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뿌연 13중대 연병장에 이제 넷만 남았다. 온종일 후덥지근하고 미풍 한 가닥 없었다. 그들은 연병장 변두리 플라타너스 밑에서 담배를 물고 그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중대 확성기에서 저녁 식사시간이 됐다는 군가가 나왔다. 많은 종류의 군가 중에 그는 그 노래가 제일 나았다. 그 군가는 제목과 같이 군인 된 자로부터 어떤 ‘충정’을 자연스레 짜 올리는 것 같았다. 남녀 혼성합창단―그는 특히 여자들의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은 진지하게, 씩씩하게 감정에 호소했다.
새파란 하늘 아래 꽃피는 강산
번영의 새 터전에 먼동이 텄다.
너와 나 조국 앞에 바친 젊음이
자유와 평화 위한 길이라면은
이 젊음 바치리라. 이 목숨 바치리라.
대대 취사장으로 가던 땡비조교가 일러줬다. 정찰대에서는 항상 저녁 느지막이 오거나 다음날 데리러 올 때도 있다고 했다. 땡비가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했다. 땡비는 이제 명령하지 않았다. 이젠 엄연히 타 부대원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땡비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혼자 돌아서 가는 앙상한 땡비의 뒷모습이 괜히 금방 그리워졌다. 땡비를 빼면 신병교육대는 재미없었다. 그냥 무슨 학교 같았다. 그는 졸업식을 마친 학교운동장에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정찰대는 올 기미가 없었다. 이제 저녁밥도 다 식었을 터였다. 그들은 땡비의 친절을 거절한 게 후회됐다. 기간병들끼리 한 테이블에서 밥이나 먹을 걸 하고. 시간을 때워야 했다. 결국, 그들이 취사장에 들어섰을 때 창문 밖이 요란했다. 106 보충대로부터 막 도착한 장정들이 대대 연병장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마네킹들은 예전과 똑같았다. 예의 그 육상경기는 보고만 있는데도 숨이 차올랐다.
확실히 시간은 갔던 것이다. 군복 가슴엔 어엿한 이등병 계급장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몸에 배었던 무슨 ‘훈병’스러운 태도 따윈 버리려 애썼다. 밥도 짝다리를 짚고 탔다. 그들은 자신들을 째려보는 취사병을 마주 째려봤다. 닭튀김이 조금 남아있었다. 일부러 식탁 위에다 식판을 비딱하게 올려놓았다. 이젠 직각 식사는 바보 같은 짓이었다. 제길, 그러고 살았었다니. 그렇게 그들이 막 한술 뜨려는 순간이었다. 삐익, 하고 멀리서 방송이 울렸다.
“아, 아……. 13중대에서 알립니다. 정찰대 신병 어딨나? 빨리 튀어 왓!”
그들은 스푼을 팽개쳤다. 젠장, 좀 전에 입소한 장정들의 신세와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열심히 뛰어갔다. 좀 더 기다리지 못한 걸 서로의 탓으로 돌리면서.
13중대 사열대 옆에 자그마한 지프차 한 대만 서 있었다. 그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그 지프차를 향해 연병장을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병장 하나가 마주 걸어왔다. 혹시 하고 넷은 멈칫했다. 큰 키의 병장은 이상하게 허여멀건 했다. 유순해 보이는 데다 구부정하고 걸음도 맥이 없었다. 그런데도 병장의 왼쪽 가슴에는 ‘정’자 비표가 달려 있었다. 쬐그만 비표의 ‘통’은 통신대, ‘기’는 기습대, ‘공’은 공병대가 맞았다. 사단 직할대 비표는 빨간색이었다. 거기에 분명히 노란 실로 ‘정’자가 자수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정찰대였다. 더 뭉그적댈 수는 없었다. 넷은 황망하게 어마어마한 목소리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병장이 답례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이등병들을 지나쳐 가던 길을 갔다.
“개새끼들. 어떤 새끼한테 경례를 하고 자빠짔노?”
지프차 운전석에서 누가 내렸다. 일단 노란 눈깔만 확 번뜩였다. 지프차에서 내린 병장은 체구는 작았지만, 핏기 없는 얼굴은 강퍅했고 노란 안구엔 가늘고 파란 실핏줄이 퍼져 있었다. 노란 눈깔이 당장 넷의 간이라도 파낼 것처럼 싸늘하고 날카롭게 욕을 뱉었다.
“야, 이 개새끼들아. 너네 새끼들이 정비대 신병이가?”
아, ‘정비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피죽도 못 얻어먹은 듯한 걸음걸이에 멀대같이 키만 컸던 그 병장은 빌어먹을 정비대 소속이었다. ‘정찰대’가 ‘정비대’에게 단체경례를 올린 것이었다. 대체 이 엄청난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넷은 뻘게진 낯으로 절망했다. 그런데 노란 눈깔의 왼쪽 가슴에도 정비대와 똑같은 비표가 붙어 있었다. 다만 악동 모양 머리에 아무렇게나 얹어놓은 군모와 양 가슴에 공정연대원의 것과 같은 하얀 공수 윙(空輸―wing)들이 달려 있는 것만 달랐다.
“개새끼들. 너네 새끼들이 우리 신병들 맞나?”
노란 눈깔이 경상도 사투리인 듯한-아니, 좀 더 센-운율의, 기분 나쁘게 째지는 목소리로 욕설인지 질문인지를 해댔다. 번들거리는 노란 눈깔은 많이 컸고 눈꼬리도 찢어져 있었다. 그 눈깔이 넷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병장은 사납고 야비한 살쾡이를 연상시켰다. 넷은 순간, 그 노란 눈깔의 백지장 같은 강퍅한 얼굴이, 야간에만 활동한다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북파공작원(北派工作員)*의 그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다. 게다가, 너무도 극심한 훈련들로 인해 안구까지 무슨 짐승같이 노랗게 변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러면 그렇지. 아까 그 병장은 자세가 나오지 않았어. 이렇게 노란 눈깔 정도는 돼야지. 넷은 이제 노란 눈깔이 멋져 보였다. 하지만 노란 눈깔은, 칼 같은 줄은 잡혀있기는 했지만 똑같은 민무늬 군복에다가 기습대 것과 같은 흉장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래도 이것저것 따질 수는 없었다. 숨 막히는 상황에서 신병들은 그냥 얼어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 이린 새끼들이 다 있노. 탑승! 어라, 동작 보지? 하차, 탑승! 개새끼들 빨리빨리 몬 하나? 하차.”
노란 눈깔 살쾡이가 정신없이 소리 질렀다.
“개새끼들. 더플 백 아가리에 물어. 전방 막사 돌고 선착순 한 명! 나머지 새끼들은 쥑이 삔다.”
신병들은 20 킬로그램이 넘는 더플 백의 손잡이를 물고 개처럼 뛰었다.
“이 개새끼들. 탑승! 하차. 탑승!……”
살쾡이는 집요했다. 그렇게 막사를 다섯 바퀴쯤 돌았을 때, 행정반에서 소위 한 명이 걸어 나왔다. 잘생긴 그 소위는 중키에 날렵한 몸매였다. 소위의 모자에도 공수 윙이 솟아 있었다. 소위가 신병들을 구원했다.
“야, 야. 그만하고 가자.”
“소대장님. 이 새끼들 ×나게 빠졌다 아잉교. 쩜만 더 돌리겠심더.”
살쾡이는 끈질겼다.
“가자고 했잖아, 인마. 빨리 가서 저녁 먹여야지.”
소위가 약간 짜증을 냈고 살쾡이는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병은 노랗고 섬뜩한 눈을 번들거리며, 더플 백과 같이 뭉쳐져 있던 뒷자리의 화물들을 째렸다.
“개새끼들. 부대 가서 보자 카이.”
신병교육대 근처 면 소재지의 한 빵집 앞에서 잠시 소위가 내렸다. 살쾡이가 다시 말을, 아니 욕을 해댔다.
“개새끼들. 딸내미 하나씩 소개해 주꾸마. 소대장 오기 전에 이 수첩에다가 하나씩 마캉 빨랑빨랑 적어. 이름, 나이, 주소, 빨랑 개새끼들아.”
살쾡이의 수첩에다가, 그 ‘딸내미’는 자기 딸이 아니라 여자를 말하는 것인지를 알고 있는 김기진은 셋이나 적어댔다. 그래서 다른 둘도 덜덜 손을 떨며 각자 한 명씩 여자의 이름을 썼다. 자기 차례가 왔지만, 그는 적지 않았다.
“니 뺀질하게 생긴 새끼. 닌 왜 안 적고 자빠짓나?”
운전병이 노란 눈깔을 부라렸다.
“아는 여자가 없습니다.”
관등성명을 붙이고 그가 대답했다.
“머라 씨부리노? 니 이 새끼. 냉중에 딸내미들 편지만 와 보래이. 완전히 군 생활 꼬이게 해 줄꾸마.”
노란 눈깔이 을렀고, 그가 관등성명을 댔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없습니다.”
소위가 돌아왔다. 소위의 빈자리는 긴 것이었다. 지프차는 신병들을 짐짝처럼 싣고 15분 정도 더 달렸다. 광활한 평지 위에 윤형 철조망이 펼쳐진 어느 부대 정문 앞에 지프차가 정차했다. 조교의 얘기와는 달랐다. 넷은 삐삐선에 묶여 끌려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운전병의 장난이 좀 지나친 감이 있었지만, 그는 이제부터 자신이 진짜 정찰대원이 되는 것이 기뻤다.
* 한국전쟁 중인 1952년부터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때까지 북한지역에 파견되어 활동한 무장첩보원.
제1부 끝. 감사합니다. 제2부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