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우리 반에서는 매달 한 번씩 짝꿍을 새롭게 정하는 날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성별을 번갈아 가며 한 달은 여학생들이 남학생 짝꿍을, 그다음 달은 남학생들이 여학생 짝꿍을 고르는 방식을 취하셨다. 하지만 이 행사는 나에게 언제나 불안과 긴장, 그리고 불쾌감을 안겨주었다.
여학생들이 남학생 짝꿍을 고르는 날이면, 모든 남학생들은 교실 뒤쪽에 줄지어 서게 된다. 여학생들은 차례로 자신이 원하는 남학생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은 나에게 늘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며 친구들이 하나씩 선택되어 자리에 앉을 때, 뒤에 남은 남학생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거의 항상 마지막까지 남겨졌다.
마지막에 선택된 여학생이 나를 마지못해 선택할 때면, 그녀의 얼굴에는 실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짝꿍을 선택해야 하는 아쉬움이 담긴 그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치욕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심지어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미안함마저 느꼈다. 내가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저 남겨진 결과로 함께 앉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학생들이 여학생 짝꿍을 고르는 날이 오면, 나는 끝까지 선택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남은 여학생들 중에서 그나마 조금 덜 부담스러운 친구를 선택했다. 그리고 자리에 가서 ‘미안하다’고 적힌 쪽지를 몰래 그녀에게 건넸다. 그때마다 선택의 부담감과 상대방에게 미안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경험은 나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매달 반복되는 이 상황은 나의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렸고, 나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교실 뒤에 혼자 남겨진 시간은 마치 세상이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나는 짝꿍을 정하는 방식을 도입한 담임선생님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커졌다. 매달 겪는 치욕적인 경험은 선생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고, 그분의 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불안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오히려 거절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그때의 경험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상처로 끝나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어린 시절의 작은 경험이 나의 삶에 이렇게 깊은 흔적을 남길 줄은 그때는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