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냄비에서 만들어지는데, 사람들은 접시를 칭찬하곤 하지. 요리사에게 접시는 얼굴이라는 말처럼 날 접시꽃으로 부르는 건 아마도 내가 아름답기 때문일 거야. 난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이야. 나와 닮은 무궁화는 가까운 친척이지. 옛 부터 큰 키에 분홍 빨강 하양 자주색 꽃을 피워서 대문 앞에서 손님을 맞곤 했어. 많은 이들이 날 지나쳐갔지. 염치없이 뻔뻔한 꽹과리 같은 얼굴, 용 꼬리에 범이 앉은 위엄 있는 얼굴, 연기 마신 고양이처럼 화난 얼굴, 들어올 땐 웃는 낯이었는데 나갈 때 선지방구리가 된 얼굴... 얼굴은 요패라서 사람 마음을 숨기기 힘든가 봐. 난 궂은 장마에도 방긋방긋 웃으며 꽃을 피워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더라. 내 얼굴이 곤 건 알아도 내 속 궂은 건 알리 없을 테니까.
사람들은 모를 거야. 내가 왜 문을 지키고 있는 건지. 아주 옛날 꽃왕국에서 정원을 만든다고 소문이 돌았어. 그 소식을 들은 풀과 나무들은 그 정원에 끼고 싶어 했어. 내가 살던 곳은 정원사가 소중하게 꽃을 돌봐주었는데, 그가 자리를 비운 틈에 모두 꽃왕국으로 떠난 거야. 난 키 작고 볼품없는 꽃이었는데, 차마 떠날 수가 없었어. 나라고 가고 싶지 않았겠어? 의리가 있어야지. 그가 왔을 때 사라진 꽃들을 보며 꽤 좌절해 있었는데, 날 보고 남은 이유를 알게 되니 너무 기뻐했지. 그리고 그는 다음에 꽃이 필 때는 큰 키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거라고 축복을 주며 말했지. 언제나 사람 곁에서 문을 지키며 웃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 거라고. 축복만 주었으면 되는데, 그 뒷말 때문에 이리 문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 거니까 좋기만 할리가 있겠어?
한동안 반복되는 문지기 삶을 저주했는데, 아주 못살겠더라고. 그 저주가 반복되는 것 같잖아. 그래서 마음을 바꿨어. 반복을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접시는 음식이 담겨야 더 가치가 있듯 피워낸 꽃 역시 담겨있어야 하는 것이 있지. 마음에 지옥 대신 천국을 담기로 한 거야. 꽃이 핀 자리가 꽃왕국의 정원이라 생각하니 비가 와도 기분이 좋아. 내 꽃말은 평안이야. 난 오고 가는 이들에게 항상 웃기만 하는 건 아냐. 평안도 참빗 장사 같이 깐깐한 사람도 내 미소를 보고 풀어지고 여유를 찾기 소망하고 있지. 난 접시꽃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해. 그대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키가 작아도 못생겼어도 대문을 지키는 나처럼 누군가를 지키는 이라면, 당신은 축복이지.
그녀 접시꽃으로 태어나다.
한 여름 서는 줄기 초록 겨드랑이
웃음샘 무르녹아 송아리 달렸다.
하얀 꽃이 피면,
그녀 피부처럼 부드레할 거야.
붉은 꽃이 피면,
그녀 입술처럼 암팡스럽겠지.
그리고 질투 많던 작은 꽃받침엔
어느덧 그녀 같은 미소가 맺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