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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Sep 04. 2024

밤하늘에 그려진 무늬가 땅에 내려와 글이 되다

글월 문(文)


문화(文化).”

이 단어는 순전히 글자만 놓고 풀어보면

“글자를 통해 변화한다”는 뜻이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글을 바탕으로 한 사상과 생활방식을 체화한다”는 뜻일 것이다.


문명(文明).”

“인류가 이룬 발전”을 뜻하는 단어지만,

순전히 글자만 놓고 풀어보면 “글로 세상을 밝힌다”는 뜻일 것이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식물 등의 자연적 존재와는 다르게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들인

“문화”와 “문명”에 “文”이라는 글자가 공통으로 들어있다는 것은

인류의 발전에서

“글”이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은 인류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줬고

그렇게 가다듬은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동시에

후대에 길이 남길 수 있게 해 줬다.


그런데 “文”이 처음부터 “글”을 뜻했던 글자였던 건 아니다.

“글”이나 “문장”을 가리키는 글자인

“文”의 원래 뜻은 “무늬”였다.

그런데 문명을 이루면서 “만물의 영장”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먼 옛날의 사람들이 주목한 “무늬”는 무엇이었을까?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이 그려낸 “무늬”였을 것이다.

별들이 이동함에 따라 밤마다 달라지는 무늬,

계절마다 달라지는 무늬 말이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뜻하는 단어인

천문(天文)”에 “文”이 들어있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날마다 달라지지만

해가 바뀌고 나면 다시 1년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별들의 무늬에서

무엇인가 규칙성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 규칙성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그 무늬를 기록하다 보니 그런 무늬를 바탕으로

“글”이라는 것을 만들면 소통하는 데 무척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글”이라는 걸 만든 것은 아닐까?


참고로, 전설에 따르면

한자(漢字)를 창제한 인물은 창힐(蒼頡)로,

새(鳥)의 발자국 모양을 본떠 한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하늘의 무늬가 글자의 원형이었을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이 전설에 따르면 “땅바닥에 새겨진 무늬”가 글자의 원형인 셈이다.

글자 창제와 관련한 두 가지 이야기 중에서 신빙성이 큰 쪽은

아무래도 창힐의 전설 쪽일 테지만,

그래도 나는 내 짐작을 끝까지 믿고 주장해보려 한다.


아무튼 “文”이 “글”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원래 “文”의 뜻이던 “무늬”에 해당하는 글자가 따로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가는 실 사()”를 “文”과 결합시켜

무늬 문()”이라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고는

문양(紋樣),” “사람마다 다른 손가락의 무늬”인 지문(指紋),”

“수면에 만들어진 무늬”를 가리키는 파문(波紋)” 같은 단어에 사용했을 것이다.


글을 읽을 때,

요즘에는 소리 내지 않고 머릿속으로 글을 읽는 묵독(默讀)”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서당에서 훈장선생님에게 글을 배우는 게 보편적인 교육 방식이던 옛날에는

글을 소리 내 읽는 낭독(朗讀)”을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옛날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글 읽는 소리”가

“선비의 글공부”를 대표하는 표현이 됐을 것이다.


한편, 이렇게 노래를 부르듯 글을 읽는 선비들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벌레가 있다.

원래는 여름에만 나타나 우리를 괴롭혔지만

요즘에는 사시사철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모기”라는 벌레가

우리 주위를 맴돌며 글을 읽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에 주목한 옛사람들은

벌레 충()”과 “文”을 합쳐 모기 문()”이라는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 글자만 놓고 보면,

우리의 피를 빨아먹겠다는 일념으로

우리가 편한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드는 모기는

자기들 딴에는 열심히 글월을 읊고 있는 셈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길가에 세워진 전신주에 “文”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걸 자주 봤다.

“저게 뭘까?”하는 궁금증에 검색해 보니,

글도 잘 모르고 길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길가에 붙은 “文”이라는 글자를 따라가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도록 표시를 해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학교(學校)”라는 글자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글자이므로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4획으로 이뤄진 “文”을 쓰는 배려를 한 것 같다.

글자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 눈에는

“文”이 학교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무늬” 역할을 하는 것이니

“文”이라는 글자의 기원으로 돌아간 셈이라고 해야 할까?


글자 “文”을 보고 생각해 본다.

밤하늘에 새겨져 날마다 변하는 무늬들이

땅 위로 내려와서는 인류의 문명을 가능케 해 준 “글”이 됐을 거라는 생각을.

그렇게 따지면

결국 우리가 이룬 문화와 문명의 출발점은 하늘이라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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