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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를그리다 Jul 14. 2024

엄마 어렸을 적엔 -4-

그녀는 예뻤다

 80년대 말 당시 유머 1번지라는 개그프로가 인기였다. 지금의 개그콘서트라 보면 되는데, 내가 8살 때 바비인형을 상상하며 엄마에게 파마를 해 달라고 졸랐다가 졸지에 시커먼스가 되었던 사건! 바로 그 뽀글 머리에 흑인모습을 한두 명의 개그맨이 나와서 반복되는 음률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시커먼스도 유머 1번지의 한 코너였다. 또 대기업 회의실에서 회의를 하는 내용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 -잘 돼야 될 텐데, 잘 될 턱이 있나 같은 전 국민 유행어를 만들어 낸-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군대 내무반 이야기인 동작 그만 등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들을 개그로 풀어내서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중 나는 시커먼스와 동작 그만을 가장 재미있게 봤었는데 집 앞 군부대 군인 아저씨 중 동작 그만에 나오는 캐릭터를 닮은 아저씨가 있었다. 개그맨 고 양종철 씨가 하던 물방개라는 캐릭터로 우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물방개춤이 웃음을 자아냈던 것이다. 약간 길쭉한 달걀형 얼굴에 짧은 머리카락, 약간은 험상궂은 모습이 조폭같이 생겼지만 실상은 동네아이들에게 물방개춤을 보여주며 잘 놀아주었기에 우리는 그 군인아저씨를 물방개아저씨라고 부르며 따르곤 했다. 9살, 10살 아이에게 아저씨라 불렸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 스물두어 살 된 푸릇푸릇한 청년이었을 텐데 아저씨라 불리어도 개의치 않고 우리들을 웃겨주고 건빵도 자주 챙겨줬던 물방개아저씨 덕에 총칼을 든 군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군인이 고맙고 지나가는 군인청년들을 보면 괜히 반갑기까지 하다.

 물방개아저씨는 우리 중 특히 숙이언니를 좋아했는데 내가 봐도 그 언니는 우리 중 가장 예뻤다. 언니는 내가 사는 골목길 집이 아니라 대로변 건너 2층 양옥주택에 살고 있었다. 당시 흔치 않던 빨간 벽돌집에 살던 언니는 좋은 집에 사는 만큼 항상 예쁜 옷에 단정한 매무새를 하고 다녔다. 까무잡잡하지만 말간 얼굴이 새침해 보이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촌스러운 골목길 아이들 사이에서 더욱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군부대 앞 공터에서 놀다가 물방개 아저씨가 보초를 서는 날이면 우리는 조르르 달려가 아저씨를 졸라 건빵을 받아내기도 했는데 숙이언니가 있는 날이면 건빵 수확은 배가 되었다. 건빵뿐만 아니라 아저씨가 평소 아끼고 꿍쳐뒀던 튀긴 건빵에 고급과자인 사브레를 주기도 했다. 배로 얻어낸 건빵덕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역시 여자는 예쁘고 볼 일이라는 것을 9살 나이에 알아버렸으니 조금 서럽기도 했던 거 같다.

 하루는 숙이언니 포함 골목집 아이들이 주인집 옥상에서 놀게 되었다. 골목 안 단층집들의 옥상은 대게 어린이 허벅지까지 오는 담으로 끝이 막혀있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구조 상 그 담만 넘으면 바로 옆집 담으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아이들은 그런 골목집 옥상을 이 집, 저 집 뛰어넘으며 놀기도 했다. 옥상 중에는 주인집 창고 옥상과 군부대 옥상이 바로 연결된 곳이 하나 있었다. 군부대에 함부로 넘어가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에 한 번도 넘어가 보지 못했던 곳이었기에 옥상 아래의 건물이 부대의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는 몰랐다. 그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숙이언니와 주인집 옥상에서 고무줄 뛰기를 하던 그날, 이 언니의 신발이 옆 군부대 지붕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언니는 옥상에서 놀던 아이들 중 처음으로 금지구역인 부대옥상 건물로 넘어가게 되었다. 금기의 장소로 발을 내딛는 언니를 다함께 긴장된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붕은 튼튼한 쇠나 기와가 아닌 플라스틱 같은 골판 슬레이트였는데, 언니는 조심조심 지붕으로 건너가 신발을 주워 안심하며 우리를 향해 신발을 든 손을 흔드는 순간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우직, 푹! 아악! "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언니는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곧이어 기괴한 괴성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놀란 우리는 부대 안쪽 멀리서 훈련받고 있던 군인 아저씨들을 힘차게 불러댔다.

 "아저씨, 도와주세요~여기 사람이 빠졌어요!!"

 언니는 고통과 괴로움이 뒤섞인 음울하면서도 기괴한 소리로 울음 섞인 비명을 질렀는데 그 지붕아래에 있던 은 바로 재래식 화장실이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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