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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구폐요 | 桀狗吠堯

아빠가 들려주는 사자성어 이야기

by 붕어만세

걸(桀) 왕의 개(狗)가 요(堯)왕을 보고 짖다(吠). 하나라의 걸왕은 애첩 말희를 끼고 재물과 여인을 탐하며 나랏일은 돌아보지 않고 오직 술과 잔치로 세월을 보내던 인물입니다. 하나라가 멸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초래한 폭군이죠. 반면 요왕은 순왕과 함께 요순시대라고 일컫는 태평성대를 이뤄낸 성군입니다.


하지만 걸왕이 기르는 개들은 요순 임금같은 성군을 알아보지 못한 채, 오직 걸왕의 명령에만 따릅니다. 개들이 백성을 해치는 자를 따르며 스스로 옳고 그름을 헤아리지 않는 이유는 오직 걸왕이 주는 고깃덩이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 요원이라고 막 물고 그라믄 안돼..


에헴, 잘난 척을 위한 한 걸음 더..

초한전쟁이 한참이던 때, 한나라의 대장군 한신은 제나라를 치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한나라의 책사인 역이기가 제나라를 설득해 먼저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싸울 필요가 없으니 한신에게도 잘 된 일입니다만, 괴철이 끼어들어 한신에게 속삭였습니다. “역이기가 말로써 항복을 받아 냈으니, 당신보다도 공이 큽니다. 차라리 제나라를 쳐 당신의 공으로 만드십시오.” 그 말에 한신은 군대를 일으켰고, 방심하고 있던 제나라는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역이기에게 속았다고 생각한 제나라 왕은 끔찍한 방법으로 역이기를 죽였지요.


한신이 제나라까지 쳐서 큰 세력을 이루자, 괴철은 또다시 계책을 올렸습니다.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은 쉽게 결판을 낼 수 없으니, 차라리 천하를 셋으로 나눠 안정시키라는 계책이었습니다. 즉, 주군 유방을 배신하고 한신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는 이야기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한신은 괴철의 의견을 물리고 유방을 도와 항우를 쳤습니다.


훗날, 한신이 유방에게 토사구팽 당한 뒤, 괴철도 유방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그러자 괴철은 자신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척처럼 흉악한 자가 기르는 개도 오직 자신의 주인만을 따릅니다. 그때 저는 오직 한신만을 알고 있었을 뿐, 대왕같은 분은 알지 못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저와같은 처지에 있던 자들 모두를 죽이시겠습니까?”


괘씸하긴 하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유방은 씁쓸히 웃으며 괴철을 풀어 주었습니다.



덧 붙이는 이야기

도척은 누구?

도척은 천수를 누리며 잘 살다 죽은 악명높은 도적으로 세상의 부조리함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도척의 개라는 의미의 도척지견과 걸왕의 개가 요왕에게 짖는다는 의미의 걸구폐요는 완전히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걸왕과 요왕

걸왕과 요왕은 각각 폭군과 성군을 대표하는 인물일 뿐, 실제로는 다른 시대를 살았습니다. 당연히 서로 만나본 적도 없습니다.


괴철의 계책은 언뜻 예리해 보입니다만, 이미 항복 협상이 끝난 제나라를 치라는 의견이나, 한신이 왕이 되어 천하를 나누라는 의견은 모두 한신에게 기대 자신의 영달을 이루려는 도박에 가깝습니다. 량심이가 없는자가 머리만 좋을 때 어떤 재앙을 일으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역이기의 죽음

한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항복 협상을 잘 끝낸 제나라 왕은 역이기를 불러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술자리가 한참일 무렵, 갑작스러운 한신의 침공 소식이 날아 들었습니다. 크게 놀란 제나라 왕은 역이기에게 어찌된 일인지 따져 물었고, 한신의 속셈을 짐작한 역이기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유방이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함께했던 창업 공신이 솥에 삶기는 끔찍한 죽음을 맞은 것이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유방은 한신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훗날 천하를 얻은 뒤에는 한신을 쳤습니다.




아..


꽤 무거워 보이는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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