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역사속의오늘사건] 1883년 3월 6일

고종, 태극기를 정식 국기로 채택하다

by 나그네
마건충이 쓴 '조선책략'에 나온 태극기 샘플 (사진은 청나라 국기다)

국왕을 상징하는 어기가 아닌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청나라의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서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마건충이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마건충이 제안한 조선의 국기인 ‘청룡기’는 청의 국기인 ‘황룡기’의 도안에 착안하여 동쪽을 의미하는 색인 청색과 황룡기보다 적은 4발가락 가진 용을 제시함으로써, 마건충이 말한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사실과는 거리가 있고, 청의 속국임을 나타내게 하려 했다.

조선에 독자적인 국기 사용을 제안한 한미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겨한 슈펠트 제독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비슷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생각해, 조선 대표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김홍집이 제안하고 이응준이 그린 태극기

이에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다.

정확하지는 않은데 비슷한 것으로 고종이 만든 태극기로 4괘가 없이 흰바탕에 청홍 태극만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 고종은 태극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 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기를 제작하게 하였다. 이는 고종이 계승하고자 했던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깃발은 다소 일본 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태극기 문양이 정해졌다.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그린 태극기. 이 태극기가 정식 국기로 채택이 된다.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였다.1882년에 고종의 명을 받아 처음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태극기는 1883년 3월 6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역사속의오늘사건] 1920년 3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