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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Aug 20. 2024

23. 지옥에서

장편 현장소설 《카페 가는 길》

23. 지옥에서

  


  바깥은 점점 지옥같이 변해갔다. 나는 쉬는 날 그편이 싸게 들기에 기차를 탔지만, 마스크를 조금도 내릴 수 없게 감시를 받았다. 문학관이나 전시관 같은 데는 죄다 문을 닫아걸었기에 나는 태백선을 타고 하릴없이 탄광촌에 내려 고지대의 더 차고 매서운 바람을 맞다가 돌아오고는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쉽게 잊는다. 그즈음 전국에서 자영업자들이 생활고로 목숨을 끊고 있었다. 가깝게 시내만 해도 어느 한우음식점 업주와 한 측량사무소 소장, 상영관 5개의 신축 영화관 대표가 유서가 될 만한 것도 남기지 않고 자살했다. 그 영화관 건물은 거의 은행 빚으로 올렸으리라. 1층에서 3층까지 상가고, 열에 아홉은 공실인 채로인데 무슨 대책이 있었겠는가. 

  카페의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된 동안에 대형카페가 여럿 망했다. 겨울이 끝나가는데 비수도권은 다시 매장 안 자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위쪽 카페는 어떤가 보려고 올라갔다. 모녀가 하다가 나간 카페는 남자가 새로 들어왔지만, 돈가스에 더해 이번에는 냉면에 만둣국까지 파니 내 관심 밖이 되었다. 처음에는 직원 한 명을 두고 시작했었으나, 이제는 마스크를 꼭 덮어쓴 여자 업주 혼자뿐이었다. 나는 카운터에 놓은, 이용객들 각자가 일일이 수기로 작성하는 출입 명부에 눈길을 떨궈보았다. 나는 카페를 하려고 건물을 짓지 않았으며 인테리어 업자를 쓰지 않았는데도 꼴좋게 내 매장 사정만도 못한 것이었다. 그 여자는 이제까지 더러 내 카페에 들를 만도 했건만, 그 카페의 초기에 저 쉬는 날 딱 한 번 온 것이 다였다. 낯을 가려서 그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저나, 나나 외로운 산골에서 카페를 한다고 서로 친하게 지내려 적어도 열 번은 넘게 가서 커피를 사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여자가 괘씸했다.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일 터였다. 그 뒤로 나는 다시는 그 카페에 들어가지 않았다. 예전에 내가 알았고 여태까지 내 카페에 한 번도 오지 않았던 사람들도 더욱이 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이라는 핑계까지 있으니 마음에 걸림이 없을 터였다. 나는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이 안 되기를 바랐다.




  숍 인 숍이라 할 수 있었다. 커피를 못 팔면 다른 거라도 팔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느낌이 안 좋다 싶으면 집을 나서기 전에 ‘당장’ 거리를 해서 카페에 왔다. 상품을 깨끗하게 닦으면서 흠결의 유무를 확인한 다음 사진을 찍고 줄자로 실측해서 내용을 올렸다. 낚시꾼의 마음이 이 같은 것일까. 커피를 파는 것과는 또 다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조금 후에 휴대전화가 “당장!” 하고 외친다. 옳지, 물었다! 상대는 채팅 창으로 물건에 대해서 묻는다. 나는 이것만 팔았으면 하는 마음이 된다. 이상하게도 그 거래에서의 5000원은 일상의 5000원이 아니다. 몇 배나 값지게 여겨진다. 나는 상대와 거래 약속을 잡고, 제발 상대가 구매 약속을 지켰으면 하는 심정이 되어 거래 약속 시각까지 다시 기다린다. 다행히 상대는 약속을 지키러 온다. 5000원에 올려놓은 물건이 나가도 큰 성취감을 맛보고, 5000원짜리 물건을 하나 사려고 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여러 차례 고민한다. 5000원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그럴 것이면 무엇 때문에 커피를 팔겠는가. 물건이 나간 날은 한 가지라도 해냈다는 자긍심이 든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까지 차 한 대도 올라오지 않을 때는 아침에 그것이라도 팔지 않았다면 어찌 될 뻔했나, 하면서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카페가 쉬는 날, 한 친구가 담배 살 돈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말했다.

  “담뱃값 정도는 (글 쓰는 것처럼) 무에서 유를 만들면 되지.”

  버리려면 돈도 들고 귀찮아서 그 중고 플랫폼에 ‘무료 나누기’로 내놓은, 시트가 두세 줄로 길게 갈라진 팔걸이 회전의자를 받아다 두었었다. 의자 항목을 훑어보니 다 멀쩡한데 리프트의 가스가 빠져 높일 수가 없다는 팔걸이 회전의자를  ‘무료 나누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실어 와서 멀쩡한 리프트의 먼저 의자 하부와 새로 가져온 의자의 상부를 결합하는 방법으로 상품화했다. 1만 5000원에 올리자 얼마 걸리지 않아 누가 돈을 가지고 왔다.

  “자. 이렇게 하는 거다.” 

  나는 그 친구가 피우는 외산 담배를 세 갑 건네주며 말했다.




  나는 그 플랫폼으로 물건을 살 때 ‘생활 기스 있습니다.’라고 설명되어있는 것을 좋아했고, 전혀 상관없었다. 새로 사도 어차피 헌 물건이 되기 때문이었고, 자원 재순환에 기여 한다는 마음도 들었다. 어느 때는 그 좌판 놀이가 재미있지만은 않았는데, 이런 일례도 있었다. 거래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지만, 어느 아침의 여자는 유별났다. 매장에 전구 빛 LED 램프 한 개가 필요했기에 전날 밤 자기 전에 그 전구를 사야 하나, 생각을 굴려보다가 딸내미가 쓰다가 이제는 안 써서 내 서재 책상 위에 있는 탁상용 전등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전등에는 내가 전에 무엇을 하느라고 몇 개 샀던 전구 빛 LED 램프가 끼워져 있었다. 나는 그 전구를 빼내는 즉각 그 전등을 ‘당장 마켓’에 올렸다. 다음 날 아침 6시 반쯤 ‘당장!’이 왔다. 두 시간 뒤에 그 여자가 사가기로 했다. 그 여자는 제시간에 와서 도착 메시지를 보냈다. 검은 마스크는 꼈지만 검은 치마 정장으로 깔끔하게 차린 안경 쓴 여자였다.

  “이십육 베이스가 뭐죠?” 

  그 여자가 물었다. 나는 친절하게 소켓 규격을 적어두었다.

  “전구 사이즈예요. 이십육 베이스를 끼워야 해요.”

  “그런데 뚜껑은 없나요?” 

  무슨 뚜껑? 아니, 인터넷으로 한 번 찾아보지도 않았나? 그 탁상용 램프는 원래 아래위가 뚫린 원통형이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일었다. 

  “원래 뚜껑 없는 거고요.”

  그 여자는 내가 친절하게 넣어 준 종이 가방에서 탐탁지 않은 듯이 그 상품을 약간 빼 보더니

  “상태가 그렇게 좋지는 않네요?” 

  이른 아침부터 깨끗하게 닦은 것이었다. 어디 우그러들거나 한 부분도 없었다.

  “그러니까 싸게 팔지요.”

  내가 말했다.

  “죄송하지만, 상태가 좀 그래서 다른 분에게 주셨으면 해요.”

  아니, 중고가 그렇지……. 나는 부아가 치밀었다. 옷매무새는 말끔하면서 뭐 이런 거지 근성이 있나. 그러면 2만 4, 5천 원 주고 새것으로 사지 뭣하러 식전 댓바람에 5000원짜리를 사러 왔나. 내가 따졌다.

  “예약까지 하시고 이러시면 어떡해요?"

  죄송하다면서 여자는 총총히 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 여자는 도대체 어떤 물건을 바랐던 것일까. 그 플랫폼의 물건이야 손때 묻고 사용감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 여자는 아주 새 상품을 원했던 것일까? 그런 것이 바로 도둑 심보다. 오로지 새것, 새것, 새것……. 그런 여자는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대체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정말 희한한 종류의 인생이었다. 아마 내 카페에도 그런 여자들, 그런 사람들이 꽤 왔었을 터였다. 용모와 옷차림은 단정한데 이상한 인생들 말이다.




  방만했던 생활의 증거물들은 계속 나왔다. 나는 그것들을 팔면서 필요한 것은 사기도 했다. 거기에는 카페에서 쓸 수 있는 테이블이며 의자, 소파, 빙삭기, 전자레인지, 미니 전기오븐, 무선 전기 주전자, 커피잔, 수동 우유 거품기, 시럽 저그가 헐값에 나와 있었다. 내가 그 플랫폼을 미리 알았더라면 훨씬 더 돈을 안 들이고 카페를 차릴 수 있었을 것이었고, 앞으로 생활비도 대폭 절감할 수 있을 듯했다. 나는 특히 ‘알뜰매장’에 준 중고 전자레인지값 5만 원이 아까웠는데, 그 플랫폼에서는 2만 원짜리가 허다했다. 아는 사람들은 이제 ‘알뜰매장’에 갈 일이 없을 터였다.

  나는 아침마다 오늘은 무엇을 팔아야 하나, 궁리했다. 딸내미 용돈을 줄 때가 되었는데……. 큰 건을 하나 한다면 용돈을 줄 수 있을 텐데……. 사실 몇 건은 딸내미 용돈을 만들 수 있었다. 매장의 매출로 통장에 입금된 돈은 이상하게 나는 쓰기 싫어서 목욕비나 담뱃값 등 기타 잡비는 물건 판 돈으로 지출하고는 했다. 나는 나중에 보기 좋은 내열 유리 티포트를 샀기에 예전에 ‘다있군’에서 임시로 샀다가 마음에 안 들어 내어놓기 꺼려졌던 시꺼먼 도기 티포트―그 문학을 아주 싫어하고 덩치 큰 영감태기가 보이차를 마셨던―를 1000원 빼서 팔았는데, 2년이 넘도록 1000원어치를 사용한 셈이었다. 나는 이제는 쓸 일이 없을 60L짜리 장거리 산행용 배낭과 스웨덴제 전문가용 나침반도 그 플랫폼으로 현금화해서 카페의 메뉴 재료를 사기도 했다. 물건을 하도 많이 팔다 보니 그 플랫폼에서는 나를 아예 그런 업자로 알고 팔 물건이 더 없느냐고 내게 묻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날 돈을 벌면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야 돈이 모이는데, 팔 물건을 발굴해서 세척하고 규격을 재고 사진 찍고 기다리고 약속 잡고 시간 맞춰 넘기고 나면 공돈처럼 필요 없이 쓰게 되는 것이 폐해였다. 카페처럼 그리 힘들이지 않고 모은 돈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지만, 너무 고생해서 번 돈은 보상심리로 쉽게 써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소설을 써 갈 환경을 만들어 보려고 갖은 고생을 다 해 온 지가 벌써 몇 해째인데, 나는 그런 식으로 좌판 놀이에 빠져 있었다. 




  세계에 퍼진 그 바이러스로 마스크 세상이 된 지도 1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나야 이런 세상이 되기 전에도 자주 마스크를 써야 하는 돈벌이를 했었기에 금방 적응되었고, 땀이 차는 여름날 말고는 그다지 불편하게 여기지 않아 왔지만, 길에서 보면 마스크를 썼으나 눈매가 예뻐서 얼굴이 예쁠 것이라 짐작이 가는 여성들도 꽤 되고―마스크 때문에 더 얼굴을 보고 싶었다―얼굴의 반을 마스크로 가렸는데도 못생긴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사람들도 대단히 많았다. 그렇다면 대체 얼마큼이나 추한 것임에랴.

   

  핏이 이렇게 예뻐도 되나. 주변에서 마스크 어디서 샀냐 물어봐ㅠ


  노트북 컴퓨터나 휴대전화로 무엇을 검색하고 있으면 검정 마스크를 쓴 젊은 여자 모델이 그런 문구와 함께 한 마스크를 광고하는 팝업창이 자꾸 떴는데, 그녀는 크고 서글서글한 눈에 미모가 상당했다. 물론 그녀가 쓴 마스크 윗부분을 말한 것이다. 

  나는 새하얀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때면, 특히 여성은 제 팬티를 입 위에 덮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은밀한 부위에 착용해야 할 것을 얼굴 하부에 씌운 듯한 야한 감정을. 그것은 일전에 국회 국정감사 장면들에서 얼굴은 번듯하나 지독한 성정의 그 여성 전 법무부 장관의 마스크에서도, 그 여자 뒤로 배석한 젊은 여성의 마스크에서도 비슷한 감흥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런 마스크를 조용히 벗겨 내려보고 싶은 충동이 일 때도 있었다. 그것을 벗기면 수줍게 무엇인가가 드러날 듯한 기대감 비슷한 것이었다. 

  예전에, 이런 세상이 아닐 때 여름 바닷가에서 몸매를 거의 드러낸 늘씬한 여자들이 얼굴의 상부를 다 가리는 커다란 알의 선글라스를 쓰고 마주쳐 지나가는 순간 나는 항상 그런 여자들의 전체 얼굴이 무척 궁금했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며 콧날과 예쁜 입술 형태만으로는 그런 여자들의 얼굴이 예쁘다는 것을 담보할 수 없었기에 그런 큰 선글라스에 무척 답답했었다. 지금 세상이 그런 짝이었다. 나는 세상이 답답했다. 

  그랬다. 눈매가 예뻐도 믿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팬티 같은 마스크를 벗기면 입 끝이 한쪽으로 치켜 올라갔을 수도, 조커처럼 입가가 찢어져 있을 수도, 어쩌면 아예 입 자체가 없는지 어찌 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마스크 세상은 옳지 않았다. 그냥 마스크든 팬티 같은 마스크든 ‘연예인 마스크’든 다 벗어버리고 얼굴 전체를 드러내고 활보하는 세상이 맞는 것이었다. 이런 세상은 답답해서 괴로웠다. 




  이런 시국에도 카페는 관내만 해도 계속 생겼다. 그나마 나는 카페 건물 임차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카페는 지하수를 쓰기에 상하수도 요금을 못 내어 단수될 일도 없었다. 

  한 날 20대로 짐작되는 젊은 남자의 전화로 시작되었다. 모 포털 사이트에 내 카페 관련 글이 잘 뜨지 않으나, 가능성이 커 보여서 자기네 회사에서 광고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고, 자기네가 1년 동안 무료로 온라인 마케팅 작업을 통해 1년 후 현재에서 6000만 원 이상의 연 매출을 약속한다는 것이었다. 자기네가 내게 바라는 것은 단지 성공사례 자료, 그러니까 1년 후에 잘 되어 내가 인터뷰 영상 촬영에만 응해주면 된다고 반복적으로 열정적이며 끈질기게도 떠들었다. 세 번째의 그 긴 전화에 내가 물었다.  

  “이 시국에 광고한다고 되겠어요?”

  젊은이는 그러기에 오히려 이럴 때 ‘진행’해야 차후 더 효과를 크게 본다며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얼마는 내가 부담해야 할 돈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얼마냐고요.”

  젊은이는, 모 포털 사이트 장소 등록란 최적화 및 로직 업데이트에 맞추어 상위 노출 작업이며 웹로그 게시물, 방문자 게시글 등은 전부 무료로 ‘진행’하는데, 다만 내 카페 담당 관리자가 몇 명 필요하니 관리비로 1년 동안 145만 2000원이며 한 달에 12만 원꼴인데 다달이 분납은 안 되고 전액을 납부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난 여력이 안 돼요. 내 카페가 홍보 효과가 클 것 같아 회사 차원에서 나중에 시범적으로 다른 업체들에게 내세울 계획이라 하니 그 돈까지 무료로 지원하시던가.”

  물론, 젊은이는 그것은 어렵다고 했다. 세상도 지옥 같은데 새파란 것들이 벌써부터 어떻게든지 남의 돈이나 빼먹으면서 살려고 하니……. 내가 처음 당해보는 것이라 그토록 시달렸지만, 이후부터 그런 전화가 오면―젊은것들이 처치 곤란했다―바로 이렇게 말했다. 

  “글쎄, 난 돈 드는 건 안 한다니까요.”




  바깥이 지옥 같든 말든 나는 내 삶을 살았다. 나는 내가 할 것을 했다. 그간 불편했었는데 하나씩 편리해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애초부터 집에서 가져와 쓰던 유선 청소기는 흡입력은 세지만 긴 전선을 빼내야 하고 길이가 닿지 않아 이 콘센트, 저 콘센트로 옮겨야 하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느라고 발과 의자 다리에 걸리는 등 매번 불편하고 귀찮았다. 

  귀찮은 것이라? 일하다가 매장 앞마당에 다시 나가서 차를 제자리에 주차 시키는 것 따위가 나는 귀찮다. 말할 수 없이 귀찮다. 그러나 창의력을 요 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데, 그래서 내가 제도권 교육을 그다지도 싫어했을까? 주입식의, 창의력이 필요하지 않은 두뇌 노동이었으니……. 그렇게 공부를 한 자들은 창의력이 필요 없는 노동이나 하며 살다 죽는 것이다.

  한 날, ‘당장 마켓’에 고가의 유명 제품인 중고 무선 청소기가 2만 9000원에 나와 있었다. 나는 그 물건을 사 왔다. 흡입력은 조금 떨어졌으나, 편하고 자유로워 나는 매장 바닥을 청소하면서 삶의 기쁨 같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무엇이든지 미리 다 갖추고 시작할 것이 아니다. 전에 주워온 공기 순환기의 경우처럼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좋아지는 즐거움을 빼앗기는 것이다. 불편했던 날들을 겪은 다음에 편리해지니, 얼마 안 되는 돈으로라도 그 희열은 컸다. 이런 것이 삶의 행복이라면 행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골프는 감염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야외 스포츠로 여겨지고, 해외 골프 여행도 제한되어서 오히려 골프장들은 더 성업 중인 모양이었다. 내 카페 매출이 전년 정도로는 회복되었지만, 여름도 되었고 어쨌든 작년보다는 나아져야 하는데 며칠 이상하게 그럴 기미가 없었다. 이유는 그것인 듯했다. 아랫길의 내 현수막을 바로 길 건너에서 아래 식당 현수막이 딱 막고 있었다. 내가 골프장 쪽으로 차를 몰면서 확인해 보니 내 카페의 현수막은 통째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 현수막만 믿고 있었는데 큰일이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제 땅에 제 현수막을 건다는데 나는 달리 따질 도리가 없었다. 

  나는 오랜 시간 고심했다.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계속 생긴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하다.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 현수막도 문제가 많았다. 바람이 세어 현수막을 맨 끈이 늘어지면 사다리를 메고 내려가 고공 작업을 해야 하니 여간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고, 늦여름의 태풍이며 이상한 돌풍에 찢겨 4만 원씩 들여 다시 맞춘 것이 도대체 몇 번이었던가. 숲속에 숨어서 보이지 않아서 아무리 카페가 운치 있는 한옥 건물인들 소용없었다. 전서부터의 아이디어였는데, 진입로 입구의 입간판 자리에 한옥을 한 채 지어놓으면 골프장을 오가는 이들이 대거 몰려들 것 같았다. 즉, 한옥 기와를 넓고 높다란 간판을 세우는 방법이었는데, 중기도 와야 하고 내 기술로는 어림없었다. 아연 사각 파이프로 싸게 만들어도 용접이며 콘크리트 기초며 베이스 판 앵커 등등을 다 어찌할 것인가. 언제 알만한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견적이 인건비 포함 700만 원에서 800만 원이나 나왔었다.

  나는 진입로를 내려가 한참을 궁리하며 서 있다가 돌아오려는 중에 바로 길 건너에 붙어있는 절 소유 밭의 가장자리 언덕 비탈에 기대놓은, 커다란 도로 안내 표지판만 한 길 간판에 눈길이 멈췄다. 전해의 그맘때 진입로 입구 쪽에 웬 트럭이 한 대 섰는데, 무엇을 박는 소리가 들려서 내려가 본 적이 있었다. 내 입간판 바로 옆에 면 소재지 쪽으로 5km나 떨어진 염소탕 집의 큼직한 길 간판을 심고 있었다. 내가 그 인부들에게 말했다.

  “여기 절 땅이에요. 세우시면 안 돼요.”

  한 인부가 말했다.

  “도로 바로 옆인데 시 땅 아니에요?”

  나는 그 옆의, 내 현수막을 맨 전신주도 전력 공사에서 절 측의 허락 없이 세워놓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시 땅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그 안내판은 싣고 갔지만, 맞은편의 똑같은 것은 며칠 서 있었던 같았다. 얼마 뒤 내 입간판 뒤쪽에 그 안내판이 내팽개쳐져 있었다. 카페 바로 밑의 그 식당 주인이 누가 자기 땅에 심어놓았다고 뽑아서 거기에 휙 던져버린 것이었다. 나는 보기가 싫어서 그 밭 가에 안 보이게 치워 놓았었다. 나는 근 1년 만에야 고안할 수 있었다.   

  나는 거래하던 그 간판 집에 예전에 찍어두었던 카페 본채 사진을 이메일로 보냈다. 근사하게 플렉스 출력되었고 5만 원에 찾아와 그 틀에 작업해서 골프장 가는 사람들의 눈높이와 각도가 맞게끔 길가로 붙여 세웠다. 물론 그 위치도 절의 토지였다. 바로 다음 날, 쓸데없는 것을 ‘당장 마켓’으로 3만 원에 팔았으니, 실상 한옥을 실사 출력한 입구 간판 제작에 든 내 돈은 고작 2만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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