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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은 Dec 05. 2024

거짓말, Lie

짧은 소설

  


  멀지 않은 버스정류장까지 걷는다. 정류장마다 타려는 버스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몇 번째 정류장을 지나는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어쩌다 통신장애로 안내가 멈추면 손 안 스마트폰이 있다. 그냥 무심한 듯 기다려볼 생각이었다가도 어느새 참지 못하고, 뭔가 할 일을 안 하는 것 같은 조바심으로 확인하게 된다. 가끔은 사소한 운세를 점쳐보는 기분이었던 버스정류장에서의 소박한 기다림 같은 건 이제 없다. 

  버스가 도착했다. 그녀가 제일 먼저 버스에 올랐다. 그녀 뒤로 서너 명 더 오르는 것 같았다. 서 있는 사람들을 건드리며 안쪽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지나갔다. 잠시 후 출발해야 할 버스가 그대로 멈춰 있다. 

  “거 학생들, 이리 와 봐요!”

  운전석을 보았다. 체구가 건장한 기사가 얼굴 앞 룸미러를 보며 소리치고 있다. 

   “……”

   “방금 탄 학생 두 명, 앞으로 나와 봐요.” 

 아저씨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 대답이 없고 선뜻 앞으로 나서는 기척도 없다. 마음먹은 듯 시동을 끄고 사이드브레이크까지 올리며 기사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그 기세에 저문 하루를 나른하게 달려온 버스 안이 순간 뻣뻣하게 긴장한다.  

  동시에 그녀도 슬며시 밀고 들어오는 조금 전 기억을 읽는다. 버스에 오를 때 버릇처럼 먼저 오르도록 뒤로 물러서는 그녀 옆에서 오히려 한 발 더 물러서던 남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교통카드를 찍었고 뒤로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한 명이 아니었다. 어린 학생들이다. 기사아저씨가 한 번 눈감아주면 좋을 텐데. 아니지, 작은 잘못이 아무 제제도 없이 넘어가 버릇하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눈덩이 커지듯 할 수 있다. 애초 정확하게 잘잘못을 바로잡고 갈 필요가 있겠다. 지내다 보면 사정상 차비가 없을 수도 있는데 사전에 용기 있게 말할 수는 없었을까?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며 생각이 툭 툭 끊어짐을 그녀는 느낀다.

  버스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빈 의자가 없고 서로 어깨 스칠 정도로 사람들이 서 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하면서도 일단 기다리자는 눈치다. 눈길이 뒤로 몰리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막대 사탕을 입에 문 학생과 또 다른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학생들 차비, 얼마 냈어?”

  “천 원짜리랑 오백 원, 백 원짜리 동전요.”

  그녀는 버스 뒷문을 마주 본 방향에서 앞쪽 가까운 자리에 서 있었다. 억지로 몸을 빼지 않아도 말하고 있는 운전기사와 학생 옆얼굴을 볼 수 있다. 

  “여길 봐, 천 원짜리가 어디 있어, 동전만 있는데.”

  “아, 몰라요. 분명히 냈어요, 아저씨가 밑으로 내렸겠죠.”

  어느 쪽으로 밀리지 않고 양쪽 주장이 부딪히며 튕겨나가는 공처럼 탱탱하게 오간다. 마치 준비된 연극을 지켜보듯 버스 안 사람들은 너나없이 조용하다. 어쩌면 어디쯤에서 손을 들거나 저기요하며 끼어들어야 할지 계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CCTV에 다 찍혔어, 왜 거짓말을 해? 사실대로 말하면 봐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누가 거짓말을 해요?, CCTV 확인해 봐요.”

  점입가경에다가 오리무중이다. 처음의 기세로 봐서는, 한쪽이 용서를 빌고 다른 쪽에서 받아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내려 시야에서 멀어지는 걸 상상했었다. 

  “그냥 내려, 차비 안 받을 테니까, 자 동전 돌려줄 테니.”

  “왜 그것만 줘요. 우리가 낸 거 다 줘야지요.” 

  계속되는 실랑이를 지켜보면서 그녀는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대사탕을 입에 문 학생이 운전기사를 상대한다. 친구로 보이는 한 명은 뒤에 서 있기만 했다. 너무도 당당하게 한마디도 밀리지 않는 학생을 보며 그녀가 심정적으로 운전기사 편이었던 데에 의아심이 드는 것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현장에 있었다. 버스는 현금으로 차비를 받을 수 있고 기계 조작으로 거스름돈을 주기도 한다. 손잡이를 움직여 보이는 현금을 보이지 않는 아래 칸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어떤 의도가 없다면 누가 알까 소리 나지 않도록 처리할 일이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니다 보면 이런 시비를 가끔 본다. 서로 어느 쪽을 수긍했는지 그 속내는 모르지만 대부분 짧게 끝난다. 

  “어린 학생들이 벌써부터 왜 그래? 그렇게 살지 마.”

  “우리가 뭐요? 아저씨나 그렇게 살지 마요.” 

  그녀는 몇 걸음 뒤에 서서 일련의 일들을 유추하며 막대사탕을 물고 있는 학생이 불량해 보인다고 생각한다. 아니, 학생의 저 막대사탕에 혐의가 간다. 저 학생에게 막대사탕은 단순히 달콤한 맛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막대사탕에 기대어 알 수 없는 기운이나 분별하기 어려운 용기를 얻는 듯하다. 저 막대사탕을 뺏어버리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무룩해지거나 아니면 전류가 차단된 자동인형처럼 바로 움직임이 멈추지 않을까. 아, 경찰이 수사하고 마지막에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되기 전에 저 막대사탕을 먼저 조사하고 싶다. 

  실랑이가 쉽게 끝날 거 같지 않자 앞자리에 앉은 중년여인이, 서로 자기 말이 옳다니 진실은 종점까지 가서 CCTV로 확인하고 빨리 출발하라고 말한다. 당황한 것은 이제 운전기사다. 표정과 음성이 답답하고 어이없다고 말한다. 처음 의기양양하던 호기로움도 대상을 잃고 일그러진다. 이쯤에서 어떻게 접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때 또 다른 사람, 한 중년남자가 지갑을 꺼내 들며 기사양반, 학생들 차비 대신 낼 테니 그만 가자고 말한다. 운전기사가 시동을 걸며 됐다고 하는데 그 학생도 중년남자 손을 가로막으며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다른 학생은 가만히 서 있다.  

  버스는 출발했다. 그녀의 머릿속이 바쁘다. 직접적으로 이 일의 원인을 제공한 처음 행위는 누구에게서 왔는가. 누군가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니, 각자 자신이 보거나 생각한 것을 정말 사실이라 굳게 믿는 것일까. 그녀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녀가 본 것은 전부 사실인가.  

  그녀가 혼란스러운 것은 당당함 때문이다. 당당함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당당함이 처음부터 있었고 마지막까지 일관되었으면 그건 참 당당함이다. 그렇지 않고 중간이나 나중에 끼어든 당당함이라면 그것은 앞선 어떤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주장으로서의 거짓 당당함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 위장된 당당함은 때로 자신과 남을 속인다, 거짓말처럼. 누군가 임계를 넘었다. 이 한계를 넘어버리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버스 안은 고요한 침묵에 잠긴 것처럼 보인다. 스마트폰을 만지며, 창밖을 보며, 일정하게 흔들리며, 평상시로 가장(假裝)하고 있다. 

  그녀는 기어이 이 일의 끝(진실이 아니다)을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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