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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만세 Jul 11. 2024

요람기

어.. 이..인큐베이팅?

엑박도 스위치도 없었다. 뚱카롱이나 마끼아또도 없었다.  그래도 샴냥은 개발냥들과 함께 마냥 즐겁기만 했다. 아침이면 온갖 전단지가 지천으로 날리고, 저녁이면 삼겹살 냄새가 골목마다 자욱한, 지하철 가깝고 바람 시원한 서울 구석이었다.


별다방 기슭에 얼룩덜룩 그늘이 드리우면, 창가 쪽에 몰려 앉아 볕을 쬐던 개발냥들은, 카페로 몰려나가 커휘를 퍼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칼로리 높은 것만 모아놓고 한참 수다를 떠는 일을 "개발 회의"라고 했다. 당이 뚝뚝 떨어진 개발냥들에게 이 개발 회의만큼 신명 나는 일도 없었다.


개발 회의는 늘 칼로리가 부족했다.

회사 옆 골목에는 왠만한 중국의 명승지가 다 모여 있었다. 자금성, 만리장성, 양자강은 기본이고, 왠지 저기서 밥 먹어도 되나 싶은 천안문도 있었다. 자기는 "진짜루"도 보았다는 동무의 자랑에 우리는 놀라움과 부러움을 섞어 구글을 뒤지기도 했었다.


퇴근 시간 지하철 근처에는, 늘 약속이나 한 듯 도나 기가 모였다. 사장님과 대판 싸우고 (싸운다고 쓰고 깨졌다..라고 읽는다.) 입을 앙다문 채 날숨만 쉬는 날에도, 도나 기는 공손히 다가와 인상이 참 좋다 했다. 조상신이 잘 보아주신다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도나 기 대신 불신지옥이 계신 날도 있었다. 서체도 배색도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옆에 있던 동무에게 단 하나만 고친다면, 서체와 배색 중 어떤 것을 고치겠냐고 물었더니, 띄어쓰기라고 했다. 그날, 동무와 나는 각자의 직업병으로 신도림까지 고통받아야 했다.


높새가 불기 시작하면, 사무실 동무들은 기를 쓰고 고냥이 자랑질을 했다. 이 업계는 유독 고냥이 자랑질이 심했다. 자랑질뿐만이 아니라, 고냥이 패악질도 무척 좋아했고, 누구네 고냥이가 더 몹쓸 패악질을 하는지 자랑처럼 여기곤 했다.


한말로 고냥이라지만, 고냥이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고등어, 삼색이, 치즈냥, 떼껄룩, 그리고 개냥이...개냥이에는 상전과 애교떨이가 있었다. 상전은 그래도 집사를 무던히 대하는 놈이고, 애교떨이는 이참에 종 검사를 다시 해봐야 하는 놈이다. 고냥이의 재미는 역시 긁긁에 있었다. 츄르로 꼬드겨 배를 긁는 것을 "긁긁"이라고 한다. 도톰한 츄르를 높직이 세워 가지고 긁긁에 나설 때에는,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냥이가 워낙 빨라서 츄르만 떼이면 그냥 그걸로 그뿐이었다. 츄르를 떼이고 발버둥을 치며 우는 집사들도 많았다.


해가 서쪽으로 한 발쯤만 기울면 개발냥들은 창가로 모여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했다. 개발냥들은 테슬이를 좋아했고, 테슬이 주식도 좋아했다. 샴냥은 테슬이가 없었다. 테슬이 악셀 좀 밟아 보는 게 샴냥은 늘 소원이었다. 테슬이는 어질고 순해서 초보에게도 순순히 따르고 말도 잘 듣는다 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핸들 위에 올려놓으면, 테슬이는 제 기분 내키는 대로 밟는다 했다.


가끔 날이 좋은 날이면, 옆 삘띵에서 동무들이 모였다. 초코파이도 가져오고, 별다방 콩다방 커휘를 가지고도 왔다. 팀장별 MBTI 얘기며, 누구는 투자를 받아 팔자를 뒤집었고, 누구는 아직도 직장 생활이 고되다는 그런 이야기들...샴냥은 앉은 건지 누운 건지 모를 자세로, 당근 같은 거 하나 주워서 팔자를 펴 보겠다는 다짐을 하다가 잠이 들곤 했다.


하루는 치킨 한 마리를 잡은 적이 있었다. 굴러다니던 쿠폰을 모두 모아 덮친 것이었다. 개발냥들은 이 치킨을 어떻게 할까 한동안 티격태격하다 결국 양념반 후라이드반 하기로 했다. 파지를 깔아 책상을 덮고 그 위에 치킨을 얹었다. 이게 진짜 닭인가 싶은 작은 알몸에서는 자글자글 기름이 흘렀다. 구수한 냄새를 킁킁대며 무 봉다리를 뜯을 무렵, 춘돌이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게 뭐냐?"

"치킨이다."

"웬 거냐?"

"모은 거다."

"누가?"

"우리가."


춘돌이는 개발냥들이 터주는 자리에 비집고 들었다.


"요새 치킨 먹으면 어찌 되는지 알기나 하나?"

"몰라, 어떻게 되는데?"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만 나오게 돼."

"왜?"

"몰라, 그건"

"봤나?"

"어른들이 그러더라."

"참말?"

"그래!"


개발냥들이 말이 없자, 춘돌이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치킨 다리를 들더니, 제로콜라만 마시는 동무의 입에다 불쑥 디밀었다.


"자, 먹어 봐라."


제로콜라 동무가 움찔 물러나서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자


"그러면, 너 한번 먹어봐라."


하고 그다음 요가하는 동무에게 디밀었다. 요가 동무 역시 고개를 돌리고 물러났다.


그제서야 춘돌이는


"그러면 내가 한번 먹어 볼까?"


하고는 살점을 한 입 찢어 질겅질겅 씹다가 꿀꺽 삼켜 버렸다.


"히야아.."


춘돌이 눈에서 흰자위가 한편으로 몰리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하니 바라보던 개발냥들 중에는, 벌써 양손에 입가심용 콜라를 움켜쥐는 동무도 있었다. 춘돌이는 엉거주춤하고 흰자위를 두어 번 굴리다가 갑자기 배가 뿔룩 내밀며 껑충 솟구쳐 뛰었다. 개발냥들이 미적미적 일어날 작정을 하자, 춘돌이는 더 뿔룩하게 배를 내밀었다. 개발냥들은 그만 젓가락을 놓고 콜라로 입가심을 했다. 미처 아쉬워 우는 개발냥도 한둘 있었다.


이런 뒤로 개발냥들은 춘돌이를 슬슬 피했으나, 춘돌이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커피콩이 누렁누렁 해지고, 눈꺼풀이 묵직하니 까라지기 시작하면, 개발냥들은 법카 서리를 잘해 먹었다. 커휘 쿠폰 뒤에 법카를 슬쩍 꺾어 올려놓으면, 법카는 삐빅 거리며 영수증을 퉤 뱉었다. 참 구수하고 시큼했다. 한동안 이렇게 법카 서리를 해 놓고 나면, 입 가장자리는 꼭 굴뚝족제비같이 까맣게 되어 서로 바라보면서 웃어댔다. 점심 먹은 뒤부터 회사 근처 커휘 가게에서는 커휘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지 않은 날이 별로 없었다. 혹 사장님이 지나가더라도


"이놈들, 한 카드로만 너무 마시진 마라!"


할 뿐, 별로 나무라지는 않았다. 그것은 사장님 자신도 소싯적에는 법카로 커휘 좀 마셔봤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가 보고 싶으면서도 가 보지 못하는 산과 강과 마을, 어쩌면 무지개가 떨어진다는 당근, 이빨 없는 호랑이도 칵퉤칵퉤 침 좀 뱉는다는 산속, 짜장면이 맛있다는 진짜루, 그리고 비가 떨어지는 그 화려한 조명 아래 어디쯤...소년은 멀리멀리 떠가는 꿈에다, 수많은 소망을 띄워 보내면서, 어느새 인생의 희비애환(喜悲哀歡)과 이비(理非)를 아는 나이를 먹어 버렸다.






FIN.


요람기 (오영수, 1967. 현대문학)

학교 다닐 때 몇 번을 연이어 읽었는데, 요즘 교과서에는 안 실린다고 합니다. 시대에 맞춰 교과서도 계속 바뀌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 아쉽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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