을 만들었고, 예상치 않은 결이 생겼다. 그 우연이 바로 예술의 시작이었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고 조심스러운 첫 스트로크가 캔버스 위에 내려앉았다. 손끝에서 색이 펼쳐지는 순간 모두의 얼굴은 조금씩 부드러워졌고 카페 안의 온도는 더욱 따뜻해졌다.
5. 오늘의 기쁨을 색으로 표현한 순간들
발표 시간이 되자, 참가자들의 이야기가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흘러나왔다. 색 위에 남겨진 기쁨의 순간들은 모두 달랐고, 그 차이만큼 아름다웠다.
① “아들이 결혼해요.”
폭죽이 터지는 듯한 빨강과 금빛의 선들
→ ‘뛰어오를 듯한 기쁨’의 색
② “평생 이성적으로만 살아왔어요.”
내년에 은퇴한다는 말과 함께,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라는 조심스러운 고백 → 거친 스퀴지의 흔들림 속에서 눈시울을 붉히던 장면
③ “풀릴 듯 말 듯했던 일이, 드디어 해결됐어요.”
시원한 파랑을 크게 펼쳐내며
→ “이 순간의 해방감, 너무 좋아요.”
④ “그림 그리는 시간이 저에게는 귀한 선물 같아요.”
잔잔한 초록과 옅은 분홍의 조화
→ “함께하는 시간이 기쁨이에요.”
그림은 말보다 먼저 마음을 드러내는 도구임을 모두가 동시에 체감한 시간이었다.
6. 오늘의 기쁨이 남긴 것: “작고 따뜻한 회복의 시간”
워크샵이 끝날 무렵 참가자들은 각자의 작품을 들고 서로의 색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는 느낌이었다. 누구의 기쁨도 크고 작음을 비교하지 않았고, 누구의 감정도 가볍다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 이런 순간이 있었구나” 하고 조용히 인정하는 시간이었다. 그 작은 인정이야말로 자기탐구의 가장 깊은 시작점이었다.
7. 마무리: 우리는 오늘, 서로의 색을 축복했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문을 나서는 참가자들의 표정은 들어올 때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조금 더 부드럽고, 조금 더 환하고, 조금 더 자기 자신에게 가까운 얼굴. 오늘의 색들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각자가 살고 있는 삶의 조각이었다. Re:me는 그 조각들이 연결되어 서사로, 의미로, 브랜드로 확장되도록 이 다음 걸음도 함께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