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명상 - '길'

by 모모

한글은 한자와 같은 상형 문자는 아니지만 ‘길’이라는 글자는 참으로 길을 닮았다. 우선 글자를 이루는 자모음자들이 다양한 길의 모습 같이 생겼다. 모퉁이를 지나 꺾이는 골목길 ㄱ, 의지의 외길 ㅣ, 우리 인생길처럼 속절없이 굽어지고 휘청거려야 하는 운명의 ㄹ.

뿐인가. 세 길(음운)은 응집성 있게 손잡고 하나를 이룬 모양새라기보다는, 서로 만날 듯 비껴가며 독립적으로 각자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형세이다. 획들이 옹기종기 모여 때로는 접촉사고도 일어나는 다른 3음운 글자들, 예를 들어 동’, ‘괄’, ‘책’ 등의 글자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외롭게 생긴 이 ‘길’이라는 글자는 길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길’의 세 음운의 만남처럼, 누군가와 만나서 한 동아리를 이루고 함께 하나의 소리를 낼 때면 특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걷다가 돌아보면 우리는 성글게 모여 각자의 길을 갈 뿐이었다. 각자의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체온을 나누기 위해 가까이, 서로를 불러들이며 잠시 모여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만날 수 없는 획들의 운명을 알기에 이렇게 동그랗게 모여있는 것이 더 소중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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