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처음에 내가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문제의 해답을 발견한 것은 서울 어느 다락방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자그마한 문고판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에서였다. 사춘기의 컴컴하고 깊은 낙심에 빠져있던 내 영혼은 그 작은 한 권의 서머싯 모옴으로 햇빛 이래로 빠져나왔다.
군대에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스물여섯부터 쓰기 시작했던 이 작품은 20년이나 걸려 완성되었다. 그때에는 이다지도 무겁고 가시투성이의 주제를 헤쳐 나갈 근기가 달렸다. 20년 전 그때 반쯤 쓰다 덮었던 이 작품을 나는 11개월 동안 다시 쓰며 이었다. 그 중간에 19년의 내 생업도, 다른 걸리적거리는 것들도 다 던져버렸다. 대단히 고되고 또한 희열에 찼던 작업이었다. 그리고 난 다시 이 작품에서 이탈했다. 이젠 호젓하고 편안하다.
결국엔 승리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나는 써내고 싶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 자신에 대한 참된 용기를 가지고 청춘의 진혼곡을 다시 쓸 수 있게끔 되었고, 그리고 감히 고전(古典)을 지향했다.
내게 다시금 이 작품을 쓸 기력을 주었던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 잭 런던을 추억하며, 내가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로 삼은 실제모델들, 땡비조교, 독사조교, 404 정찰대대 말년내무반장은 이 나라 육군에 반드시 필요한 훌륭한 군인들이었고, 이권휘, 손정원, 정용석, 이재건 상사는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밝힌다.
이제 나는 더 기다리지 않고 한 발짝씩 다가간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 행복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세상의 냄새나는 인간들과, 그 인간들의 조직체에 상처 입은 음울한 영혼들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
201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