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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영 Jul 03. 2024

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 2017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는 <판의 미로>말고는 본 적이 없다. 그마저도 내 취향의 영화가 아니여서 굳이 찾아보는 감독은 아니였는데 이 영화는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꽤 괜찮았다.


#1 줄거리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냉전시대이다. 미국과 소련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그 시절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듯한 비밀기지의 청소부인 엘라이자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엘라이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로, 언제나 같은 시간에 일어나, 욕조안에서 자위를 하고 삶은 달걀을 먹는다. 그 후 버스로 출근하고 10년 넘게 같이 일하는 젤다라는 흑인 여자와 수다를 떤다.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엘라이자는 어느 날 동료인 젤다와 함께 비밀구역을 청소하게 되고 거기서 인어 괴수를 만나면서 일상이 바뀌기 시작한다. 인어 괴수에 호기심을 느낀 엘라이자는 삶은 달걀을 들고 교감하기 시작하여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하게 지내게 된다. 하지만 연구기지의 보안책임자로 나오는 스트릭랜드는 그 괴수를 해부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되고 그로부터 괴수를 구출하려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2 왜 엘라이자는 인어 괴수에게 무서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녀는 벙어리이자 청소부이다. 많은 재산도, 가족들도, 멋진 친구들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녀는 소수자였다.

괴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괴수에게서 두려움보다 호기심과 공감을 보여주었다.

남들을 바라볼 때 그들의 결점을 있는 그대로 보고 공격하지 않고 받아주는 것은 꽤나 어렵다.

남을 깎아내려 내 자존감을 채우고 나와 다른 점은 틀린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요즘 시대에서 엘라이자같은 인물은 다른 의미로 소수자이다.


#3 소수자들의 이야기

 엘라이자 주변 인물들도 흥미롭다. 

일단 엘라이자 옆집 할아버지는 티비로 자기가 좋아하던 옛날 배우가 출연하는 무대를 틀어놓고,  집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간다. 그러다 엘라이자가 잠깐 채널을 뉴스로 바꾸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는 질색을 하면서 다시 채널을 바꾸라고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해고 당한 회사의 사장에게 어떻게든 다시 직업을 얻기 위해 작업을 하면서, 바깥 세상의 정치나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과거의 예술에 빠져 사는 히키코모리 예술가의 모습이다. 남들과 전혀 교류하지 않는 그가 만나는 인물은 단 두명이다. 옆집에 사는 주인공 엘라이자와 자기가 좋아하는 파이집 주인 남자. 참혹하고 힘든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 늙고 보잘 것 없는 게이 할아버지, 그는 엘라이자와 마찬가지로 소수자였다.


영화에서 유일한 악역으로 나오는 스트릭랜드. 그는 등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캐릭터인지 단번에 드러난다. 항상 전기곤봉을 들고 다니며 인어 괴수를 멸시하며 엘라이자와 젤다 또한 대놓고 무시하며 혐오감을 드러낸다. 

엘라이자와 젤다를 불러놓고 신에 대해 설교를 늘어놓는다. 신의 형상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만, 이 중에서 나와 제일 가까울 거라고 한다. 이때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젤다를 포함시키고 엘라이자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는 엘라이자는 '인간'으로도 취급 안한다는 점과, 흑인 여자 청소부보다는 백인 남자가 더욱 우월하다는 우매한 사상에 빠진 인물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씬이다. 

또한  그는 누구를 사랑하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 그의 아내, 아이들, 부하와 상사들 아무도 그와 친밀한 감정을 공유하지 않는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딱 한 장면 나오는데, 자신의 캐딜락을 보고 반해 손을 흔드는 젊은 남녀들에게 손을 수줍게 흔들어주는 그의 모습이다.





#4 인간다움이란 사랑할 줄 아는 것

이렇듯 영화에서는 다들 어딘가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치고 감정을 교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트릭랜드는 스스로 우월자라고 생각하여 소수자들을 배척하고 인물이지만, 그 역시 '소수자'였다. 

마치 신인 것 마냥 행동하지만 그도 결국 자신의 상사에게는 꼼짝 못하는 일개 사람에 불과했다. 엔딩에 다다라서 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평생을 바쳐 충성했던 상사에게 버려져 비 맞은 생쥐 꼴마냥 날뛰는 그의 모습은 스스로 그토록 혐오하던 모습이었다.

그는 결국 자기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했던 괴수에게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는 죽기 직전에야 그 괴수가 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어 괴수에게 질투를 느끼고 '인간'이 아닌 엘라이자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는 모순적인 행동도 결국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이자 소수자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긋난 열등감은 남들에게 모질게 대하고 비방하며 스스로에 대한 위안으로 대체했다.


그렇다면 스트릭랜드와 작중 다른 모든 인물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인간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랑할 줄 안다. 엘라이자도, 옆집 할아버지도, 젤다도, 결국 그들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을 위해 컴플렉스를 이겨내고 용감하게 세상 밖으로 나가 스트릭랜드와 맞선다. 아무런 힘도 지식도 용기도 없던 그들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사랑뿐이었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5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제목은 무슨 의미일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사랑은 결국 인간을 뜻하고 인간의 모양은 마치 물의 모양과도 같다는 것이다.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나는 어떤 모양의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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