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진심 어린 한마디
"많이 때려주세요."
그래서 난 많이 맞았습니다.
학기 초, 나의 엄마가 선생님들께 머리 숙이고
‘부족한 아들을 잘 가르쳐 달라’며 당부하셨기 때문이었죠.
30cm 대자로 손바닥 맞기는 애교에 불과했습니다.
출석부 모서리로 머리를 맞으면 꽤 아프죠.
대걸레 자루로 허벅지를 맞고 나면 피멍이 들기도 했습니다.
성에 찰 때까지 싸대기를 날리는 분노조절장애(?) 선생님도 계셨죠.
그렇지만 ‘맞을만했다.’ 여기고 씩 웃고 말았습니다.
좀 억울해도 어제 부부싸움을 하셨나 보다 하고 이해(?)하며 넘겼죠.
뭐 나만 특별히 문제아였기 때문에 맞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차별적(?)이었죠.
그땐 그랬습니다.
누구나 맞았고, 누구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엄격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동시에 부모들이 자녀를 맡기고 싶어 하던 학교였습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를 잘 지도해 달라’는 서약서 같은 걸 내고, 체벌용 회초리까지 흔쾌히 헌납(?)했습니다.
아이를 사람답게 키워주실 거라는 믿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친구들은 그렇게 맞았어도 올바르게 성실한 사회인으로 성장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의 '독사', '게슈타포', '뻰치' 선생님들은
이제 동창 모임에서 가장 빈도 높은 웃픈 추억의 안주감이 됩니다.
교실 속 그 공포(?)는 자신의 맷집을 자랑하는 무용담이 되었고,
그때 그 선생님들의 안부를 나누며 추억이라는 말로 고마움과 존경을 보냅니다.
여기서 교육적 체벌에 대해 논쟁을 꺼내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체벌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꽃으로라도 때리지 말라지 않습니까.
분명 체벌은 이미 시대착오적입니다.
그냥 그땐 그랬다는 겁니다.
‘라테의 추억’ 정도로 여겼으면 합니다.
다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선생님에 대한 신뢰와 존중까지 사라져 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은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처럼 불리곤 하더군요.
선생님에 대한 폭행, 가방 속 녹음기, 교무실 앞 민원, 고소와 고발...
신뢰 대신 감시가 앞서는 풍경은 어쩐지 마음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세태의 변화가 늘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에 대한 신뢰, 믿음으로 선생님의 권위는 지금도 당당히 존재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엄마가 "많이 때려주세요"라고 당부드린 것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잘 가르쳐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
그 가르침으로 미완의 인격이 보다 더 성장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때 그 화기애매한 폭력적 교실에서도 저항 또는 반항, 혹은 개기지(?) 못한 것은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확실한 경계가 있었고,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마음에도 ‘선생님은 우리를 인간답게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생각해 보면 이 사회 어느 곳에서 그 누가, 선생님만큼 내 자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겠습니까?
부모의 말을 흘려듣는 아이도 부모의 태도는 고스란히 따라 합니다.
"너네 선생은 말이야..."라고 아이 앞에서 말하는 순간,
나의 자녀에겐 세상에서 가르침을 받거나 따를 사람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는 세상의 모든 지혜를 잃게 되죠.
시대는 변했습니다. 체벌은 분명 사라져야 할 과거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은 여전히 우리가 지켜야 할 현재였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선생님!
이런 글을 쓰게 되는 교육 현장의 실제입니다.
화가 나는 걸 넘어 슬퍼집니다.
우리 선생님들의 분투(?)를 응원합니다.
<기사 참조>
https://www.news1.kr/society/education/5897002
https://www.munhwa.com/article/11530009?ref=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