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출처: 위키백과)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별명은 '왈츠의 왕'. 대표작은 비공식 오스트리아 국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봄의 소리 왈츠', '빈 사람들의 기질 왈츠', '남국의 장미 왈츠', '황제 왈츠' 등의 왈츠, 그리고 사실 왈츠에 가려져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역시 그의 전공이었던 '트리치 트라치 폴카', '아넨 폴카', '샴페인 폴카', '피치카토 폴카', '천둥과 번개 폴카', 거기에 인생 후반기에 몰두한 오페레타* 중 유일하게 현대까지도 빈의 신년이면 매번 공연되는 오페레타 '박쥐'까지. 이렇게 곡 이름을 많이 아는 까닭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은 어떤 의미로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악들 중 하나기 때문이다. 이건 비밀인데, 내 스포티파이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곡 600곡을 전부 집어넣은 플레이리스트가 있으며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통째로 기기에 다운받아놓기까지 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첫곡부터 듣기 시작해 지금 op 300 언저리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 두 번째 빈 여행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곡'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클래식 음악이긴 하지만 동시에 경음악이기 때문에 때로 내가 이렇게 가벼운 곡만 듣는다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긴 하지만, 동시에 내 취향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이제는 그만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곡이 좋은 것이라고 합리화하는 중이다.
*오페레타: 오페라와 유사한 극 장르의 일종으로, 오페라에 비해 가볍고 코믹한 분위기와 음악을 자랑한다. 오펜바흐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이 방면에서 유명한데, 오펜바흐의 그 유명한 '캉캉' 이 나오는 '지옥의 오르페우스'가 바로 오페레타다.
모차르트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왔지만 여전히 두 시 반쯤이었다. 4월달이 되니 서머타임도 시작됐겠다 이전에 비해 하루가 확 길어져서 햇빛을 낭비하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한 곳 정도 더 갈까 하고 미리 작곡가 박물관들을 다 마킹해 둔 구글 지도를 켜서 보자,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 박물관부터 시작해 슈베르트가 죽은 집까지 다섯 개의 박물관이 놀라울 정도로 일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깔끔한 동선이라서 혼자 동쪽에 떨어져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물관을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비포 선라이즈'에 나온 프라터 놀이공원 근처에 있지만 정작 나는 그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나름 빈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프라터 놀이공원은 코빼기조차 보지 못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파트먼트는 하이든 아파트먼트를 운영하던 기관과 같은 곳에서 운영한다. 붉은색과 하얀색으로 된 리본이 둘러진 명패가 집 앞에 붙어 있다면 해당 기관 산하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열린 문 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는데 어라, 아무리 열심히 둘러봐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물관이 있다는 표시는 오른쪽에 있는 초인종뿐이다. 2층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아파트먼트라고 라벨이 붙어 있는 초인종을 누르자 시끄럽게 드드드, 진동벨 울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문이 찰칵, 하고 열렸다. 열린 문은 5초 안에 다시 잠겨 버리니 서둘러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보통 박물관이라 하면 국립중앙박물관, 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전쟁기념관, 이런 곳들을 떠올리다 보니 이런 조그만 박물관들에 익숙하지가 않다. 특히 작곡가 박물관들은 보통 해당 작곡가가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들어놓기 때문에 박물관이 그리 크지가 않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박물관의 크기를 머릿속으로 떠올려보면 북촌 어디에 있는 사립박물관 크기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박물관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올라가서도 와서는 안 될 곳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들게, 한쪽은 슈트라우스 2세 박물관이 맞는데 다른 한쪽은 무슨 치과였다. 안 그래도 한가한 프라테르 거리였는데, 대문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사람 소리가 전혀 느껴지지 않다 못해 인기척, 숨소리도 없었다. 심지어 복도도 조명이 켜져 있지 않고 햇빛만이 들어올 뿐이라서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바닥은 언제나처럼 삐걱거렸고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박물관이 나오긴 할까 궁금했다. 보통 조용한 박물관 관람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여긴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을씨년스러울 정도였다. 그나마 문에 붙어 있는 커다란 슈트라우스 박물관 포스터를 보자 내가 너무 심각한 길치인 바람에 어디 민가에 침입해버린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은 사라졌다. 천만다행으로, 안쪽은 멀쩡한 박물관이었다. 들어가면 입구 왼쪽에 카운터가 있고 오른쪽과 앞쪽으로는 박물관이 펼쳐진다. 입장료는 앞서 갔던 하이든 아파트먼트와 동일하게 성인 5유로 학생할인 시 4유로. 들어가기 전에는 스메타나박물관처럼 모든 내용이 적혀 있는 영어 책자를 들고 가서 둘러보면 된다. 다만 이 책자는 반납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슈트라우스 박물관의 전시는 5개 정도 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 방은 거실이나 응접실이었을 것 같은데, 이 집은 아니지만 슈트라우스가 말년에 살던 집에서 옮겨온 하우스 오르간*과 스탠딩 책상 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 들어오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동시대 스타일로 만든 드레스'에 가장 먼저 푹 빠지곤 하지만, 앞서 나는 이미 파리와 베를린 의상박물관에서 그런 옷은 충분히 보고 왔던지라 슈트라우스의 소장품들을 보는 것이 훨씬 즐거웠다. 나비 모양 지갑이나 방문카드도 그렇지만, 슈트라우스가 이런저런 무도회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곡을 연주해주며 받았던 기념품이나 메달이 무려 20가지가 넘게 들어 있는 유리 전시장이 특히 그렇다. 그런 기념 메달만 해도 20개라니, 이런 숫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기념품을 많이 받은 작곡가는 리스트뿐일 테다. 변호사 협회, 기관사 협회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곳들에서 무도회를 열었고 감사의 의미로 기념품을 줬음을 알 수 있다. 4번째 전시실로 가면 슈트라우스 2세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 나오는데, 이때 슈트라우스 2세가 하고 있는 약장*들을 보면 무척 재미있다. 슈트라우스 2세의 사진들과 초상화들을 시대순으로 놓고 나열해보면 처음에는 옷에 몇 개 없던 약장이 점점 길게 늘어나고 또 늘어나더니, 말년이 되면 약장이 여덟 개, 열 개 달려 길게 옷에 늘어져 있다. 한 번은 심심해서 이 약장들이 다 어디서 받은 건지 분석해 본 적이 있는데,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메달부터 시작해 페르시아에서 받은 훈장까지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초상화만 보고도 그 훈장들이 다 알아봐지게 그렸다는 점이 무척 재미있지 않은가? 초상화는 유구하게 남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이미지를 주문하는 것인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남에게 그런 훈장들이 하나하나 알아봐질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달라 부탁했단 뜻이 된다.
*약장: 약식 훈장이라는 뜻으로, 목에 거는 큰 메달 크기의 훈장이 아니라 가슴팍에 배지처럼 작게 달 수 있는 약식 훈장을 가리킨다. 위에 있는 슈트라우스의 초상화 왼쪽 가슴팍에 약장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 보이는가?
슈트라우스 박물관의 내부. 메달 상자를 꼭 보여드리고 싶으나 불행히도 사진이 없다. 오른쪽의 바이올린 케이스와 왼쪽의 하우스오르간으로 만족해 주시기를.(출처: viennainfo) 슈트라우스 가문, 경음악의 왕과 아버지가 다 있는 이 가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후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라는, 슈트라우스 가문 1세대와 2세대를 함께 다루는 박물관에서 슈트라우스 일가 이야기를 더 길게 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하략하겠다) 슈트라우스의 죽음을 다루는 방으로 넘어가면, 데스마스크와 위에서 말한 초상화, 그리고 슈트라우스네 집에서 뜯어온 벽장을 볼 수 있다. 초상화가 있는 방의 옆방에서는 슈트라우스의 외모 변천사를 다룬다. 박물관에서 인생사가 아니라 외모 변천사를 다룬다는 점이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타인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무척이나 의식했고 언제나 시류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애썼던 슈트라우스 박물관에 그런 섹션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라고 검색해 보면 수많은 사진과 초상화가 나오는데 다 같은 사람인지 여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얼굴이 보인다. 정확하게는 다양한 수염과 머리카락이. 처음에는 콧수염만 있다가, 양쪽이 'ㅅ'자로 길게 갈라진 수염이 나오더니, 마지막에는 머리카락은 빳빳하게 서 있고 턱수염은 밀려서 또 콧수염만 남는다. 184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유행하는 모든 스타일을 슈트라우스 한 사람만을 통해서 다 볼 수 있는 셈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초상화나 사진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가 25년에 태어나서 01년 죽기까지 무려 76년을 살았으나 그 어떤 초상화나 사진에서도 흰머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슈트라우스는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일각에서는 그것이 젊은 시절 본처를 떠나 상간녀와 살림을 차렸으나 결국 죽을 때는 상간녀와 아이들은 도망가고 혼자 병들어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본 뒤 생긴 트라우마라고도 해석한다. 아마 슈트라우스 2세가 현대에 살았더라면 30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자기 관리를 잘한 60대 노신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슈트라우스의 데스마스크 (좌) 와 슈트라우스의 초상화 (우).조금 다르게 생긴 것도 같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1860년대에 살았던 이 거리는 당시에 세련된 카페와 식당이 많은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1층에 'Takt'라는 카페가 있다. 세련된 문화를 선도하고, 사람이 끊이지 않는 번화가에 해당하는 곳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빈 중심부나 앞서 다녀온 하이든 집 근처의 상가보다는 덜 붐빈다. 또 보통 유명한 작곡가의 집이 박물관이 되면 그 작곡가가 살지 않던 층도 박물관으로 만들어 쓰는 데 비해, 오히려 이 박물관의 경우 박물관은 슈트라우스가 살던 집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라면 이것보다는 더 대우해 줄 줄 알았어서 약간 실망했다. 오스트리아의 비공식 국가를 작곡해 줬다면 이것보다는 좀 더 사랑을 보여줘도 좋았을 텐데, 싶었다. 집이 작더라도 사람이 많았으면 그런 생각은 덜 들었을 텐데 내가 전세를 낸 것 마냥 나를 제외하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집은 마치 무도회가 끝난 뒤의 무도회장을 보는 것 같았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라면 더 시끄럽고, 호화롭고, 화려해야 할 것 같은데 모든 것이 정적이기 그지없었다. 무도회가 끝난 뒤의 무도회장에 들어가 어렴풋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향수 냄새를 맡아보듯이 마지막 방에 들어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남긴 음악을 들어본다. 들을 수 있는 곡이 열 곡 정도가 있는데, 그중 일곱 곡은 내가 아는 곡이었고 그 일곱 곡 가운데 다섯 곡은 또 내가 사랑하는 곡들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본 시간보다 눈을 감고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를 들으며 흥얼거린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래도 음악과 함께 눈을 감으면 내가 유일한 방문객인 조용한 박물관이 아니라 빈의 무도회장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리는 응접실이, 전시되어 있는 바이올린 케이스에서 아버지의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아니, 생각해 보니 눈을 떠도 슈트라우스 2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긴 한다. 마지막 관에서는 다양한 만평과 그림, 실루엣 등을 통해 당대 사람들의 눈에 비친 슈트라우스가 어땠는지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나는 점 가운데 하나는, 보통 음악가들을 만평에 등장시키면 바그너나 베를리오즈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해 음악을 조롱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슈트라우스 2세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슈트라우스 2세가 지구 전체를 지휘하는 그림, 천국에 가서 다른 죽은 작곡가들이 춤추는 가운데 지휘하는 그림... 하긴, 앙숙이었던 브람스와 바그너가 둘 다 칭찬하는 음악가는 드물겠다. 브람스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불행히도 자신의 곡이 아니라 아쉬워했고 바그너도 슈트라우스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천국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누군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슈트라우스 발아래의 리스트의 실루엣이 바로 구분된다. (출처: alamy) 그렇게 생각하며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다 보니 궁금해졌다. 브람스와 바그너라는 진보파와 보수파의 양 극단을 동시에 만족시키고, 과거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았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사랑받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왜 라너나 슈트라우스 1세, 그리고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을 법한 경음악 작곡가들의 곡은 지금까지 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몇 곡 없는 데 비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곡은 이렇게나 많은 숫자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19세기 빈이 가장 화려했고 휘황찬란하던 시기를 연상시키는 일종의 향수일까? 하지만 이제 19세기를 살아 본 사람도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곡은 어딜 가나 인기가 많다는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이 가진 힘이 단순히 그 시대에서 빌려온 것은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
나는 여전히 답을 고민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답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집에서는 아직 찾을 수 없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집은 분명 훌륭한 박물관이었으나, 슈트라우스의 정수를 느끼기에는 너무 조용하고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리고 나가는 길에 카운터에 있는 굿즈를 잠깐 훑어봤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아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음반을 팔고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으로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베토벤 프리즈 중 마지막, '세상을 향한 키스'. 꼭 베토벤 9번과 함께 감상해 주시기를. 슈트라우스와는 무관하지만 집어넣고 싶었다. 이날 오후에는 마지막 한 시간이라도 놓치기가 싫어 제체시온으로 달려가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까지 베토벤 9번과 함께 감상한 뒤 빈 시립공원을 거닐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없었지만 대신 아름답고 푸른 정원 위 한가로이 누워 있는 사람들은 있었다. 빈 시립공원 근처에는 브람스, 슈베르트의 전신상과 브루크너 외 몇 명의 작곡가들의 두상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나름 명물인 건지 공원 가운데 있는 지도에서 아예 '유명인들의 조각상은 여기 있답니다' 하고 표시해 주기까지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동상-아니 정확히는 도금상-도 있다. 그 유명한 바이올린 켜는 황금빛 슈트라우스 말이다. 바이올린 켜는 황금빛 슈트라우스를 처음 본 건 재작년 빈 황금홀 공연 중계를 보면서였다. 빈 곳곳을 돌아다니며 슈트라우스의 곡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는데, 그때 황금빛 슈트라우스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유럽에 교환학생을 와서 영상으로만 보던 곳 앞에 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슈트라우스 박물관에 사람이 너무 없던 바람에 슈트라우스 2세가 과연 오스트리아에서 사랑받는 작곡가가 맞는가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동상 앞에 가자마자 느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분명 오스트리아에게 사랑받고 있다. 보통 그런 작곡가 동상 아무도 안 찍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동상 앞에서는 두세 커플이나 멈춰 서서 동상을 가리키며 뭐라뭐라 이야기하다 지나갔다. 덕분에 찍을 타이밍을 두 번이나 놓쳤었다. 관리도 잘 된 티가 났다. 오후 햇살을 받아 금빛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그야말로 슈트라우스 그 자체였다.
금빛 슈트라우스. 이것도 꽤나 오스트리아의 상징스러워서인지 기념품 가게에 가면 금빛 슈트라우스 2세 오리를 판다. 그때 실마리가 보였다. 슈트라우스 2세는, 이 경우에는 물리적인 의미로도 빛나고 있긴 했지만, 주위에 사람이 있을 때 가장 빛난다. 실제의 슈트라우스 2세는 겁도 많고 그렇게 사교적이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카리스마틱하고 사교적이며 자신감과 활력 넘치는 작곡가로 보이기를 바랐다는 것을. 그러니 조용한 박물관에서 위화감이 느껴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는 예술미학의 측면으로만 판단하자면 차이콥스키의 왈츠에 한참 못 미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이 닿는 순간-또는 이 경우에는 음악이니, 사람의 귀에 음악이 와닿는 순간-갑자기 슈트라우스는 다시금 살아난다. 모든 음악에는 맥락이 있다. 브람스의 음악이 가을에 제철이고, 스메타나의 음악은 프라하에서 들어야 하는 것처럼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은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당시에는 슈트라우스의 수염과 헤어스타일을 시기별로 분석해 준 관이 있었다는 것과 화려한 소장품에 정신이 팔려 높은 점수를 줬었던 박물관인데, 지금 돌이켜 보면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는 박물관 같다. 큐레이팅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절대적으로 너무 작고 눈에 안 띈다! 오스트리아여, 그렇게 사랑하는 작곡가의 박물관이라면 좀 더 시끌벅적하고 크게 만들 생각은 없는가! 음악도 좀 틀고, 홍보도 열심히 하고, 아니 아예 1층을 인수해서 무도회장으로 만들어버리면 더 잘 팔릴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본 것인가! 우리가 슈트라우스 하면 떠올리는 그 이미지를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꼭 우리뿐만이 아니라 멋지게 비추어지고 싶었던 슈트라우스를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을 빈 박물관 측에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아쉬운 점을 모두 메워 주는 슈트라우스 박물관이 빈에는 또 한 곳 더 있으니까 말이다. 그 박물관도 다녀왔지만, 아직 그 박물관 이야기를 할 차례는 아니다. 귀띔해 드리자면 또 다른 슈트라우스 박물관은 10편에서 연재될 예정이다. 이미 내가 약간의 힌트를 적어놓았지만, 10편이 발행되기 전까지 여러분들 나름대로 슈트라우스의 음악은 어떻게 다른 경음악들과 달리 200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추측해 보는 건 어떨까?
최종평가
명칭: Johann Strauss Wohnung (요한 슈트라우스 아파트먼트)
운영시간: 금토일 10:00~17:00, 12:00~13:00은 휴식시간
입장료: 하이든박물관과 동일함
사이트 링크: WIEN MUSEUM - Johann Strauss Wohnung
1. 도시 접근성: ★★★★★
빈은 접근성이 좋다고 몇 차례 이야기했던 것 같다. 참고로 빈은 옆 동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와 기차로 불과 1시간 거리이니 빈을 갔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빈다 싶으면 일일 브라티슬라바 여행티켓을 구입해서 옆동네 구경을 하는 것도 좋다.
2. 도시 내 접근성: ★★☆
프라테르거리면 프라터와 가까이 있으니 접근성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중심부에서 박물관까지 걸리는 시간은 하이든박물관과 비슷하지만, 하이든박물관은 명실상부 신시가지로 자리매김한 반면 슈트라우스 박물관은 오히려 시가지의 자리를 잃은 느낌도 있고 유동인구도 적기 때문에 0.5점을 추가로 깎았다.
3. 소장품: ★★★★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방문카드, 카드게임 박스, 바이올린케이스, 옷장, 하우스오르간, 초상화, 다양한 훈장과 기념품, 입식 책상, 직접 그린 그림 등을 모두 전시하고 있어서 꽤 풍부한 편이다.
4. 언어 지원: ★★★
앞서 언급했듯이 하이든박물관과 같은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번역 상태도 동일하고, 설명문은 대부분 병기가 되어 있다. 팸플릿을 굳이 들고 가지 않아도 영어 실력만 된다면 관람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다. 그럴 영어실력은 안 된다고 하면... 우리의 영원한 친구 초록창과 앵무새를 켜자.
5. 가성비: ★★★
나름 저렴한 것 같다. 규모가 크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소장품이 상당히 화려하기 때문에 4/5유로를 내고서도 손해를 봤다는 생각은 따로 들지 않았다.
6. 규모: ★★★
슈트라우스의 집이 원래 크기보다도 줄어들어버렸다. 원래 슈트라우스가 가지고 있던 부분을 다 합치면 3.5점까지도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대체 소유권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슈트라우스의 집이 박물관으로 변하는 사이 사용할 수 없는 부지가 생겨버린 건지 눈물이 난다. 슈트라우스라면 더 크고 호사스럽게 해달라고 물 떠놓고서 싹싹 빌어본다.
7. 상호작용: ★★★
하이든박물관과 동일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겠다. 계속 이렇게 낮은 점수만 줄 거면 왜 이 항목을 만들었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기다려달라 부탁드리는 바이다. 이 뒤쪽에는 상호작용이 괜찮은 박물관들이 나올 예정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기를.
8. 굿즈: ★★
진심으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오르골을 팔았고, 내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사려고 벼르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3점을 주고팠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CD를 파는 곳에서 굿즈 점수를 더 높이 주고 싶지는 않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가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마주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진심인가? 안 그래도 사람들이 슈트라우스와 슈트라우스를 얼마나 많이 헷갈리는데 박물관에서까지 조장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아, 그리고 이 오르골이 박물관에서만 파는 특수 디자인이 아니라 빈 어디서도 찾아볼 수 있는 양산형 작곡가 오르골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추가로 더 깎았다.
그래도 오르골은 산다. 박물관에서 샀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나의 세 번째 오르골이었다.
9. 큐레이팅: ★★★★
슈트라우스의 생애로 시작해 슈트라우스 가문, 슈트라우스와 프라터 거리, 슈트라우스의 죽음, 슈트라우스의 외모 변화, 슈트라우스가 남긴 것까지 섹션을 깔끔하게 구분해 전시관별로 테마에 잘 맞는 전시를 하고 있다.
10. 총평: ★★★★
사람이 너무 적어 '슈트라우스틱'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훌륭한 박물관이다. 사람이 이렇게 없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최대 장점: 깔끔한 큐레이팅, 화려한 소장품
최대 단점: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조차 없는 폐쇄성과 도심에서 약간 떨어진 거리, 요한을 팔랬더니 리하르트를 팔고 있는 굿즈샵
추천 여부: O
이로서 빈 작곡가 박물관 여행기 전반부가 끝났다. 하루를 쉬고 4월 7일 일요일, 작곡가 박물관 5곳을 돌아다니는 기행 후반부도 기대해 주시기를. 바로 다음 편이 그 유명한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니까 말이다.
8화 예고: 루트비히 판 베토벤. 1770년 태어나 1827년 사망할 때까지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1번 '월광', 23번 '열정', 27번 '템페스트',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바이올린 협주곡, 현악사중주 '대푸가', 장엄미사, 피아노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 등등... 이렇게 이야기하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다. 아무튼 명곡을 끝없이 쏟아냈던 독일의 대작곡가. 모르면 간첩일 수밖에 없는 위인전의 단골손님 루트비히 판 베토벤, 그리고 그가 위인전에 매번 나오게 하는 이유인 '하일리겐슈타트 유서'가 작성된 빈 외곽의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베토벤 박물관에 가 베토벤을 치유했던 푸른 나뭇잎 사이 파묻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