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년 태어나 1791년 죽기까지 35년의 짧은 생애에 초신성처럼 클래식 음악 역사상 최고의 신동으로 태어나 최고의 천재라는 말을 쉴 새 없이 듣던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대표작으로는 '작은 별 변주곡' '마술 피리' '피가로의 결혼' '주피터 교향곡' '교향곡 41번' 등 내가 대충 아는 것만 해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정말 실례되는 말이지만 나는 모차르트 곡을 그렇게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사 영원한 떡밥인 '베토벤 대 모차르트' 대결에서 나는 망설임 없이 베토벤을 선택할 것이다. 모차르트의 선율미는 베토벤을 압도하고도 남지만, 베토벤에게는 모차르트를 압도하는 서사와 감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앞서 하이든박물관에서 하이든에 대해 남긴 코멘트처럼 안타깝게도 그 고전적인 형식 때문인지 내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빈의 최대 관광상품 세 명 가운데 하나가 모차르트임에도 불구하고 난 빈에서 그다지 모차르트의 자취를 좇는 데 시간을 많이 쓰지는 않은 편이었다. 첫 빈 방문 당시 감기몸살이 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뺀 일정 가운데 하나가 모차르트 박물관 (당시 친구가 가지고 다니던 여행책자에는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한 집이라 하여 '피가로하우스'라고 적혀 있었다)이었다. 일정에서 베토벤하우스를 뺐더라면 눈물을 펑펑 쏟았겠지만, 모차르트는 그렇게 우선순위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다시 빈을 방문하자, 빈 한가운데에 있는데도 박물관을 안 갔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기념품 가게 어디를 들어가도 모차르트쿠겔을 지겨워질 정도로 팔고 있는 도시에 갔는데 모차르트 박물관을 안 갔다니. 심지어 성 슈테판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박물관인데도 가지 않았다니. 아무리 모차르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접근성이 프라하 스메타나박물관 급인데 가지 않았다니. 양심상 가지 않을 수 없는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여행에서는 최우선순위로 둔 박물관 가운데 하나였다.
하이든 박물관을 나왔을 때 시각이 굉장히 애매했다. 앞서 하이든 박물관의 영업시간을 보면 알겠지만, 하이든 박물관을 포함한 Wien Museum 산하 6개의 작곡가 박물관에는 점심시간으로 추정되는 브레이크타임이 있다. 12시에서 1시 사이 브레이크타임은 하루에도 최대한 많은 일정 끼워넣기를 목표로 한 내게는 치명적이었다. 12시에서 1시 사이에도 관람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작곡가 박물관은 내가 빈에서 찜해둔 박물관 가운데 단 두 곳, Wien Museum에서 운영하지 않는 모차르트박물관과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뿐이었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슈트라우스는 상당히 멀리,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하이든하우스에서 지하철로 바로 이동할 수 있는 모차르트하우스로 향하는 동선이 훨씬 깔끔했다.
모차르트하우스의 입장료는 10유로였다. 방금 전 하이든하우스에서 4유로라는 꿀 같은 입장료를 맛본 내게는 지나치게 비싼 입장료로 느껴졌으나, 실제 모차르트가 살던 한 층 외에도 4개 층을 전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리 비싸지도 않구나 싶었다. 게다가 모차르트하우스의 10유로 입장권에는 무료, 고퀄리티의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포함되어 있으니 나쁘지 않은 장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서 시작한다. 관람객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니 대우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4층은 모차르트가 살던 빈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 모차르트가 살던 당시 빈은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고, 프리메이슨 등 계몽주의와 연관 있는 사상들이 크게 힘을 얻기도 했다. 모차르트 또한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마술 피리' 등을 작곡했고, 실제로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함께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신청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진지한 프리메이슨이었나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모차르트는 아마 자신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프리메이슨과 계몽주의, 격동의 빈 이야기보다는 박물관 한쪽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18세기말 빈의 에로티카'에 관심이 훨씬 많았을 거란 것이다. 이제는 꽤 많이 알려진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지만 모차르트의 편지에는 고수위의 섹드립이나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항문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멘트들이 종종 등장한다. 모차르트가 영원한 어린아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의미로 어린아이인 줄은... 한동안 모르고 있었다. 모차르트 박물관에 간 시점에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놀라지 않았다. 내가 놀란 건 단지 박물관에서 그렇게 공개적인 장소에... 어린아이들도 많이 오는 모차르트 박물관에 에로티카 전시를 해 놓을 것이라는 예상까지는 하지 못한 탓이었다. 벽에 있는 구멍을 통해 남들의 사생활을 '엿보듯이'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실제로 내 양 옆에서 애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구멍을 통해 그 춘화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모차르트 박물관이 참 좋은 것 가르쳐준다 싶었다.
문제의 춘화 전시다. 잘린 양쪽으로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을 통해 관음 하듯 춘화를 볼 수 있다. 참 좋은 거 가르쳐 준다. (출처:모차르트하우스 빈)
3층으로 내려가면 모차르트의 음악에 관한 전시가 이어진다. 특히 '피가로하우스'라는 별칭을 가진 만큼, '피가로의 결혼'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피가로의 결혼 초연은 어떻게 이루어졌고 반응은 어땠는가 (어디서 검열을 당했고, 모차르트는 그 호응에 어떻게 반응해 주었는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다른 몇 개의 프로덕션에서 피가로의 이미지를 서로 어떻게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미디어 전시도 있는데, 어떤 피가로는 전형적인 광대 이미지를 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피가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18세기 하인의 모습이고, 어떤 피가로는 그보다도 현대적이다. 그 바로 옆 방에서는 아예 다양한 프로덕션의 연출을 여러 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해 주는데, 여러 개의 프로덕션에서 같은 장면을 어떻게 서로 다르게 연출했는지 보는 재미가 있다. 나는 오페라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공연예술 자체는 꽤나 좋아해서, 의상, 시대, 배경이나 뺨을 맞는 순간의 표정 등을 다 흥미롭게 관찰했다. 4층의 에로티카 전시에 불편해진 마음에도 불구하고 4층과 3층의 전시는 깔끔하고 요점을 잘 전달해 주었으며, 오디오가이드도 단순히 설명문을 읽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세한 설명과 배경을 부연해 주었기에 여기까지는 만족스러웠다. 이제 한 층을 더 내려가 하이라이트를 관람할 시간이었다.
Figaro Parallelo라는 설치형 멀티미디어 전시. 여기까진 정말 좋았다. (출처: 모차르트하우스 빈)
2층은 드디어 모차르트가 살던 아파트먼트다. 2층, 유럽 기준 1층은 가장 사람이 살기 좋은 집이고, 성 슈테판 대성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최대 번화가 중 하나다. 아마 꽤나 비싼 집이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오디오가이드에 따르면 모차르트하우스는 모차르트가 처음 빈으로 올라왔을 때 살았던 집 근처였다고 한다. 오디오가이드에서는 '모차르트가 이 집을 산 것은 처음 빈으로 상경했을 때 자신의 모습과 지금 성공해서 가족과 함께 번화가의 좋은 집을 산 본인 모습을 비교하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면서 추측을 내놓았다. 추측이라. 어떤 근거가 좀 더 있는 추측이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모차르트의 아파트먼트로 들어오는 순간 오디오가이드는 '이곳은 모차르트의 아파트먼트인데, 어떤 방이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여기는 현관이고 여기는 부엌이었을 것이고 그 뒤 방들은 어쩌고 저쩌고' 같은 식으로 설명해 준다.
벽에 그림 몇 개 붙여놓으면 되는 줄 아나보다. 생활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출처: 모차르트하우스 빈)
역사는 원래 불확실한 정보를 토대로 한 추측의 영역이긴 하지만 모차르트박물관은 유독 추측이 심했다. 아파트먼트의 각 방에는 이 방을 사용했다 추정되는 사람들의 조그만 피규어가 놓여 있는데 그것조차도 확실한지 어떤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방 9개짜리 집에서 용도가 확실한 곳이 부엌인가 식당인가 한 곳을 제외하면 없다는 것은 충격적일 지경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추측은 있어 오디오가이드에서는 각각의 방에 대한 설명과 관련이 있을 법한 에피소드를 제공해 주는데, 안타깝게도 위층과 달리 여기에는 엔터테인먼트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모차르트가 소유하고 있던 가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지점이다. 잘 알려져 있듯 모차르트는 빚을 많이 지고 있었고, 피가로하우스는 모차르트가 살던 마지막 집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구는 버려졌거나 처분되었다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을 통해 천재론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전 시기의 작곡가들이 소유하고 있던 물품이 보존되어 온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박물관이 온전히 사람들의 추측과 상상에 기대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층의 나쁘지 않은 전시 퀄리티에 비해 하이라이트가 되었어야 할 모차르트 아파트먼트는 애매한 가능성 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일 내가 모차르트하우스를 큐레이팅했더라면 모차르트가 가지고 있던 가구 카탈로그를 하나하나 다 오디오가이드로 읽어주기까지 하는 판에, 해당 자료를 기반으로 어떤 방에 어떤 가구가 있던 것인지까지는 알지 못해도 방마다 가구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분배해 본 뒤 모차르트가 살던 당시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동시대 가구를 특별제작하거나, 공수해 와 관람객들에게 상상해 보라는 말을 했을 테다. 어떤 사람들은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공간과 완전히 분리된 상상이 가능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석고 벽만 눈앞에 두고 모차르트의 삶을 상상해 보라 하는 것은 꽤 잔혹한 일이다. 영상 배치와 인테리어에 주목하라며 틀어 주던 아마데우스 영화 클립도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를 주는 실제 공간 옆에 배치되어 있었다면 효과가 두 배가 됐을 테다. 하지만 모차르트하우스에서는 모차르트의 가구를 소장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오, 거기에 동시대 가구조차 배치해놓지 않았다. 한 방에 한 개씩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의 접시' '모차르트의 선율이 나오는 자동음악재생장치'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의 의자'를 전시해 놓았고 심지어 그것조차 맥락에 맞게 전시된 것이 아닌, 방 한가운데나 방 한구석 유리케이스 안에 보관되어 있으니 모차르트를 둘러싸고 있던 분위기를 추측하는 건 전적으로 상상력의 영역에 맡겨진 셈이었다. 베르사유 궁전도 원래 가구는 남아있지 않지만 다 돈을 들여서 당시 시대 양식을 충실히 재현한 가구를 들여놓았거나 아니면 동시대의 가구를 들여놓지 않았던가. 그 분노가 정점에 달했던 것은 나름대로 하이라이트라고 놓았을 모차르트의 응접실에 들어가서였다. 방에 있는 전시품이라고는 방 한가운데의 작은 체스 테이블뿐이었다! 창틀이야 모차르트 시대의 창틀 그대로였지만, 벽지도 바르지 않은 채 벽에 모차르트 응접실의 상상도를 프린팅해 놓고 걸어놓은 것으로 방문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을 거라 진지하게 믿었던 걸까?
모차르트의 게임방, 응접실. 벽에는 상상도 그림이 걸려 있다. 이 방에 다른 전시품은 없다. 부끄러울 일이다. (출처: Vienna pass)
아파트먼트가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무리 모차르트의 '아파트먼트'라고는 하지만, 각 방에 대한 설명은 정말 공간에 대한 설명이 전부였다. 여기서 모차르트는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이런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공간은 몇 년 누가 조각해 놓은 부조가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공간이 궁금한 것이 아니다. 그 공간에 살던 사람이 궁금한 것이다. 오디오가이드에 공간에 대한 설명이나, 동시대 가구에 대한 설명을 조금 줄이고 차라리 모차르트의 재미있는 일화를 이야기해 주었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테다. 본인들도 전시품이 초라한 걸 알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모차르트 박물관 내부는 다른 박물관들에 비해 검색해 보면 사진이 훨씬 적다. 촬영 영상도 없고 말이다. 내가 갔을 때도 모차르트 박물관은 촬영 금지였다. Tripadvisor라는 사이트에서는 1400개의 리뷰가 평균 별점 3점을 매겼다. 낮은 점수를 준 사람들의 평은 대체로 나와 비슷했다. 모차르트의 소장품을 보고 싶고,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것이지 하얀 석고벽을 보고 싶던 것은 아니다는 리뷰도 있었고 모차르트의 악보 같은 것들이 전부 사본이나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어 아쉽다는 리뷰도 있었다. 두 리뷰 모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가진 원본이라고는 공간 자체의 힘이 전부인 박물관이라면 적어도 할인해서 10유로, 원가 14유로라는 비싼 입장료는 받지 말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차르트 박물관은 '없는 걸 최대한 글겅이질 해서 뭐라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때문에 한 시간 반 분량이라던 오디오는 보여주는 것, 전시된 것에 비해 많은 설명을 해 줬고 볼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빈 방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한참 동안 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내게 많은 피로감을 안겨 준 듯하다. 빈의 아무 집이나 매입해서 석고 회반죽이 칠해진 텅 빈 벽을 가져다 놓고 모차르트 박물관이라고 해 놓아도 이 박물관과 그리 다를 게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박물관은 내가 그 시점까지 갔던 박물관들 가운데 가장 관람객이 많은 박물관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지만, 가족 단위로 온 관광객들도 종종 보였고 앉을자리가 없는 전시실도 몇 군데 있었다. 가장 유명한 모차르트 박물관 두 곳 가운데 한 곳인데 이렇게 볼거리가 없으니 허탈했다. 훨씬 좋은 작곡가 박물관이 많은데 단지 모차르트가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며 관람 중인 관광객들이 가엾기만 했다. 모차르트 박물관을 갈 일이 있다면, 차라리 동선을 조금 희생해서라도 빈에서 때우려 하지 말고 잘츠부르크에 가는 편을 추천한다.
모차르트 박물관은 내게 귀중하고 씁쓸한 교훈을 안겨줬다. 유명한 박물관이라고 해서 좋은 박물관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 때로는 오디오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이 피로감만 안겨주기도 한다는 것. 빈에서 갈 박물관이 여섯 곳이나 남아 있는데 여섯 곳이 전부 이런 상태라면 실망만 잔뜩 하고 오겠는걸,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오디오가이드를 반납하고 나가면 꽤 큰 굿즈샵이 나를 맞아 주지만 이런 박물관에서 굿즈를 사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만이 들어 쓱 둘러보기만 한 뒤 바로 나왔다.
4층, 3층까지 테마별로 전시를 잘해놓았으면 차라리 2층 아파트먼트도 '모차르트의 일상' 주제로 전시를 꽉 채워 버리지, 왜 그랬을까? 사실상 20대 때부터는 빈에서 살아온 모차르트의 인생 후반부를 조명할 수 있는 박물관은 이곳뿐인데, 이 공간에만 집중하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정말 모차르트가 점유하고 있던 '공간' 그 자체가 궁금해서 온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아직도 나는 빈 최고 관광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박물관의 매력을 잘 모르겠다. 역시 빈은 모차르트보다는 씨씨 황후를 마스코트로 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2022년 6월 빈 기념품 상점 내부. 이렇게 죽어라 모차르트를 팔지만 박물관 모양새를 보면 역시 씨씨 황후 1승이다.
이 글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박물관에 가서 나와 똑같이 실망하고 나왔다면, 잠깐 모차르트는 잊어버리자. 빈의 랜드마크인 성 슈테판 대성당에 들어가서 성당의 조각에 감탄하고, 나와서는 성당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마차나 올드카 한 대에 올라 빈 도심 투어를 하며 부자가 된 기분을 만끽하는 편을 추천한다. 앙카우어 인형시계나 호프부르크 궁전, 페스트조일레 등을 둘러보며 모차르트 박물관에서 해버리고 만 돈낭비는 기억 저편으로 치워 두도록 하자. 그리고 모차르트 박물관을 갈 시간에 빈 슈타츠오퍼에 가서 '마술 피리' 같은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하나 보고 오면 훨씬 시간과 돈을 귀중하게 쓸 수 있다. 나 또한 '마술 피리'를 관람한 기억이 모차르트하우스를 방문한 기억보다 훨씬 즐겁다!
모차르트 박물관 갈 시간에 빈 슈타츠오퍼에 가는 건 어떤가?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
최종평가
명칭: Mozarthaus Vienna (빈 모차르트하우스) 운영시간: 매일 10:00~18:00 입장료: 14유로, 학생할인 시 10유로 (빈 패스를 사용해 입장할 수 있으며, 빈 패스를 사용하면 무료다) 사이트 링크: Mozarthaus Vienna
1. 도시 접근성: ★★★★★
빈에 있는 모든 박물관에는 5점을 주겠다.
2. 도시 내 접근성: ★★★★★
오스트리아에 왔고 빈에 왔다면 무조건 성 슈테판 대성당은 보게 된다. 성 슈테판 대성당에서 아무리 헤매 봐야 5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고 헤매지 않는다면 1분이면 갈 수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가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도심에 있다. 그럼에도 비추천한다.
3. 소장품: ★
입이 아플 정도로 소장품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겠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박물관에는 소장품이 꽤 있어서 꽤 비교된다는 것만 언급하겠다.
4. 언어 지원: ★★★★★
무려 13개 언어를 지원해 준다! 녹음해 주신 분의 발음이 살짝 뭉개지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면 언어 방면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 언어 지원 하나만은 내가 이후로 갈 모든 박물관을 포함해도 이곳이 최고였다. 다른 게 문제여서 그렇지...
5. 가성비: ★
아무것도 없는 회반죽 벽을 보기 위해서 10유로, 14유로를 내고 싶지는 않다. 4층과 3층, 그리고 사실상 관리실인 1층을 포함해 4층 규모로 억지로 만든 뒤 입장료를 늘린 것 같다는 의혹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파트먼트만 놓고 보면 3유로도 아까운 곳이다. 과연 모차르트는 사랑받는 게 아니라 잘 팔리는 작곡가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6. 규모: ★★★★
규모 자체는 정말 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서 시작하니 말이다. 방 9개짜리 전시관이 무려 3층, 그리고 1층의 모차르트카페에 지하 1, 2층까지 사용하는 박물관이다. 오디오가이드의 설명이 무척 길고 중간에 나오는 음악을 다 듣는다면 2시간도 훌쩍 넘기게 된다. (물론, 2시간 동안 보고 있을 시각적인 자극은 전혀 없을 테다. Tripadvisor에 올라온 리뷰 하나는 1시간이면 다 둘러보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7. 상호작용: ★★★
4층과 3층에서는 직접 손을 움직이거나 체험할 수 있는 전시는 없어도, 다양한 멀티미디어 전시가 있다. 2층에서는... 그런 것 따위 기대하지 말기를 바란다. 음악은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질리도록 들을 수 있다.
8. 굿즈: ★★★★
모차르트 박물관들은 대체로 굿즈가 우수한 편이다. 뭐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모차르트 인형이 꽤 많아서 하나 살까 고민했던 기억은 분명하게 난다. 책이나 CD 앨범 류도 꽤 있던 것 같다.
9. 큐레이팅: ★★
소장품이 하나도 없어서 큐레이팅을 평가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2층의 '공간 큐레이팅' 과 '상상해보세요 전법' 은 정도껏 해줄 때나 유효하다. 3층과 4층의 큐레이팅이 나쁘지 않아 별점을 올려줄까 싶다가도 공간 자체와 모차르트 동시대 가구에 대한 설명만 주구장창 해주는 큐레이팅에 2점 이상을 줄 수가 없어 2점으로 마무리하겠다.
10. 총평: ★★
모차르트의 집이라는데, 모차르트의 숨결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모차르트하우스의 상술에 눈물이 난다. 왜 관광지인지 모르겠는 사람 올림.
최대 장점: 한국어 지원 최우수, 큰 규모와 풍부한 굿즈
최대 단점: 부재하는 소장품, 너무 긴 오디오가이드
추천 여부: X (물론, 당신이 모차르트의 자취를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모차르트 팬이라면 말리지 않겠다. 아마 후회하겠지만.)
7화 예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 1825년 태어나 1901년 죽은 오스트리아의 국민 작곡가. 대표작은 사실상 오스트리아의 국가나 다름없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봄의 소리 왈츠', '트리치 트라치 폴카', '피치카토 폴카', '빈 사람들의 기질 왈츠', '남국의 장미 왈츠', '샴페인 폴카', 오페레타 '박쥐' 등. 2024년 4월, 경음악의 황제,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 그리고 황홀한 19세기의 사치가 남긴 금빛 자취를 따라 빈 외곽으로 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