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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Aug 20. 2024

05. 빈 하이든 박물관에 가다

'파파' 의 의미를 찾아서

'교향곡의 아버지' 겸 '현악 사중주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사진: 위키백과)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1732년 태어나 1809년 죽은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별명은 '교향곡의 아버지', '현악 사중주의 아버지' 그리고 '파파 하이든'. 어째 죄다 아버지에 관련된 낱말들이 하나씩은 들어간다. 정작 아내와의 불화로 인해 자식은 없었지만 모차르트, 베토벤의 존경을 두루 산 친절하고 유쾌한-작곡가 중에서는 보기 드문 인격자. 고전시대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하이든의 음악도 취향은 아니다. 그러나 하이든의 일화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에너지 덕분에 가끔씩 '기분이다! 하이든 선생님 곡 들어드리겠습니다' 하고 들으러 가는 날까지 있다. (하이든은 내가 드물게도 '분' 같은 어휘로 존대를 사용해 드리는 작곡가다) 물론 하이든의 음악은 훌륭하다. 베토벤의 음악어법을 단단하게 다져 준 분이기도 하시고, 자세히 뜯어보면 정말 놀랍다고는 하지만... 죄송합니다. 전 베토벤 이전의 음악을 잘 못 들어요.


두 번째 빈 방문이었다. 처음은 친구와 함께였다. 나와 내 친구는,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2022년 6월 23일 빈에 도착했고 사흘을 보낸 뒤 뮌헨으로 향했다. 그 사흘은 빈 미술사박물관, 벨베데레 궁전, 호프부르크 궁전, 쇤부른 궁전 (이때는 아쉽게도 겉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성 슈테판 대성당, 빈 중앙묘지, 그라벤 거리, 모차르트 가묘를 구경했다. 첫날 빈 중앙묘지를 돌며 베토벤, 슈베르트, 슈트라우스 2세, 브람스, 쇤베르크 등의 묘지를 구경한 것을 제외하면 모차르트 박물관이나 슈베르트 박물관을 방문하지 않은 것에 의아함을 표할 만하다. 이유는 간단한데, 원래는 박물관을 두 곳 정도는 가려고 했으나 빈 슈타츠오퍼에서 '마술피리'를 관람한 날 내가 심한 감기몸살이 나버렸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빈이라는 황홀한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을 100% 활용할 수 없게 발목을 붙잡은 친구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빈은 내게 첫 유럽 도시였다. 이국적인 건물과 풍경, 풍요로운 문화, 땡땡-하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트램과 로마자로 이루어진 언어, 비교적 안전한 치안까지 첫 유럽 도시로서 손색이 없는 곳이었다.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렀고 초목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생명력을 머금은 연두와 초록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는 말의 진정한 뜻을 빈에서 처음 느꼈다. 왜 사흘만 이곳에서 머무르겠다고 했을까! 떠나면서도 거듭 돌아보고 탄식이 나왔다. 보지 못한 작곡가 박물관이 넘쳐나는데! 가지 못한 궁전도 있는데! 그런 아쉬움을 남겼던 도시였기에 두 번째 방문은 예정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직 순수하게 내 취향으로만 채워진 여행을 해주마!라는 결심과 함께 무려 8곳의 작곡가 박물관 방문을 목표로 뒀다.

빈 방문 때 찍은 사진들이다. 두 번째 사진은 시청사, 세 번째 사진은 호프부르크 궁전 내부에서 본 외부 풍경이다.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레지던스 퍼밋을 받아 비자 문제까지 해결된 뒤 처음으로 넘는 국경이었다. 설렜다. 그리고 두려웠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유럽 도시로 향하는 길이었는데도. 창가에 기댄 채 생각했다. 만일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이 아니면 어떡하지? 혹시나 그때 빈이 황홀하게 느껴졌던 것은 오직 그곳이 내게 처음 방문하는 유럽도시였기 때문, 단지 그뿐이었으면 어떡하지? 다시 갔는데, 날이 저번보다 추워서 삭막하고 황폐하게 느껴지면 어떡하지? 그때는 친구와 함께였어서 즐거웠던 거고, 이번에는 심심하기만 하지는 않을까? 하늘이 푸르지 않아서 아름답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예 도시가 재개발을 했다든가 하는 이유로 변해버렸다면? 그때 공사하던 관광지들이 아직도 공사 중이지는 않을까? 내 기억 속의 빈은 내가 유럽에 대해 가지고 있던 모든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도시였다. 나는 그 환상이 깨질까 봐 두려웠다. 내가 갖고 있던 기억이 변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이 빈이 그리웠다. 세련됐고, 우아하고, 호화로운 나의 빈이 그리웠다. 빈이라는 도시를 재심에 부쳐 놓고 판결이 뒤집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나 자신이 웃기게 느껴졌다.


다행히 바보 같은 고민이었다. 첫 방문 때는 어둑한 밤이 나와 내 친구를 맞이했지만, 이번에는 터오는 동이 나를 맞이했다. 빈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푸르른 새벽 풍경은 역사주의 건축의 링슈트라세 건물의 하얀 외벽이 햇살을 받아 빛나게 되며 다시 빈 특유의 눈부신 반짝임으로 나를 환영했다. 관광객이 된 기분을 그토록 만끽한 적도 없었다. 만화에 나오는 도식화된 관광객처럼 창가에 손을 올리고 바보같이 입을 벌린 채 창밖을 바라보는 어린 여행객을 보며 출근 중이었을 빈 시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빈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에서 변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예순한 살의 하이든은 죽기 12년 전, 즉 1793년, 굼펜도르프에 위치한 집을 샀다. 1793년의 굼펜도르프는 허허벌판의 교외였다. 하이든의 친구들은 '하이든은 거기서 조용히 잘 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한 번 거길 갈 때마다 멀리 나가야 한단 말이지'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1790년대에서 1800년으로 넘어가는 비엔나의 황폐하다시피 한 전원 풍경이 1층에 잘 전시되어 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1800년이 넘어가며 나폴레옹이 침략했을 당시 사용된 북과 떨어진 포탄인 것 같다. 지금의 빈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이다. 바깥으로는 한가로이 나뭇잎이 한들한들거리고 사람들은 이보다 느긋해 보일 수 없는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닌다. 자전거 도로에서 실수로 걷고 있으면 성을 내는 파리 사람들과 달리 오히려 자신이 전방주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내게 사과해 주는 빈 사람들의 여유는 하이든이 살던 시절, 나폴레옹 침략 시기에는 발휘되지 못했으리라. 아마 베토벤이 이 시기 큰 소리로부터 귀를 보호하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썼듯이 하이든도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 텐데, 날 좋은 부활절 휴가 한복판의 오후 1시는 너무나도 평화롭게 창을 통해 햇빛이 쏟아지고 있을 뿐이라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쪽방으로 들어가 하이든과 함께했던 하인들의 이야기를 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붙어 있는 동시대 방문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올라가면 하이든이 인생의 마지막 12년을 보낸 2층이 나온다. (유럽식으로는 1층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하인들이 0층, 즉 한국 기준 1층에서 살고 고용주들은 2층에서 살았다. 괜히 2층을 Bel etage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벽감은 좁고 길다. 작은 피아노와 벽시계가 가로로 침대를 놓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공간에 놓여 있다. 짧은 쪽 벽에는 큰 창이 나 있고 그 큰 창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늘 계단 아래, 테이블 아래, 이런 좁고 작은 공간을 좋아했어서 그런지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편안함조차 하이든 같게 느껴진다.


하이든의 집 벽지는 하이든이 살던 당시의 벽지가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귀엽고 깔끔하며 기하학적인 무늬가 눈을 확 사로잡는 벽지들이다. 민무늬도 아니고, 궁전에서 쓸 법한 고급스러운 벽지도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이면 흙 벽을 그대로 노출해야 할 것 같고, 중산층이라면 밋밋한 민무늬 벽지나 석고 벽을 써야 할 것 같으며 부자라면 궁전에서 보는 은은한 실크 무늬의 벽지를 써야 할 것만 같다. 하이든하우스의 벽지는 낡지도 않았고 앞의 세 가지 카테고리 그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로마 시대 조각상들은 원래 하얀색이 아니라 화려한 채색이 입혀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 색이 지워졌기 때문에 하얗게 보일 뿐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이었다. 과거의 사람들이 '그 시대의 유행'이라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선호하는 색감이 있었고, 처음 벽지를 도배했을 때의 그 선명한 색감을 보고 기뻐하며 이사했을 모습을 떠올리면 기분이 묘하다. 하이든이 골랐던 벽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이런 모습이 결코 아니었겠지만, 하이든이 봤을 벽지는 이런 모습이었을 테다.

하이든하우스 내부. 벽지가 상당히 귀엽다. (출처: visiting vienna)


제아무리 하이든이라도 세월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이든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타들어가는 촛농처럼,  다 닳아서 몽당연필이 되어버린 그의 연필처럼 자신의 불꽃도 필연적으로 꺼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벽감의 한구석에 놓여 있던 시계가 마치 그 사실을 내게도 상기시켜 주는 것 같았다. 하이든은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굳이 젊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시간 또한 본인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임을 알았기 때문일 테다.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이든은 그 약함을 숨기려 하는 대신 또다시 자신의 주 무기인 유머를 꺼내든다. "기력은 다 사라졌구나! 이제 나는 늙고 병든 몸이다(Hin ist alle meine Kraft! Alt und schwach bin ich)", 하이든이 자신의 방문 카드에 짧은 악보와 함께 인쇄한 글귀였다. 누군가가 그에게 그 방문 카드의 의미를 묻자 하이든은 '누군가가 내게 왜 곡들을 미완성으로 남겨뒀냐고 물으면, 이것 한 장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겠지.'라고 대답했다 한다. 늙고 병든 몸, 늙었으나 병들지 않은 정신. 하이든의 정신은 아마 말년까지 건강했으리라, 그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세월의 흐름을 부드럽게 품는 법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방문 카드를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마모된 끄트머리는 시간이라는 파도를 버티지 못했지만 그 작은 종이 속 담긴 하이든이라는 사람은 영원했다.

하이든의 방문카드.


애초 집은 하이든의 마지막 12년 만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이든의 젊은 모습보다는 늙은 모습이 익숙하다만서도 작곡가 박물관의 마지막 방에서 작곡가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기분이 묘해지는 일이다. 방금 전까지 하이든의 방을 장식하던 생생한 벽지를 보고 왔는데, 벌써 하이든이 죽는다니. 하이든이 집을 가격보다 비싸게 팔린 앵무새 이야기를 보고 나면 하이든의 데스마스크 앞에 선다. 초상화랑 똑같이 생긴 얼굴이다. 가장 유명한 모습과 데스마스크 사이에는 보통 차이가 있는데, 하이든은 그렇지가 않다. 일각에서는 하이든의 유언이 '얘들아, 나는 괜찮아.'라고 하는데 정말 괜찮아 보인다. 차분함은 자신을 거역하지 않는 사람에게 시간이 선물이지 않을까.

하이든의 데스마스크.


하이든박물관에는 다른 작곡가를 기념하는 방이 하나 있다. 함부르크에서 잠시 얼굴을 봤던 요하네스 브람스다. 브람스의 집은 원래 하이든하우스와는 거리가 좀 있는 곳이었지만, 1907년 집이 없어지며 결국 1980년에 하이든박물관에 브람스가 가지고 있던 소장품들을 함께 진열해 놓자는 결론이 났다. 브람스가 사용하던 책상과 의자, 잉크통과 펜, 그리고 브람스의 집을 당시 모습 그대로 그려놓은 그림이 있다. 브람스는 가끔 자신이 하이든이 한 때 살았던 도시에 살고 있었다는 점을 의식했을까? 아마 했을 것이다. 열두 살 멘델스존의 초상화를 수집하고 기뻐했던 브람스라면 아마 자신이 지금 어떤 도시에 서 있고 그 도시에 누구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는지를 이따금씩 의식했을 테다. 브람스는 하이든이 살았던 집을 신기함과 존경을 담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브람스도 내 수집과 관찰의 대상이 됐다. 여기서 이백 년 정도가 더 흐른다면 나도 누군가의 수집과 관찰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브람스의 잉크통, 펜, 수통.


다 둘러보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거의 반 시간으로도 충분했을 만한 작은 박물관이었다. 이제 가야지 하고 발걸음을 떼려고 했지만 자꾸 한 번만 방문카드를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시 나왔다. 역시 그 방문카드가 너무 위트 있었다. 또 웃었다. 한 번만 더 보자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방문카드를 보고 나왔다. 혹시라도 방문카드 마그넷이 있다면 사겠어, 속으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쯤에서 언급해 두는데, 나는 한 국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다면 한 개씩 마그넷을 수집해 모으자는 원칙을 나름대로 세우고 갔다. 함부르크에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마그넷을 산 뒤로 생긴 묘한 결심이었다.) 그러면서도 설마 실제로 방문카드를 굿즈로 뽑아줬겠는가 생각하며 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지금까지 갔던 박물관들의 굿즈샵은, 여러분들께서도 눈치채셨겠지만, 형편없기 짝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카운터 앞에 하이든의 방문카드가 그대로 프린팅 된 마그넷이 있는 것 아닌가? 진짜 방문카드처럼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납작한 마그넷이 말이다. 한참을 고민했지만 역시 사지 않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마치 마그넷을 손에 쥐고 있으면 하이든이 직접 건네준 진짜 방문카드를 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문 카드라는 것은 그 사람이 왔다 갔음을, 그 사람이 한때 어떤 공간에 존재했었음을 알리는 매개이다. 하이든의 방문 카드는 그의 존재 증명이다. 그 한 장의 손바닥만 한 종이로 하이든은 작곡가로서의 자아와, 유머러스한 한 개인으로서의 자아, 그리고 시간이라는 선물이자 저주인 양날의 검을 지혜롭게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보여준다. 비록 가짜에 복제품이지만 하이든의 지혜를 손에 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클래식 작곡가 박물관 30곳을 돌면서 산 유일한 마그넷이지만,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구입한 하이든 방문카드 마그넷. 지금은 우리 집 냉장고 벽에 잘 붙어 있다.

마치 부적처럼 마그넷을 들고 치글러가세로 나왔다. 하이든 박물관에서 몇 발짝을 벗어나자 빈 구도심과는 또 다르게 유리와 콘크리르 외벽의 세련된 상가 건물들이 가득 늘어서 있다. 하이든이 살던 시절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곳이다. 도시가 확장되며 상업건물들이 이쪽으로 대거 입주한 것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하이든이 매입하던 당시의 집값과 지금 하이든 집을 매물로 내놓았을 때의 집값은 천지차이일 것이 분명하다. 하이든이 보던 거리지만 하이든이 보던 거리가 아니고, 하이든이 살던 집이지만 하이든이 살던 집이 아니다. 하이든이 알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를 그 사람들의 자녀들이,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들이, 그리고 그 자녀의 자녀들이 채우며 시대는 흘러 허허벌판은 어느덧 신도심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마지막으로 빈을 방문했다가 다시 방문하기까지 무려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이미 흘렀다. 그 사이 코로나는 종식됐고 대중교통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으면 눈초리를 보내던 사람들은 코로나에서 해방됐다. 언젠가 빈을 다시 방문할 수 있을까? 다시 방문한다면 그때의 빈은 또 내가 그날 보고 온 빈과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세 번째로 방문한 빈도 여전히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하이든의 집 근처 있는 Mariahilferstrasse. 빈 최대의 상가로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인다. (출처: vienna solutions)


잠시 하이든 방문카드 마그넷을 내려다봤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억만큼 아름답지 않으면, 변하면 또 어떤가. 생각해 보면 베를리오즈는 파리 오스만 시장의 대대적 재개발을 겪었고, 쇼스타코비치는 러시아 혁명을 겪었고, 하이든은 나폴레옹 침략을 겪으며 전쟁미사 (전시미사라고도 하는 것 같고 전쟁의 날들에 미사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를 작곡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그 변화에 대처할 방법을 늘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 하나뿐이다. 하이든 박물관에서 나온 직후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과 맑은 푸른 하늘 또한 인생에서 단 한순간만 즐길 수 있는 풍경이었고 지나가버릴 찰나였다. 빈이 변하지 않더라도 다시 왔을 때는 내가 변해 있을 테니까. 일부러 치글러가세에 조금 더 머물렀다. 하이든이라면 이런 변화에도 당황하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특유의 유머 감각을 발휘해 집값이 올라버린 거 집값 재테크 하는 셈 치고 팔아버리지 뭐!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인간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주변 환경이 변해버리면 그 변화에 새롭게 익숙해져야 하고, 지금까지 몸에 배어온 습관을 전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는 것보다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나도 성인이 된 지 벌써 3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면 '이걸 내가 봐도 되나?' 하고 망설이고 가뭄에 콩 나듯 술을 마시러 가도 '이거 내가 마셔도 되는 건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이든에게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누군가가 처음 그를 '파파 하이든'이라고 불렀을 때 '내가 왜 파파지? 난 분명 청년이었는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하지만 그는 자신도, 자신을 둘러싼 세상도 변화한다는 점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파파'가 되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후배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품어주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에게 모두 '파파'가 되어 주었다.


하이든의 인생은 우리에게 디미뉴엔도와 피아니시모 또한 아름답다, 그러니 피아니시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말해 준다. 언젠가는 내 인생 또한 디미뉴엔도로 잦아들다가 피아니시모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그날이 다가왔을 때 나 또한 잦아드는 음악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디미뉴엔도와 피아니시모에 건배를 올린다.


최종평가

워낙 박물관이 많은 탓에 확대 이미지를 삽입했다.
명칭: Wien Museum Haydnhaus (빈 하이든하우스 박물관)
운영시간: 금토일 10:00~17:00 (12:00~13:00은 점심시간으로 운영하지 않음)
입장료: 5유로, 학생할인 시 4유로 (뮤지쿠스 패스를 구입할 시 같은 기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6곳을 정가 21유로, 할인가 16유로에 관람할 수 있다)
사이트 링크: WIEN MUSEUM - Haydnhaus

1. 도시 접근성: ★★

수도다. 애초에 빈에 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침대가 있는 야간열차도 다닌다. 제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빈에 가줬으면 좋겠다.


2. 도시 내 접근성: ★★★

빈 치글러가세 근처 신시가지다. 중심 관광지들과는 거리가 다소 멀어 트램이나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지만, 지하철역과 5분 거리다. 트램도 자주 다닌다.


3. 소장품: ★★★☆

냉정하게 하이든의 소장품만 놓고 말하자면 하이든의 방문카드, 클라비코드, 연필, 데스마스크 정도가 끝이다. 애초 비교적 옛날 사람에 속하기 때문에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고 기대에 비하면 오히려 많이 있는 편이었다. 또 하이든 소장품은 그리 많지 않지만, 브람스의 수통과 잉크통, 가구가 모두 남아 있기 때문에 브람스를 봐서 0.5점을 추가한다.


4. 언어 지원: ★★★

프라하의 한국어 지원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한국어가 지원되는 박물관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대신, 영어 번역은 정말 깔끔하게 되어 있으며 따로 책자를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모든 전시물의 설명과 모든 인용구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오디오가이드를 답답해하는 편이라서 오히려 이 편이 더 보기 편했다. 오디오가이드도 원래 제공됐던 것 같지만, 지금은 제공해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오디오가이드 마크가 가려져 있었다.)


5. 가성비: ★★★

입장료가 4유로 (6천 원) 정도면 한번 둘러보고 가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적당한 가격이라고 느꼈다.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서 가성비가 나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다. 그럴 경우에 혹시 날짜가 된다면, 매달 첫째 주 일요일은 무료입장이니 그날을 노려보는 것도 좋겠다.


6. 규모: ★★

2개 층과 정원이 전부인데, 이 2개 층도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규모다. 크기 자체는 드보르작 박물관과 비슷하지만 콘텐츠가 더 적기 때문에 별 1개를 깎았다. 기억 속에는 더 컸던 것 같은데, 다시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작은 박물관이었다.


7. 상호작용: ★

그 흔한 음악 듣기 콘텐츠도 따로 없던 걸로 기억한다. 상호작용 가능한 콘텐츠는 정말 단 하나도 없다.


8. 굿즈: ★★★☆

평범했다... 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 하이든 오르골도 있었고 무엇보다 하이든 방문카드 마그넷을 팔았다. 내가 비정상적으로 이 방문카드 마그넷에 집착하는 경향성이 있긴 하지만, 고객의 니즈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0.5점 가산점을 드린다.


9. 큐레이팅: ★★★

깔끔했다. 하이든의 인생사 초중반은 에스테르하지와 더 연관이 깊은 만큼 이곳 전시 내용에서는 다른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게 나을 것이라 판단한 낌새가 보였다. 선택과 집중을 확실하게 했고, 공간의 내용에 따른 훌륭한 선택이었다. 하이든의 인생사 말년을 전체적으로 조명해 준다는 점이 좋다.


10. 총평: ★☆

애매하게 좋다. 하지만 하이든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모든 방면에서 무난하다. 신시가지에 들러 쇼핑도 해보는 건 어떨까?

최대 장점: 깔끔한 큐레이팅, 클래식 작곡가 박물관에서 보기 드물게 고객의 니즈를 파악한 굿즈

최대 단점: 꽤나 작은 규모

추천 여부: O


6화 예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년 태어나 1791년 죽은 오스트리아의 천재 작곡가. 대표작은... 굳이 이야기해야 할까? 여러분들도 다 아시는 곡들을 열 곡은 작곡했을 사람이다. 2024년 4월, 하이든 박물관에서 나오자마자 감기몸살로 인해 모차르트하우스에 가지 못해 맺힌 한을 풀러 그라벤 거리로 서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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