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서로 낯설까?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진심어린 한마디

by 정상환

<장면 1>


비대면 시대 IT기기 앞에서 주춤거렸다.

커피 한잔 하려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말이다.

못하는 건 아니지만 능숙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젊은 친구는 벌써 결제를 끝내 번호표를 들었다.


커피 주문을 마치고 스마트 폰을 열었는데 와이파이가 연결이 안 된다.

벽면에 붙어있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였는데도 연결이 안 된다.


종업원에게 "비밀번호가 PW faooocck냐?" 물었다.

"저, PW는 패스워드의 약자구요…." 이크 망신….

PW가 패스워드의 약자임을 모를 리 없었지만, 익숙치 않은 환경에서 서두른 망신이다.


<장면 2>


오래전, 수업 중 영화배우 신성일의 부음을 듣고,

"여러분, 글쎄 신성일이 사망했다네요." 하며 스타 신성일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신성일을 아는 학생들은 없었다.

고작 "들어는 봤는데요…." 정도다.


그래, 젊은 척하기 위해 GOD, 핑클, 서태지와 아이들에 대해 얘기해도 학생들의 반응은 멀뚱멀뚱이다.

아이돌의 원조, 그들조차도 학생들에게 반응이 없긴 마찬가지다.

하긴 우리 학생들에게 GOD나 핑클은 이제 작은 아빠나 고모뻘이 됐다.


사실 2025년 오늘을 산다지만 금성에서 온 사람들과 화성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같은 시간이라 하여 같은 경험과 감성을 공유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뿐이다.


스트리밍 서비스, 알고리즘, 생성형AI 등등 이 시대의 도구들은

MZ세대에게는 뭐 특별한 것도 아닌 일상의 도구 일 뿐이다.

원래부터 주어진 자연스런 환경이다.


XY세대에게는 혁신이며 기술의 진보요 발전이다.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고 실감한다.


그러나 베이비붐세대에게는 새롭게 적응해야 할 복잡한 학습의 대상이다.

세상사는 것을 불편하게 한다.


누군가에겐 일상이고,

누군가에겐 혁신이고,

누군가에겐 두려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또한 본 만큼 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극히 제한 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 밖을 헤엄치기는 너무 두렵고, 어렵다.


경험은 ‘라떼 한잔’의 추억은 될 수 있어도 미래를 열어가는 비밀번호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경험이라는 것이 때론 무의미하거나 지장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경험이란 익숙함이다. 익숙한 편리함은 세상을 예측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세상은 늘 낯선 곳으로 이끈다.

낯선 곳의 어색함 그리고 두려움.


"너 몇 살이야?" "이런 꼰대!"

논쟁이나 다툼 끝에 옹색해지면 막판에 내 뱉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각자 살아온 시간에 대해 부정과 폄훼가 바닥에 깔려 있다.

서로의 삶에 대한 존중은 없다.

자신의 익숙함만을 고집할 뿐이다.


‘세대’라는 말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꼰대청년도 있고, 청년꼰대도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

보통 노인, 장년층이 아직 젊음을 나타내며 자신감을 보일 때 쓰는 말이지만

노인이든, 젊은이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경우가 많다.


디지털시대에 정보화 경륜은 청년들이 많을 수 있다.

고령화시대에 도전의식은 노인들이 높을 수 있다.

살아온 햇수가 아닌 사람에 대한 존중이 우선이다.


누구나 처음인 날을 살아간다.
누구나 처음 마주하는 문제 앞에서 서툴다.
우리는 여전히 ‘오늘’이라는 우주의 초보자다.

익숙함에 머물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불편해하지 않고,
낯선 것을 함께 배우는 우리이길 바란다.


청년도, 꼰대도,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처음인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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