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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Jul 06. 2024

무대 연출가 채송화

하얀 솜털 휘날리며 춤을 추어요/ 파란 무대 하양, 빨강, 노랑 무희들/ 꽃타령 노랫가락, 당실당실 나비춤/ 설뚱한 손짓몸짓 어럴럴 상사디야/ 안녕? 난 고향인 브라질을 떠나 이 땅에 붙박이처럼 살고 있는 채송화야! 내 노래와 춤이 말해주듯 흥이 많아서 일더위에도 여름을 정렬적으로 보내는 꽃이야. 원숭이가 비가 오면 나무를 흔들고 뛰어다니며 바닥을 두드리며 비춤을 추듯 난 약한 실바람만 불어도 잔치 마당을 열고 나풀거리는 꽃잎 위로 향기를 흘리지. 바람 따라 활개 치는 결을 담아야 하는데, 내 안엔 그 혼이 있어. 탱글탱글하고 동그란 잎들이 부스럭부스럭 박자를 넣으면 나비와 벌은 나풀나풀, 윙윙 추임새를 넣고 흥을 돋워. 화려한 꽃춤은 뿌리를 내린 땅과 맑은 하늘을 감사하며 오늘을 축하하는 향기 품은 몸짓이야. 내 곁에 모든 눈길이 관객이고 잔치를 빚어내는 주인공이 되지.

채송화

내 잔치를 굉장히 부러워하는 친구가 있어. 곁에서 자라는 봉숭아인데, 너희도 노래를 들으면 알 거야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그 봉숭아가 말했어 "넌 키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꽃술이 터져라 나비와 벌을 부르는 것 같았는데, 금방 시들더라. 그게 안 돼 보이긴 했는데 느낌이 달랐어. 나중에 안건대, 끼 많고 흥이 넘쳐서 세상 켯속 모르는 무지렁이 같아도 더위가 절정에 달하면 꽃을 접고 잔치를 끝내버리지. 난 꿀도둑에게 털리기도 하는데, 넌 궂는 날에는 꽃을 내지 않는 냉정한 새침데기이기도 해" 내가 말했지. "넌 소녀의 첫사랑에만 관심 있는 소망꾼인 거 같았는데, 내게도 관심이 많았구나?" 하고 웃자 그가 정색을 하고 말했어. "난 소녀의 손톱만 물들이는 게 아니라고, 내 주변의 친구들에게 내 마음도 물들이고 싶어서 관심이 많아!" 그 말에 "뭐 그게 어려운 일이라고, 우리 함께 잔치를 열자고, 네 씨앗 꼬투리를 사방으로 퍼뜨려 네 맘을 물들이면 되잖아!" 그가 흥분해서 말했어 "그래도 돼?" 그 말에 "물론이지. 잔치마당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너와 나 그리고 함께 하는 모두가 무대의 주인공이야"

내가 꿈꾼 소망은 모두가 덩실덩실 흥겹게 어울리는 열두 마당이야! 아직은 부족하지만, 누군가 참여할 수 있고 다양한 무대로 커나갈 수 있어. 나처럼 약하고 작아도 무대를 만들었잖아? 작년 우리 마당에 하양 고깔 민들레 씨앗 하나가 날아왔는데 잔치가 마음에 들었나 봐. 무대를 즐긴 그녀 아이들도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가지 않고 곁에서 함께 하겠다는 소릴 들었지. 이젠 노란 마음들이 함께 하게 된 건데, 자유 여행가가 머물겠다니 얼마나 멋진 일이야? 그들에겐 행복과 감사가 넘쳐나니 공연 때 기가 막히게 좋은 힘을 받겠지! 이렇게 참여하는 이들이 늘어갈 때마다 잔치를 알리기 위해 꽃술이 터져라 노래 부르던 첫 마음이 떠올랐어. 그 절실함을 잊지 않은 덕분인지 목이 붓질 않아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호객꾼 되었는지도 몰라.

동요에 채송화와 함께 나온 봉선화와 자유 여행가 민들레

엄마는 자매들에게 말했었지. "잔치는 한여름에 너희를 품는 시간이야. 그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축하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남들도 보지 못하는 겨울과 봄의 꽃샘,  입샘 어둠 속에서 잔치를 준비해야 해. 너희를 만나기까지 웅크린 쉼이란다." 엄마가 말한 쉼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었다. 이 시간 동안  잔치에 대한 열망과 영감이 채워졌고  덕분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든든한 믿음이 되었지. 그리고 봄이 되자 엄마의 말을 가슴에 되뇌며 기쁨의 잔치를 열 수 있었던 야. 이제 내 꽃말처럼 '순진'한 바람은 내 아이들에게도 전해져 끝나지 않는 영원한 잔치 그리고 열두 마당 무대로 이어질 거야! 나, 채송화의 무대 연출은 현재 진행형이야!



채송화를 담은 사진이 흔한 것 같았는데, 정작 사진이 없었다. 왜일까?  마치 부모님 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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