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요즘 궁금한 나는 누구인가 #8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듯, 좋은 일이 생긴 뒤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따라붙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던 날 저녁, 호전되는 듯했던 김여사는 갑자기 장출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말사이에 간신히 출혈은 잡았으나 어제부터 앞을 보지 못하십니다. 벌써 귀가 말리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당신이 나의 어머니라서 너무 감사하다고, 못난 자식들 예뻐해 주셔서 고맙다고 얘기하려는데, 큰 누나도 저도 그 짧은 문장을 끝맺기가 쉽지 않습니다. 눈물을 떨구었다간 김여사한테 또 한소리 들을 텐데,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김여사의 남편은 병원에 7년쯤 있다가 죽었습니다. 그 동안 남편은 앞으로 김여사 대신 ‘친절한 간병인’과 살겠다고 난리를 치거나, 하루 건너 환자들과 싸워서 간호사들 피곤하게 하거나, 천하에 못 된 자식들이 재산을 노리고 입원을 시켰다고 소문을 내는 등, 정말 끝도 없는 사고를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병원에 찾아가는 사람이 정말 한 명도 없으니 그런 오해를 받을만 하기도 했죠. 김여사가 입원했을 때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면회를 가서, 간호사실의 모든 간호사와 인사를 튼 자식들이었지만, 그때는 누구도 아버지를 보러 가지 않았습니다.
김여사의 남편은 세상 좋은 사주를 타고났다는 게 사실인지, 죽던 날부터 장례식장에 상주가 하나 둘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거짓말처럼 전체층이 싹 비어서, 장례식장 전체를 통으로 세낸 것처럼 사용했습니다. 남편의 문상객은 정말 단 한 사람도 없었지만, 화환이 복도까지 늘어선 가운데 김여사의 친구분들, 계원들, 교회 친구들이기도 하면서 보살이시기도 친구분들, 아들 친구, 딸 친구, 사위 거래처. 동창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재산을 정리한 김여사는 드디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쌍문동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호동 친목계와 쌍문동 친목계 두 조직을 모두 아우르는 총무가 되셨지요. 그리고는 초파일에는 절에 가시고,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 나가시고, 새해에는 점집에 가셨습니다. 아들이 매번 테크트리는 하나로 쭉 타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김여사 님은 설교 시간에는 주무시고 설교 끝나면 식사하러 가시는, 뭐랄까 생활 밀착형 정통 종교 생활을 하셨습니다.
자식들 세 마리가 한 마리당 30만 원씩 보내는 생활비에, 학교에서 초등학생들 배식해서 버시는 용돈, 액수는 적지만 매달 나오는 연금과 작은 창고에서 나오는 월세까지. 넉넉하지는 않지만 혼자 사시기에 부족한 생활비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하루 한 번씩 꼬박꼬박 안부 전화를 받는 것이, 김여사 나이대의 여사님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인생 품질 보증 마크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김여사는 탑 랭커셨고, 늘 으쓱해하셨지요.
그러나, 김여사의 남편이 만들어낸 오랜 그늘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부분 결혼 상대로 자기보다 형편이 어려운 상대를 찾는다고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은 그 이유를 뭐라 뭐라 어렵게 설명했지만, 김여사는 그게 ‘버림받을까 봐 무서워서’라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김여사가 얼굴만 곱상했던 술주정뱅이를 남편으로 고른 것도, 자식들이 배우자를 고른 것도. 모두 자기보다 잘난 상대를 만나면, 업신여기고 무시할까 봐, 그게 무서워서라는 걸 김여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40대가 되고 나서야, 자기가 행복하게 살려면 마음이 여유롭고 어릴 때 가정교육을 잘 받은 사람을 배우자로 골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어야 모난 마음을 둥글려 주고, 마음이 둥글게 깎인 다음에야 자신도 남을 안아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김여사가 비로써 행복해질 것이라 믿던 그때에는.
자식들이 김여사 인생에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큰 딸의 남편감은 눈이 어두웠습니다.
둘째 딸의 남편감은 부모님을 일찍 여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데려 온 며느리감에게는
아이가 둘 있었습니다.
김여사는 섶을 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라 말렸지만, 아들은 애들이 자기를 따른다며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그저 남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겠다는.
세상물정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자식들의
세상물정 모르는 선택이었습니다.
김여사의 고생길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