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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은 Nov 20. 2024

두려움은 누구의 얼굴인가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대해


  2년 만에 다시 교동도를 찾았다. 창후리 여객터미널 둘레로 전에 없던 어물전 몇이 들어섰다. 배 뜨는 시간이 남아 있어 변변찮은 생선들을 구경하며 어슬렁거렸다. 바닷물이 돈다던가, 그래서 배를 띄우지 못한다고 했다. 정오가 가까워지며 사람들이 모였다. 초상이 났다고 한다. 검은 상복을 입은 이들과 상조회사 버스가 선착장 가까이 서있다. 매장을 하러 가는 것 같다고 나이 든 주민이 말한다. 거기다 경찰관을 태운 버스까지 와 있다. 무슨 일인가 물어보니 나들길을 읽어주기 위해 온 교동사랑회원이 본인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란다. 안 그래도 최근 북한 언론을 통해 나오는 말들이 험악한지라 술렁이는 분위기다. 

  반시간 앞당겨 배는 교동도에 가려는 자동차와 사람을 들였다. 경찰들은 버스에 탄 채로 배에 올랐다. 선실에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한 회원이 아까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며칠 전 강화에서 있었던, 자살하려고 바다에 뛰어든 민간인을 구하려다 함께 실종된 경찰관을 수색하기 위해 출동하는 길이라고 한다. 여러 날이 지났지만 진전이 없는가 보다. 산 이와 죽은 이의 경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지만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다. 삶의 다른 얼굴이 곧 죽음 아닐까. 삶과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살았던 누군가를 흙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들, 이른 봄을 즐기며 들길 걸어보겠다고 모인 일행들, 교동을 뭐 볼 게 있어 왔냐며 거푸 묻던 주민과 조금 남다르게 보이는 젊은 남녀 하나 둘,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각자의 틀 안에서 서로를 곁눈질하며 한 공간에 있다.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뱃전에 사람들의 손끝을 향해 살찐 갈매기들이 번갈아 달려들었다가 멀어진다.

  -아직도 공사 중이네요. 

  지난번 왔을 때 강화 삼산면에서 교동도까지 잇는 연륙교 공사가 여전히 제자리인 듯 보여 한마디 했다. 자고 나면 쑥쑥 건물이 올라가는 도시와 대조적이다. 강화도 일대 해안은 조수 간만의 차가 커 공사에 어려움이 많단다. 상판을 올려놓기 위한 기둥이 빠르고 센 물살에 번번이 쓸려나가곤 한다는 것이다. 

  교동 월선포 선착장에 대형버스 두 대가 들어서니 옹색하기 그지없다. 서둘러 버스가 빠져나가니 다시 시무룩한 언저리가 되었다. 막연한 가운데 무언가 조심스럽다는 긴장에서 쉽게 마음이 빠져나오지 않는다. 민북지역인 교동도는 출입신고서를 작성 검문사병에게 제출해야 승선할 수 있다. 강화나들길 10코스며 교동 2코스인 ‘머르메 가는 길’은 교동 1코스보다 더 북한 쪽으로 접근하는 까닭에 개장허가가 더디었다고 한다. ‘머르메’는 큰 마을이라 두산동(頭山洞)이던 것을 우리말로 머리뫼로 부르다 와전되어 현재까지 불리고 있는 마을이름이다. 머르메 가는 길은 6.25 때 활주로로 사용했던 교동도 유일의 고속도로라 일컫는 곧은길에서부터 출발한다. 

  배 시간을 기점으로 한 일정이라 코스를 단축하기로 한다. 대룡시장 앞에서 10인 이상이면 택시처럼 부를 수 있는 교동마을버스를 이용해 난정저수지 입구에서 하차했다. 교동도는 섬이지만 커다란 저수지가 둘이나 있다. 또한 강화군 내에서 간척지크기와 호당 경지면적이 가장 넓어 쌀을 주요 농산물로 자랑하고 있다. 난정저수지 둑길에 올라서니 빈 벌판을 내달리는 바람의 기세가 여간 아니다. 맞바람으로 대하니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넓은 저수지 물결도 거세게 파도치듯 일렁였다. 저수지 둑길 아래로 내려서니 세상이 일순 조용하다. 한때 높아진 기온으로 정비하느라 파헤쳐진 길이 질척거렸다. 원형 그대로여서 언론과 관련 학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수정산 조선시대 한증막을 잠시 둘러보고, 숲을 휘저으며 달리는 바람의 잔소리를 들으며 그리 높지 않은 수정산을 넘었다. 난정리 마을의 농로와 재작년 민항기가 넘어와 시끄러웠던 철책선 가까운 해안가는 아직 이른 봄 탓인지 휑한 느낌이다. 이어진 해병대 초소 아래를 지나 죽산포까지 걸었다. 지금은 인적마저 드물지만 한때 정박한 배의 돛대가 많아 대나무 숲처럼 보인다고 해서 죽산포로 불리었을 정도로 번화했던 곳이다. 저만치 머르메 마을과 아름다운 운치가 남다르다는 억새 우거진 비포장 구간을 남기고 이쯤에서 일정을 접기로 했다. 마을회관 앞으로 마을버스를 불러 월선포 선착장까지 이동했다. 

  어디서부터였을까, 안개처럼 일어난 불안감이 생각의 맨 앞줄에 서서 다른 모든 감각을 밍밍하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러고 보니 자주 이런 상태를 경험한다. 사람을 대하며, 일을 하며, 다가올 날들을 그려보며……. 기대감보다는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붙잡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늘 한 발을 빼고 있는 상태가 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니고,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몰라 어중간을 맴도는 회색의 공간. 그런 점이 외부에서는 신중하면서 치우치지 않는 균형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배에서 내리기 위해 사람들이 일어서는 기척도 모를 정도로 깜박 졸았다.  

  -피곤해 보이네요.

  피곤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과 싸우느라 늘 피곤하다. 도대체 무엇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장애, 정신건강 상 불안장애가 있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진단해보기도 한다. 모든 일이 조심스러운 까닭에 결과가 나쁘지 않아도 즐거움이 크지 못하고 다만 잠시의 안도감을 맛볼 뿐이다. 

  ‘두려움을 직시하라’ 화살처럼 박히던 한 마디를 보이는 곳에 써 놓는다.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정의 처음을 건드리게 된다. 지나온 날들에서 의도와 다르게, 상관없이, 그렇지만 나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며 인정하게 될 것이다. 혹시 불안장애일지 모른다는 진단마저 두려움의 다른 얼굴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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