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1부
날은 맑게 개었다. 13중대는 길가 양쪽으로 벌려 시간 반쯤 이동했다. 신병교육대는 미리 공고했었다. 이십 발 중 열여덟 발 이상을 맞힌 훈련병에겐 퇴소와 동시에 7일간의 포상휴가가 걸려 있었다.
그의 순서가 왔다. 입사호(立射壕)로 들어간 그가 편안하게 K1A기관단총을 견착했다. 언제나 그렇듯 자동화 타깃은 250, 100, 200, 250 미터의 순서로 갑자기 섰다. 채 2초가 넘기 전에 그의 총은 굉음과 함께 진동했다. 타깃은 맥없이 뚫렸다. 아니 서는 족족 타깃에 탄환이 빨려 들어갔다. 입사호 전 전진 무의탁에서도 속도에 있어서 그를 따를 훈련병은 없었다. 자세를 잡고 타깃이 일어설 둔덕을 노려보다가 사격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뛰어나가며 도약한다. 그의 방식은 몸이 체공된 상태에서 총을 견착하며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었다. 신체가 지면에 닫기 전에 이미 조준선 정렬을 끝낸다. 착지와 동시에 총구는 불을 뿜는다. 전진 무의탁이 채 2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스무 개의 타깃을 모두 넘겼다. 만발을 기록한 사수는 모두 넷이었고 세 정이 M16이었다.
사격측정이 끝났지만, 통제관은 미적댔다. 기관단총에 의한 만발은 승인하기 애매하다는 것이었다. 통제관은 다음과 같이 주절거렸다. 원래 250 미터 타깃이 없는 K1A의 기록을 신병교육대에서 인정하기는 난감하다. 134번. 자네 총 자체가 좀 이상한 것 아닌가. 가끔 그걸로 쏘는 걸 봤지만 열두 발 이상 나온 걸 못 봤다. 등등.
통제관은 다만, 정찰대에 기록을 보내 포상휴가를 한 번 권고해 보겠다고는 했다. 그는 눌러쓴 철모로도 씁쓸한 눈빛을 숨기기 힘들었다. 하기는 뭐, 보내준다고 딱히 갈 곳도 없었다. 다만 40여 일간 쉴 새 없이 뛰고, 구르고, 소리치고, 발맞추면서 지내왔기에 한 이틀 정도는 병영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이제는 군인인 자신을 바깥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는지 한 번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예전 그 대폿집에 앉아 시원한 막걸리나 한 사발 들이켜고 싶었다. 시내버스에 올라타면 열린 차창으로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 들어올 터였다.
맥이 탁 풀린 탓인지 처진 어깨가 시큰대서 그는 어쩌다 이처럼 비루해졌을까 하는 생각에 부아도 났다. 퇴소 전날 다른 훈련병 가족들처럼 모친도 그를 면회 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나간 읍내 골목길 여관방에서 그는 수박을 씹으며 맥주 몇 캔으로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맥주는 미적지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