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제철 딸기 유감

by 모모

한반도의 혹한기. 1월의 마트에서 때깔 좋게 벙실거리는 딸기를 만나면 어쩐지 마음이 편치가 않다. 사실 과일 몇 알을 먹기 위해서 무려 플라스틱 대야 2개를 소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원래부터 딸기는 선뜻 사기가 불편한 과일이긴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딸기가 더욱 못마땅한 과일이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제철 먹거리는 최고의 보약이자 환경을 지키는 작은 실천이라고 믿는 나는 장을 보기 전에 제철음식들을 검색해보곤 한다. 사실 검색하고 가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소쿠리마다 기세 좋게 철철 넘치는 것, 평소보다 저렴해진 것들을 고르면 그게 대체로 제철 먹거리들이다. 그것들 위주로 사 와서 음식을 마련하면 그것이 이 우주가 짜주는 메뉴판, 계절이 주는 밥상이 된다.

아무튼 그날은 검색의 도움이 필요했던 터라 월별 제철 음식을 검색하던 중 나는 의외의 단어의 조합을 보고 말았다. 대한민국 최대의 포털사이트에서 공식 정보로 제공하는 바, 1월의 ‘제철’ 음식으로 ‘딸기’가 소개되어 있었던 거다.

뭣이라? 1월이 딸기의 ‘제철’이라고?

딸기뿐만이 아니라 요즘은 많은 작물이 원래의 계절을 잊어버릴 만큼 사시사철 재배되거나 단지 몸값을 높이기 위해 계절을 앞당겨 생산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태양 대신 땔감을 쓰고 벌을 대량 구매하여 수정을 유도하여 얻은 겨울딸기가 우리의 제철 과일이 될 수는 없는 거다. 슬금슬금 팔, 다리 집어넣더니 끝내는 원래 내 집이라고 우기는 자를 볼 때처럼 거부감과 화가 일어났다. 말하자면 겨울딸기의 ‘제철’ 선언은 너무, 뻔뻔했다.

내가 딸기도 아니고 봄도 아니건만 부당하게 무언가 뺏긴 듯한 이 억울함, 서글픈 기분은 왜일까? 그건 아마 이 자본주의의 우주 안에서 몸값을 올리기 위해 제철을 빼앗긴 존재들이 딸기만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너의 속도로 살지 말라고 들쑤신다. 남들과 같이 한가롭게 가을햇살 아래 여물어가지 말고 남 먼저 성장촉진제를 맞고, 몸집을 부풀리고, 그럴듯한 설명으로 포장하여 스스로의 상품성을 높이라 한다.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하고 자기 볼기짝을 때려가며 쉬지말고 나아가라 한다.

그리하여 조숙에 실패한 우리 ‘제철인간’들은, 야무지게 자기 속도대로 크는 우리 소중한 아이들은,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서글픈 자화상을 갖게 되기 십상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적에도 비닐하우스 과일은 있었고, 조기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 그것은 ‘타고난 속성,속도에 맞게 크는 것이 정상’이라는 기준 아래 받아들여졌다. 그랬기에 우리 어머니는 곤궁한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가정의 맛을 책임진 주체로서 “하우스 과일 싱겁다!” 하고 당당하게 거부하곤 했고, 아이를 한두 군데 이상 학원에 보내면 ‘극성 부모’, ‘별나다’라는 딱지가 붙곤 했던 것이다.

이젠 그 기준이 흔들림을 넘어 가치가 전복되었다. 제철을 앞지른 비싼 과일을 사지 못하는 것은 단지 무능한 소비자일 뿐이고, 아이에게 먹고 입히는 ‘이상’의 무엇을 하지 않는 부모는 무관심한, 심지어는 자녀의 가능성을 방치하는 부모라는 오명을 쓰게 된다.

걷는 무리에서 누군가가 뛰니까 모두가 뛴다. 모두가 뛰니 뛰는 게 기본값이 되고 그중의 한 명이 날아가면 뛰는 이들은 다시 뒤처진 족속이 돼버린다. 원래 인간은 날 수 없는 존재라고, 저 날아감 끝에는 무엇이 있을 거냐고, 걷고 뛰는 이들은 사유하지 않는다. 다만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할 뿐이다.*

그러니 이 광풍 속에 조난당하지 않고 제정신 붙들어 매기 위해서는, 우리의 욕망 이전에 무엇이 본디이고 제철이었던가를 끊임없이 상기하는 길밖에 없지 않을까? 뱉고 보니 참 무력한 말이다 싶지만 참과 거짓을 감별하는 그 깨어있음부터 지켜나가고 싶다.

아이들이 타는 승합차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원색 찬란하게 써놓은 저 ‘FIRST, FAST, HIGHEST’는 거짓 선동일지언정, 햇살 아래 졸졸이 서서 승합차를 기다리는 꼬마들의 개구진 웃음은 진실이고 우리의 진짜 열매들이 아닌가.

바야흐로 5월. 중소형 마트 앞마당에는 딸기들이 인심 좋은 가격을 매달고 쌓여 있다. 조기교육으로 내달려온 창백한 수재처럼 흠 없이 반질거리던 겨울딸기와는 달리 투박한 모양새로 편하게 사람들 손에 들려가 실컷 먹여지고 잼으로도 변신할 예정이다. 비록 귀하신 겨울딸기에 첫 단물을 빼앗겨 조금은 밍숭한 존재가 되었지만 뭐 어떠랴. 우리에겐 ‘쪽수’가 있다! 지나가다가 언뜻 보아도 넘치다 못해 마당까지 삐져나와 있는.


늦봄, 햇살 아래 반란하듯 떼로 뭉개고 앉은 딸기들의 선언을 듣는다. 이봐라, 봄을 오롯이 살아낸, 벌들이 춤추며 꽃 피워 준 우리가 바로 제철 딸기라고. 누가 뭐래도 우리가 찐이라고.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작중 인물들의 대화에서 차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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