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굴꾼 Aug 06. 2024

03. 프라하 스메타나 박물관에 가다

블타바 강을 바라보며, 블타바의 작곡가를 추억하며, 블타바를 듣다

체코의 국민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출처: 위키백과)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1824년에 태어나 1884년에 죽은 체코의 작곡가. 대표곡으로는 교향시 '나의 조국' 2곡 '블타바'가 있다. 피아노 트리오나 오페라 '팔려간 신부'도 제법 유명한 편이지만 '블타바'의 유명세에는 못 미친다. 애국적이고 민족적인 음악으로 유명한 체코의 작곡가 두 명 중 하나인데, 안타깝게도 멘델스존이나 브람스보다는 리스트나 바그너를 더 좋아했던 작곡가인 만큼 나는 그의 곡을 막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싫어하지도 않지만, 아무래도 브람스를 은인 삼던 드보르작에 비하면 나의 취향 존에 들어오지는 못한다. 단 하나, 예외인 곡이 있는데, 그것은 앞서 말했던 '블타바'다.


교환학생을 한 학기 간다면 한국 기준으로 상반기에 가는 편을 하반기에 가는 편보다 추천한다. 점점 날씨가 따뜻해져 많아진 기념품이 잡아먹는 공간을 겨울 옷 대신 가벼워진 여름옷으로 채워 넣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요, 날이 점점 추워지는 기분보다는 따뜻해지는 기분이 좋다는 것이 두 번째요, 날을 잘 맞춰서 가면 베네치아나 쾰른, 니스의 카니발과 네덜란드 쾨켄호프의 튤립 축제와, 본의 벚꽃거리와, 독일의 봄 축제 (springfest, 옥토버페스트와 비슷하지만 옥토버페스트 규모의 절반 정도다)를 즐길 수 있어 오히려 2학기에 가서 즐길 수 있는 축제보다 다양한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세 번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기 '중에' 2주일이나 되는 긴 부활절 휴가가 주어진다는 것이 세 번째다. 사실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이라고 해도, 엄동설한의 날씨에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아 자주 구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에 비해 부활절은 일반적으로 3월 말과 4월 초를 전후하기에 봄 패션을 맘껏 선보이며 여행을 다닐 수 있다. 프라하의 기온도 15~20도 정도를 웃돌고 있어 드디어 내가 아끼는 청자켓을 처음으로 개시할 수 있었다.


2024년 4월 1일.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까지 이탈리아 4개 도시를 10일간 돌아보고 난 뒤 잠시 기숙사에서 재정비를 하고 열 시간 동안 타 기차를 타 프라하에 도착한 날이었다. 드레스덴에서 프라하까지는 2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만하임에서 프라하까지는 그 다섯 배가 걸린다. 이 기차는 새벽 4시 30분 출발 기차였고 오후 2시 30분 도착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만 그 기차가 한 시간 연착이 되고 말았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 건 평소의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프라하에 있는 날 동안 스메타나 박물관이 여는 유일한 날이 4월 1일이었기에 스메타나 박물관을 제대로 관람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이 닫는 5시보다 한 시간은 빠른 4시까지는 어떻게든 스메타나 박물관에 도착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건 버스도 아니었고, 자가용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도보나 자전거도 아니라서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하늘에게 제발 기적적으로 기차가 빨리 도착하게 해 달라, 더 이상은 연착되지 않게 해 달라 기도를 올리는 수밖에 없던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창밖을 힐끔힐끔 내다보기를 반복했다.


기차는 한 시간 늦게 출발한 만큼 정확히 한 시간 늦게 도착했다. 프라하 중앙역은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이 한창 유행하던 때 지어진 구 역사에 신 역사를 합쳐놓아 기능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그리고 아르누보라면 환장하는 내가 놓치면 아쉬웠을 곳이지만, 도착한 시각은 벌써 세 시 반이었고 역에서 스메타나 박물관까지는 도보로 20분이 넘게 걸렸다. 모든 짐을 담아 온 가방이 적어도 7kg은 나갔지만 호텔은 역과 멀리 있어 호텔에 짐을 놓고 간다면 스메타나 박물관을 절대 볼 수 없었다. 거북이가 등껍질을 지고 가듯 나도 20인치 캐리어랑 큰 차이도 나지 않는 크기의 백팩을 메고 스메타나 박물관으로 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스메타나 박물관에 도착하는 게 먼저였다. 짐은 그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그 유명한 화약탑도 눈에 들어왔고 천문시계도 가는 길에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마치 종료가 임박한 한정 세일 탭에 개인정보를 급하게 입력해 넣는 사람처럼 스메타나 박물관으로 헐떡이며 뛰어갔다.


스메타나 박물관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카를교 바로 옆이다. '아~카를교에서 5분 정도 거리겠구나~'가 아니라, 정말 카를교 바로 옆 건물이다. 박물관에서 카를교 근접샷을 찍을 수 있을 정도다. 그게 스메타나 박물관이라는 게 잘 안 들어와서 그렇지 접근성으로만 따지자면 클래식 음악가 박물관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꼽게 관광지랑 가깝다. 1층에는 박물관 MD샵 (이라고 해도 1평방미터도 안 된다) 이 있고 2층이 박물관이다. 오후 4시, 땀을 뻘뻘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간 스메타나 박물관 1층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짐 맡길 수 있을까요?' '맡기실 수는 있지만 박물관 굿즈샵은 4시 30분에는 문을 닫아요. 저도 그때 퇴근하고요. 여기 짐을 맡기셔도 괜찮지만 퇴근 전에 찾아가셔야 해요.' 나름 국립박물관이라는 곳이라서 락커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박물관을 30분 동안 둘러보고 나온다는 선택지는 애초 존재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무거운 가방을 지게처럼 지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도 따로 짐을 놓을 만한 곳은 없었지만, 애초 사람이 4명뿐이었다 (나를 제외한 3명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동양인 여자 세 명으로 친구들끼리 온 듯했다. 스메타나 박물관이라니 정말 특이한 여행 코스를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텅텅 빈 의자에 내 가방을 올려놓았지만 직원들에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는 1884년 죽었다. 스메타나 박물관 건물은 1884년 세워졌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신-르네상스식 건물은 프라하의 상징과도 같은 주황색 지붕에 눈에 띄는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외양만 놓고 봐도 작곡가 박물관 가운데 굉장히 멋있는 축에 속한다. 스메타나 박물관이라는 걸 몰라도 한 번쯤 사진 찍고 지나가고 싶게 생겼달까. 그걸 알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프라하 역에서 스메타나 박물관까지 가는 길 있는 주요 관광지 표지판에 스메나타 박물관 또한 다른 관광지들과 다를 것 없이 건물 외관이 그려져 있다. 보통 박물관들이 평범하게 생긴 집에 지나지 않아서 별다른 그림 표시가 없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현관에는 스메타나의 가계도와, 체코 곳곳의 스메타나 기념관에 대한 소개가 붙어 있다. 스메타나의 오페라 내용으로 구성한 스테인드 글라스 앞에 놓여 있는 스메타나 흉상 사진을 찍지 않으면 큰 손해다.

스메타나 박물관을 카를교에서 본 모습이다. 정말 아름답지 않은가! (출처: 위키백과)

그러나 잔뜩 품었던 기대는 배반당했다.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이게 전부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 전에 다녀온 작곡가 박물관은 바흐, 멘델스존, 브람스(와 다른 여섯 작곡가)까지 총 세 곳이었는데 이 세 곳은 모두 규모가 상당해서 2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에 비하면 스메타나 박물관은 일단 공간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다. 만일 방으로 나눠졌다면 다섯 개의 방으로 나눠졌어야 하는데, 인생사를 세 개 정도의 섹션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스메타나를 잘 몰랐기에 텍스트 하나하나를 무척 관심 있게 살펴봤다. 나와 비슷하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모임에서 스메타나를 좋아하는 분이 한 분 계셔서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작곡가는 아님에도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스메타나 박물관에는 별도의 오디오가이드가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언어를 지원하고 있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체코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 정도는 지원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영어 가이드북을 가져왔다. 한국어의 경우 지원이 되긴 하지만, 박물관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책자로만 있고 박물관 바깥으로 가져갈 수 있는 가이드북 중에는 한국어가 없다. 가이드북을 꼭 가져오지 않더라도 관람에 큰 지장은 없고, 모든 사진이나 아티팩트에 영어 설명이 붙어 있긴 하다. 하지만 스메타나가 편지나 일기에 작성한 내용들은 전시 패널에 체코어로만 적혀 있어 가이드북을 가지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메타나 박물관에서는 이 가이드북을 무료로 제공할 뿐 아니라 한국까지 가지고 올 수도 있다. 나도 정말 이 두꺼운 가이드북을 가지고 와도 되는 거냐 믿기지 않아서 직원 분께 몇 번을 되물었지만 정말 가지고 가도 된다 하셔서 횡재한 기분이었다.

(좌) 70페이지 분량의 영어가이드북. (우) 한국어 가이드. 오른쪽의 책자는 반출불가이며, 좌측 가이드북보다 설명이 풍부하다. (우) 사진 출처는 친구.

1번 홀은 스메타나의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1862)를 다루고 있다. 벽에 붙어 있는 내용들은 대개 스메타나의 학업성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가운데에 있는 사각형의 연단 위에 올라가서 스메타나가 살던 당시 프라하의 음악계 상황에 대해서 읽을 있다. 내가 번째로 인생사에 관심이 많은 작곡가인 베를리오즈와, 개인적으로 조사를 많이 했던 작곡가 리스트 이야기도 시점에서 등장한다. 가운데에는 작은 삼각형 모양의 진열장이 있는데, 안에 스메타나의 안경과 스메타나의 부인이 소유하고 있던 가넷 장신구가 들어 있다. 텍스트나 기록물 위주의 박물관보다는 작곡가의 삶을 엿볼 있는 소장품들이 많은 박물관을 선호하기 때문에 안경을 지금도 스메타나 박물관 최고의 소장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외에 스메타나의 기념지휘봉도 있다.

스메타나가 1874년 'Two widows' (두 과부) 초연으로 받은 기념지휘봉이다.
스메타나의 안경이다.

2번 홀은 1862년에서 1874년, 스메타나가 직업적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기를 다룬다. 정보가 많았고 나름 꼼꼼하게 다뤄주긴 했지만,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아서 스메타나에 대한 대략적인 인생사 얼개도 잡혀 있지 않았던 내게는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긴 전시 방식이 좀 특이한데, 벽에 붙어 있는 패널이나 전시장은 따로 없다. 둥그런 카펫과 피아노 한 대를 중심으로 해서 종이 스크롤 같은 것이 여덟 개 늘어져 있다. 모양만 놓고 보면 결투장에 귀족 가문의 문장을 늘어뜨려놓은 듯한 느낌이지만, 구름 낀 하늘 틈새 이따금씩 비쳐드는 햇빛을 받은 하얀 천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으면 모종의 신성한 기분까지 느껴진다. 사방으로 돌아가며 읽는 건 좀 귀찮고 글자가 작은데 이 천의 높이가 높아 글자를 제대로 읽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분위기가 좋았으므로 용서해 주기로 했다. 애초 내용은 전부 책자로도 읽을 수 있고 말이다.

스메타나 박물관 2번 홀. 뒤편으로 얼핏 3번 홀이 보인다. (출처: 체코 국립박물관)

마지막, 3번 홀은 스메타나의 말년, 신경매독이 도지기 시작한 1874년부터 1884년까지의 10년을 다룬다. 이 시절 스메타나가 어쩔 수 없이 은퇴를 했고 체코 음악계에 기여한 바에 비해 턱없이 적은 연금에 쪼달리며 살았다, 게다가 이 시점에는 이미 귀도 안 들렸고 결국 1884년 프라하의 정신병원에서 죽었다는 점은 오히려 그렇게까지 부각되지 않는다. 스메타나의 단순한 말년뿐이 아니라, 일종의 '스메타나 총 결산' 홀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립 오페라에 스메타나가 한 기여가 설명되어 있다. 내가 설명을 소홀히 읽었던 걸까, 스메타나가 그렇게 말년에 힘들었다는 설명을 읽은 기억이 없다. '아, 스메타나는 비록 고독하고 개인적으로는 '조금' 가난하게 살았을지언정 엄청난 존경과 영예를 누렸구나! 스메타나가 자신의 고생이 결국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고 죽어서 다행이야'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분명히 있는데, 다시 위키백과 문서를 읽어 보니 그의 고생이 생전에 결실을 맺었다는 암시도 못 찾겠다. 대체... 나는 전시를 어디로 본 건가!


네 번째 전시실은 2025년까지 하는 특별전시로, 스메타나의 오페라와 오페라 초연~20세기 초 정도 공연 당시 입었던 오페라 의상들이 복원되어 진열되어 있다. 스메타나의 오페라는 '팔려간 신부'의 제목을 들어 본 적 있다는 걸 제외하면 사실 잘 모르지만, 원체 복식이나 의상을 좋아해서 눈이 즐거웠다. 아, 그리고 의상 가운데 하나의 왼쪽 하단에 진열된 바이올린인지 비올라인지가 있는데, 끄트머리가 스메타나의 얼굴로 장식되어 있어서 웃음을 멈추지 못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실제 입었던 의상들을 한 땀 한 땀 복원해 냈는데, 구상 스케치와 실제 배우들의 사진, 그리고 의상 세 가지를 다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옛날 의상들은 주로 사진으로 보게 되다 보니 현실감이 없는데 갑자기 컬러가 되어 나타나면 장면을 한 층 더 세세하게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메타나 얼굴로 장식된 악기라니... 정말 끔찍하다. 누가 이런 생각을 해낸 걸까?
스메타나의 오페라에서 실제로 공연 시 입었던 의상이다. (사진은 스메타나 박물관에 간 친구가 찍어 줬다.)

그럼 슬슬 나가볼까, 생각하기에는 한참 이르다. 스메타나 박물관은 일반 가정집 거실 세 개 정도를 붙여놓은 크기에 불과하지만 그 작은 크기에 정말 정보와 액티비티를 꽉꽉 채워 넣었기 때문이다. 1번 홀로 돌아가면 스크린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스메타나의 대표작 교향시, '나의 조국'이 시의 어떤 부분과 대응하는지를 맞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메타나의 오페라에 나오는 인물들을 주인공들끼리 연결하는 것이다. 단순 짝 맞추기 게임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알아야 맞힐 수 있는 퀴즈라서 내게는 꽤 까다로웠다. 교향시 내용 맞히기도, '블타바' 말고는 거의 아는 게 없어서 오답을 낼 수 있는 대로 다 제출한 뒤에야 끝낼 수 있었다. 그것 말고도 3번 홀에는 피아노 두 대와 보면대 아홉 개 정도가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피아노 한 대는 스메타나가 가지고 있던 피아노다. 주변에 펜스나 접근을 금지하는 줄은 따로 없고 건반에 덮개가 씌워져 있는데 자세히 읽어 보면 스메타나의 피아노라고 적혀 있다. 스메타나 스크랩북 같기도 하고 악기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한 독특한 보면대들과 피아노 오른쪽 아래에는 스피커가 한 개씩 있고 스피커들에는 각각 악곡이 적혀 있다. 피아노에 놓여 있는 지휘봉을 들고 마치 해리 포터의 마법지팡이처럼 스피커를 가리키고 잠시 기다리면 해당하는 곡이 흘러나온다. '팔려간 신부' '나의 생으로부터' '나의 조국' 등등 스메타나의 대표작들을 들으며 아무도 없다시피 한 고즈넉한 박물관의 분위기를 즐기고 있으면 정말 프라하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사실 한 시간 정도로 관람을 끝낼 수 있었는데 한 시간 반이 걸린 건 다 이 보면대들 때문이었다. 보면대 중 하나에 '나의 조국' 중 '블타바'가 나오는 게 있는데 카를교 옆! 블타바 강 앞! 스메타나 박물관 안에서 그의 작품을 들을 기회를 어떻게 그냥 흘려보낸단 말인가? '블타바'를 두 번이나 돌려 듣느라 직원분들이 퇴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박물관에서 나오게 됐다. 다른 관광객 세 명도 어느덧 떠나고, 나와 직원 분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박물관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무거운 청회색 구름 아래 보이는 프라하는 슬프고 장중한 모습이었다. '블타바'유난히 쓸쓸하게 들렸다.

스메타나 곡을 재생할 수 있는 보면대. 우측하단의 스피커에 주목. 스메타나의 피아노. 출처는 마찬가지로 친구의 사진이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1층 (또는 0층) 박물관 MD샵 진열장 속을 바라봤다. 드보르작, 스메타나, 도흐나니 키링이 있었다. 다른 소소한 굿즈들도 있던 것 같은데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 지금 기억이 나는 건 키링을 제외하면 단 하나뿐이다. 스메타나의 '블타바' 오르골. 그때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관광지에서 파는 그 흔한 작곡가 얼굴 그려진 클래식 음악 오르골 세트 중 하나였으니까.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너무 늦게 왔었으니까. 설마 체코 대표 작곡가의 오르골을 블타바 강 앞, 이 대표 관광지인 프라하에서 안 팔 리가 있어. 이렇게 좋은 곡을 안 팔 리가 없잖아! 가뿐한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나서, 버드나무 이파리 사이를 헤치고, 스메타나 동상의 사진을 찍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메타나 박물관과 나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황 지붕으로 유명한 프라하는 2차 대전에도 꿋꿋이 살아남은 도시로 꾸준한 인기 관광지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모든 일정을 작곡가로 꽉꽉 채워 넣는 나조차도 작곡가 관광만큼이나 풍경 구경도 많이 하고 싶은 도시였다. 아쉽게도 스메타나 박물관에 도착한 날은 앞서 말했듯 흐리고 구름 낀 날이었다. 프라하에서 내내 날씨가 이럴까 봐 걱정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둘째 날은 거짓말처럼 맑고 푸르러진 하늘이 주황색 지붕과 완벽하게 대조가 되는 날이었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고 구름도 한 점 없었다. 카를교 위에 서서 블타바를 들으며, 약간 쌀쌀한 초봄의 바람과 빠른 유속으로 밀려오는 블타바 강의 물살을 느끼고 있으면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분명 제목 '나의 조국'은 체코를 가리키는 것이고 이 곡의 작곡가는 나와는 만 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곳에서 태어난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눈물이 자꾸 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교향시 가운데 '블타바'는 정말 최고라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도 눈물이 난다. 한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슬픈 것도 아니다. 기쁜 것도 아니다. 분노한 것도 아니다. 그저 '가슴이 웅장해진다'라는 표현으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벅참이 느껴진다. 지금도 블타바를 들으며 눈을 감으면 카를 교 위에 서서 봤던 풍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왜 맑은 날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본 것에 불과한데 눈물이 났던 걸까. 대체 무엇이 그렇게 나를 벅차게 했던 걸까. 왜 '블타바' 만은 유독 블타바 강에서 들어봤을 때와 그러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이렇게 큰 걸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도 '시스티나 대성당에서'도 '이탈리아 교향곡'도 '베네치아 뱃노래'도 '라인 교향곡'도 모두 그 장소에서 들었지만 주지 못했던 감동은 왜 '블타바'에서만 느껴지는 걸까. 유럽에서 장소와 관련된 다른 클래식 곡은 단 한 곡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블타바' 만큼은, '블타바' 만큼은, 꼭 카를교를 건너며 또는 카를교를 바라보며 들어 보기를 바란다. 왜 나의 조국도 아닌 곳인데 나라의 흥망성쇠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지, 왜 기쁨과 슬픔 그 사이 어디에도 점을 찍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격동하는 건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가운데 누군가가 설명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날씨였다. 작곡가 박물관과는 관련이 없지만, 그냥 사진이 예쁘게 잘 나왔다.

이런 마법적인 경험을 한 나는 블타바 오르골을 사야만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혔다. 이전까지는 블타바를 그 정도로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카를교에서 블타바를 들은 순간 무조건 사야 한다, 무조건 사야만 한다, 체코 작곡가의 이런 명곡을, 내 가슴을 이렇게 울리는 곡을 블타바 강이 흐르는 도시에서 사지 않는 건 미친 짓이다, 그런 광기에 가까운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고 만 것이다. 스메타나 박물관을 방문한 다음 날부터 나는 닥치는 대로 기념품점과 기념품점은 다 돌아다녔다. 관광도시답게 천문시계 앞과 카를교 앞에, 또 프라하 성 근처에는 기념품점이 바글바글했다. 오르골도 좀 규모가 있는 가게다 하면 다 팔았다. 팔긴 팔았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나, '대부' 나, '엘리제를 위하여' 나 그런 것들을. 굴뚝빵을 사 먹고 부활절 마켓에서 부활절 달걀까지 사면서도 오르골을 찾지 못한 나는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프라하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화약탑을 지나서부터 천문시계를 거쳐 카를교로 오는 길은, 도보 10~15분 거리가 전부 기념품점으로 꽉 차있다. 그런데도 없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블타바' 오르골을 팔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둘째 날 하루종일 돌아다녔지만 오르골을 찾지 못한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스메타나 박물관 바로 옆 카페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부공사 중인 스메타나 박물관이 이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블타바 오르골 찾기가 어려운 줄 알았더라면 오르골부터 샀을 텐데, 하는 후회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서러워서 눈물까지 날 것 같았다. 스메타나 동상 옆에 서 있는 커다란 버드나뭇가지가 강가의 거세고 쌀쌀한 바람에 마구 나부꼈다. 이왕 시간이 늦은 거, 그 유명한 프라하의 야경이라도 보고 들어가야지 하는 생각에 나는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청자켓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이 낮과는 달리 너무 쌀쌀해서 달달 떨면서도 기다렸다. 기다란 모포에 둘러싸인 것처럼 생겨서 이상하게 추워 보이는 스메타나 동상처럼 나도 옷자락을 꽁꽁 싸매고 있었다. 경량패딩을 입고 스메타나 동상의 무릎 위에 올라가려 애쓰는 아이들이 참 따뜻해 보여서 부러웠다. 끝내 남매였던 것 같은 아이들 둘 가운데 남자아이가 올라가는 데 성공했는데, 아쉽게도 여동생은 스메타나의 무릎팍 위에 앉는 데 성공하기 전에 부모님이 데리고 갔다. 스메타나의 피아노 삼중주가 딸을 잃고 쓴 곡이라는 사실이 떠오르며 스메타나라면 오히려 차가운 무릎 위 아이들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메타나 동상은 늘 어딘가 춥고 쓸쓸해 보이는 것 같다. 내 착각일까?

해가 점점 져갔다. 사진사들이 원하는 완벽한 분홍빛, 또는 주황빛 석양은 없었다. 그저 하늘색에서 파란색, 짙은 남색, 이윽고 검은색으로 하늘이 변한 건 열 시가 다 되어서였고 이미 주변 가게들은 문을 닫았으며 야경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다 떠난 뒤였다. 나는 블타바 강가의 쌀쌀한 바람과 버드나무, 그리고 스메타나 동상과 함께 남았다. 야경은 아름다웠다. 검은 강물 위로 조명이 들어온 카를교의 불빛이 반사됐다. 부산에서 보이는 네온 불빛과 오색빛 벚꽃과는 달리 프라하는 자신들의 매력이 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은은한 주황빛 조명으로 밝혀져 있었다. 버드나무와 강가가 동시에 보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카를교 위에서 야경을 보려 했던 사람들은 절대 볼 수 없었을 완벽한 구도였다. 스메타나 박물관은 은근히 입구가 카를교에서 ㄷ자모양으로 들어와야 해 가려져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마찬가지로 이 완벽한 포토스팟도 은근히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프라하의 야경을 고요 속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건 엄청나게 즐거운 일이었다.

스메타나 박물관 바로 옆에서 본 프라하의 야경이다. 버드나무가 늘어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그래서 오르골은 찾았냐고? 천만다행으로 찾았다. 프라하 성을 마주 보는 기준으로 했을 때 왼쪽으로 꺾으면 긴 통로 양옆으로 상가가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나무 박스에 담은 오르골을 파는 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 가게의 모든 오르골은 다른 가게와 하나도 다를 바 없이 흔해 빠진 곡들뿐이었다. 다른 점은 오직 하나였다. '블타바'를 팔았다는 것.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찾은 '블타바' 오르골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았다. 심지어 그 오르골마저도 원래는 다른 오르골이었는데, 스메타나의 명곡 오르골 수요가 은근히 많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이 자체적으로 결단을 내린 것이었는지 원래는 '벨라 챠오' 이런 곡명이 새겨져 있던 자리 위에 하얀색 '블타바' 딱지가 붙어 있었다. 그 가게 주인분은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라 생각하고 있다. 유럽 여행을 하며 오르골을 10개나 샀지만 지금까지도 '블타바' 오르골은 내가 가장 아끼는 오르골이다.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고, 그 나라의 작곡가가 그 나라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서 쓴 곡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판 발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오르골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 블타바 오르골. 아래쪽에 붙어 있는 하얀 딱지는 다른 곡명을 가리기 위해 붙여놓으셨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혹시나 '블타바' 오르골을 찾을 일이 있다면 꼭 고생 말고 스메타나 박물관에서 미리 사는 편을 추천한다. 유럽 도시들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생각보다 클래식 음악 오르골은 ('엘리제를 위하여'를 제외하면) 찾기 힘들다.


오늘은 한 번 '팔려간 신부'에 도전해 봐야겠다.


최종평가

명칭: Muzeum Bedřicha Smetany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박물관)
운영시간: 수-월 10시부터 오후 5시
입장료: 70코루나, 학생 50코루나 (한화로 각 4천원, 3천원 상당이다.)
사이트 링크: Bedřich Smetana Museum - National museum (nm.cz)

1. 도시 접근성: ★★

프라하! 한 나라의 수도다. 접근성이 나쁠 리가 없다. 200만명이 사는 도시인 데다가 관광자원도 풍부해 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날아온다.


2. 도시 내 접근성: ★★★

카를교 앞이다. 아니 옆이다. 하다못해, 관광을 하다가도 한 시간 자유시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든 달려와 관람할 수 있는 수준의 거리다. 농담이 아니라, 박물관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면 블타바 강에 빠진다!


3. 소장품: ★★★

브람스 박물관과 비슷하다. 스메타나가 선물 받은 기념 리스나 기념 지휘봉이 있고, 내가 갔을 때는 특별 전시로 원본 오페라 의상 복원도 전시되고 있었다. 뭣보다 스메타나의 안경과 스메타나의 부인이 소장하던 주얼리는 정말 귀중한 전시품이지만, 그것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자료가 사진이나 모조품으로만 제공된다. 대부분이 종이나 유리에 프린팅 된 형태라서 원본품이 적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4. 언어 지원: ★★★

한국어가 지원된다! 한국인이 그렇게 프라하에 많이 놀러 왔던 걸까? 비록 나는 한국어 자료는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한국어 가이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고득점이다. 오디오가이드였다거나, 가이드북을 반출가능했다거나, 베드지흐 스메타나가 아니라 베드르지흐 스메타나라고 적어주기만 했더라도 5점을 줬을 텐데... 그래도 이만하면 훌륭하다. 약간 어긋난 번역이라 해서 이해하는 데 무리가 있지는 않다.


5. 가성비: ★★★★★

최고의 가성비 박물관 가운데 하나. 아니 4천원이라니까? 솔직히 이 정도면 그냥 기부하는 셈 치고 가도 된다. 과연 국립박물관이다.


6. 규모: ★★

확실히 작은 편이다.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딱 좋았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텍스트가 너무 빡빡하게 들어가 있어서 눈이 피로한 감이 있다. 전시실 규모로는 1점에서 1.5점을 줘야 하겠지만, 그 작은 전시실 안에 워낙 정보를 빽빽하게 채워놓아 실제 관람시간은 그것보다 오래 걸리므로 3점을 주었다.


7. 상호작용: ★★★

지휘봉으로 가리켜서 음악 재생하기. 이런 거 좋아한다. 오페라 등장인물 짝 맞추기. 이런 것도 좋아한다. 은근히 전시 방식도 패널을 돌려 가면서 읽는 것, 책자처럼 되어 있는 것, 스크롤 형식 등 나름대로 지루하지 않게 구성해 놓았다.


8. 굿즈: ★

나름 나쁘지는 않다. 소장욕이 엄청나게 많이 드는 건 아니지만, 제법 괜찮은 작곡가 배지인지 키링도 있고, 스메타나 관련해서 굿즈를 이것저것 나름대로는 많이 팔고 있다. 아, 홈페이지에서는 스메타나 가계도 브로마이드를 살 수 있던데 그런 걸 대체 왜 사고 싶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희소성이 엄청난 오르골을 판다는 점을 높이 사 별 1개를 추가했다.


9. 큐레이팅: ★★★

브람스와 똑같이 생애를 따라가는 방식이지만, 중간중간 '당시의 프라하' '스메타나의 민족 음악에 대한 반응' 등의 섹션이 중간중간 삽입되어 있다. 스메타나의 인생을 따라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시 스메타나에게 중요했을 법한 내용들을 추가해 준 점이 좋았다. 그래서 4점을 주고 싶었... 으나, 그 내용들이 설명되어 있지가 않다. 반출 가능한 책자에서는 각각의 사진이나 전시품이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 주고, 스메타나의 일기나 편지에 대해서는 내용을 번역해 주지만 그 이상의 통찰을 제공해 주지를 않는다. 때문에 4점을 주려다가, 별을 한 개 깎았다. 원래 박물관이라면 자고로 이 전시품/사진이나 그림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해설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10. 총평:

솔직히 카를교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입장료가 4천 원인데, 전시가 좀 별로여도 4천 원이면 충분히 갈 만하지 않은가? '나 클래식 좋아하는데 프라하 가서 스메타나 박물관 안 갔어'라는 말은 일부러 안 가는 게 아니면 나올 수가 없는 말이다. 그냥 가다 보면 자꾸 발에 걸릴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데 안 간다고? 스메타나한테 악감정 있습니까?

최대 장점: 저렴한 입장료, 놀라운... 아니 충격적일 정도의 접근성, 나름대로 괜찮은 한국어 지원

최대 단점: 불친절한 설명, 다소 빈약한 전시품

추천 여부: O


하지만 내 음악 입맛은 언제나 스메타나보다는 그의 라이벌에게 기울어 있었다. 부활절 기념 작곡가 투어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시작도 안 했다.


직접 촬영한 스메타나 박물관 영상이다. 이런 느낌이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을 뿐이고, 문제가 될 시 삭제 예정이다.

4화 예고: 안토닌 드보르작. 1841년 태어나 1901년 사망한 체코의 작곡가. 대표작은 교향곡 9번 (신세계 교향곡), 슬라브 무곡, 첼로 협주곡 B단조 등이 있다. 2024년 4월, 그의 교향곡 9곡 전곡을 돌려 들으며 연신 사진을 찍어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