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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Jul 21. 2024

군부대 무단침입사건!

엄마 어렸을 적엔 -5-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건강한 이팔청춘 군인아저씨들이 아주 건강하게 내보낸 분뇨들이 가득한 푸세식 화장실로 그대로 떨어진 언니는 천만다행으로 화장실 바닥을 재빠르게 짚어 다리 한 짝 외의 다른 신체 부분은 끔찍한 그것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다. 문제는 언니가 빠진 곳이 국군부대 화장실이었단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우리들이 저 멀리 연병장을 돌고 있던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큰 소리로 도와달라고 부르자 그중 대장으로 보이는 한 명이 군인들을 멈춰 세웠다. 그리곤 그 대장아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뭔가를 지시받은 두 명의 군인 아저씨들이 헐레벌떡 우리 쪽으로 뛰어왔다.

 '도대체 저 아이들이 왜 그렇게 소란스러울까' 하는 의아함으로 별생각 없이 뛰어왔을 군인아저씨들은 화장실에 빠져 있는 한 여자 아이와 뚫린 지붕을 번갈아 보며 기함을 했다.

 "어떻게 할까요?"

 작대기 한 개인 아저씨가 자신보다 작대기가 하나 더 많은 아저씨에게 물었다.

 "어쩌긴, 민간인이 부대에 들어왔단 게 알려지면 절대 안 돼. 그러니 왔던 길로 다시 올려 보내자."

 심각한 얼굴로 의견을 주고받던 군인들은 의견을 제시하고도 어떻게 아이를 왔던 길로 되돌려 보낼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언니를 올려주자면 어쩔 수 없이 언니의 oo 묻은 몸을 만질 수밖에 없으니 그럴 수밖에...

 잠시 후 굳은 결심을 한 듯 한 아저씨가 언니를 부서진 지붕을 통해 위로 올려줄 테니 위쪽에서 끌어줄 어른을 불러달라고 했다. 골목안집 다섯 가족의 어른들은 모두 일을 나갔기에 우리는 골목길 박 씨 아저씨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부디 이 사건이 조용히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은 골목안집을 벗어난 순간 이제 우리만의 비밀이 될 수는 없게 되었다.

 허겁지겁 아빠를 부르러 간 박 씨 아저씨 셋째 딸이자 우리와 함께 놀았던 지야언니는 잠시 뒤 박 씨 아저씨를 모시고 왔다. 박 씨 아저씨는 대로변 고물상을 운영했는데 오후 4시 이후면 거의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마침 집에 계셨던 것이다. 대충의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손바닥 쪽이 빨간 목장갑을 끼고 달려온 아저씨는 서둘러 옥상 위로 올라가 위에서 언니를 잡아 올렸다. 맨손으로 언니의 다리를 잡고 올려야 했던 군인아저씨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졌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칫 민간인 군부대 침입사건으로 뉴스에 나오거나 더 큰 징계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말갛고 예쁘던 언니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얼룩져 평소의 새침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씨 아저씨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의 그것으로 범벅된 다리를 절뚝거리며 공동수돗가로 온 숙이언니는 '엉엉' 대성통곡과 함께 30분 이상 다리를 씻어냈다. 독한 냄새의 오물을 씻어내며 이날의 끔찍한 기억까지 함께 씻어내려는 듯 씻고 또 씻었다.

 박 씨 아저씨에게 된통 혼이 나 집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이들도, 졸지에 민간인 화장실 출입으로 발칵 뒤집힌 군부대와, 화장실에 빠진 오물 묻은 아이를 지붕 위로 올려야만 했던 말단 군인아저씨들도, 사건 당사자인 숙이언니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그날의 기억만은 선명하게 그때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사건 이후 한 달 가까이 언니를 볼 수 없었는데 똥독으로 인한 심한 피부질환이 생겨 앓아누웠었다고 한다. 언니는 한동안 똥통에 빠졌다는 민망함과 괴로움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지금 내 몸에도 온몸에 오도독 닭살이 돋을 정도로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본인은 오죽했으리라...

  그날 이후 골목길 아이들에게 어른들로부터 옥상 출입금지 명령을 당했다. 그렇게 우리는 즐거웠던 놀이터 하나를 잃고 말았다.



  구도심 아파트로 이사 후 불편해진 것 중 하나인 화장실, 집에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로 인해 아침마다 우리 집 남매의 화장실 쟁탈전이 벌어진다. 그럴 때면  한 지붕 다섯 가족이 야외 공중화장실 두 칸을 의지하여 아침마다 줄을 서서 사용하던 그때가,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인 군부대에, 그것도 군부대 푸세식 화장실로 떨어졌던 숙이언니가 떠오르곤 한다.

 '언니는 그날의 일을 추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잊고 싶은 과거일 뿐일까? 혹은 여전히 예쁠까?' 하는 별것 아닌 궁금증들이 아련한 추억 속으로 자꾸 나를 잡아 끄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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