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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Jun 18. 2024

엄마 어렸을 적엔 INTRO

라떼는 말이야...


"엄마~내 친구 서연이는 염색 열 번도 넘게 해 봤대. 어제는 보라색으로 염색해 왔어. 나도 해주면 안 돼?"

 7살 때 염색 노래를 부르던 딸아이에게 초등학교 입학 후 해준다는 약속을 하고 1학년때 염색을 해줬었다. 나를 닮아 머리카락이 얇고 약한 아이라 끝에서 10센티 정도까지만 해줬었는데 결국엔 머리가 많이 상해서 단발로 자르고 2년이 흐른 뒤였다. 한 번만 해주면 다신 말 안 하겠다더니 역시 아이는 아이다. 자신의 약속은 잊고 또 친구의 염색머리를 보더니 이렇게 졸라대는 것이다.

 "염색은 머리 상해서 안돼. 그리고 전에 한번 해봤잖아. 한번 해봤음 된 거야."
 "그땐 끝에만 했잖아. 그리고 나도 보라색 하고 싶단 말이야."

 이렇게 아이가 약속도 잊고, 계속해서 졸라댈 땐 역시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oo아.. 엄마 어렸을 적엔 말이야..."
 또 시작되었네. 엄마 어렸을 적엔...

 나는 딸아이가 뭔가 사달라거나 때를 쓸 때 타이르다 안되면 꼭 옛날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나도 파마해 줘. 미미인형처럼 예쁘게 파마하고 싶어. 응?"

 늘 짧은 단발만 했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엄마에게 파마를 해달라 했다. 당시 바비나 미미인형 같은 마론인형에 빠져서 긴 파마머리를 한 늘씬한 금발인형을 상상하며 파마를 해달라고 엄마를 졸랐던 것이다.
 "그래. 파마해 줄게"

어쩐 일인지 순순히 파마를 해주겠던 엄마의 말에 신이 나서 동네 미용실로 조르르 따라갔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거울 속에는 내가 생각하던 마론인형이 아닌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뽀글 머리 양배추인형이 앉아있었다.
 "이게 뭐야~시커먼스 같아. 엉엉"

거울 속 양배추 인형을 보며 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막 파마 롯드를 빼내어 심각하게 부푼 뽀글 머리를 하고 골목길을 지나칠 때 여기저기에서 키득키득 웃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 한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땅만 보며 다녔더랬다. 그렇게 지독히 풀리지도 않는 뽀글 머리파마를 1년 내내 하고 다니며 당시 유행하던 개그프로 캐릭터인 시커먼스를 닮았다며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놀림을 당했었다.



 마치 어제일처럼 30년도 더 된 일을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면, 딸아이는 염색해 달라고 조르던 사실은 까마득히 잊고 엄마의 옛날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딸아이가 뭔가 조르려고 하면 "엄마, 어렸을 적엔.."이 한마디로 아이를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할머니께 들려달라 조르던 옛날이야기처럼 별것도 아닌 이야기가 지금 딸아이에겐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고스란히 남겨진다.

 "칫. 그건 파마고.. 난 보라색염색 하고 싶단 말이야~"
 "그래. 보라색 양배추머리하면 엄청 귀엽겠다!"
 "아니~ㅠㅠ"

 요즘은 옛날이야기를 하려 하면 라떼의 이야기로 치부되어 버리기 일쑤이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재미있게 들어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남겨보려 한다. 내 아이가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도록, 엄마 어렸을 적엔 말이야...

매주 일요일 연재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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