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진심 어린 한 마디
"와, 정말 감동적 이야! 멋진 연설이었어! 훌륭해!"
아이스키네스의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은 박수와 감탄을 보냅니다.
그리고 잠시 후, 데모스테네스가 등장했습니다.
"… 여러분이 부모처럼, 아내처럼, 형제자매처럼, 친구처럼 아테네를 사랑한다면,
이제 단호히 결심해야 합니다. 저 마케도니아 군대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
그의 연설이 끝나자 시민들은 곧장 창과 칼을 들고 외쳤죠.
“그래, 나가서 싸우자!” "아테네를 지키자!"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인 데모스테네스의 이 연설은
마케도니아의 폭정에 맞서 아테네 시민들을 일으킨 명연설로 유명합니다.
‘지금도 어떤 연설이 좋은 연설인가?’를 너머 ‘설득의 방법’을 설명하는 예로 많이 거론됩니다.
"…이 시련의 시기에 침착하고 확고한 태도로 단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옳다고 믿기에, 옳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우리의 목표를 신께 맡길 수 있습니다…"
1939년 9월 3일 영국국왕 조지 6세가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한 연설입니다.
이 연설은 영국 국민들을 단합하게 하였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입니다.
데모스테네스와 조지 6세, 이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선천적 말 더듬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더듬이는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을까요?
물론 치열한 자기 노력이 있었죠.
데모스테네스는 한때 말을 더듬어 자신의 변호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전 재산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는 조약돌을 입에 물고 발음 연습을 하고, 달리다 숨이 차면 시를 읊으며 훈련했습니다.
법률과 수사학, 전문 지식까지 공부를 더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민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바탕에 두었습니다.
그는 절제와 겸손으로 자신을 다스렸고, 연설마다 무례함이나 과시를 담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은 늘 신중했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며 공감하려 했습니다.
조지 6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린 시절 유약하고 소심했던 그는 왕위에 오르며 연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훈련과 언어치료를 통해 국민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었죠.
그는 전쟁 중에도 폭격과 배급 제한, 난방 중단 등 국민과 함께 고통을 똑같이 겪어냈습니다.
그의 느리고 어눌한 목소리는 결국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죠.
히틀러의 화려한 선전술도 결국 그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 두 사례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설득의 힘은 ‘공감과 진정성’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화려한 말솜씨만으로는 마음을 얻을 수 없죠.
오늘날, ‘바른말’의 힘은 더욱 중요합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이끌어야 하는 자리에서 막말과 허세, 감정적 비난이 오간다면,
상대는 마음을 닫게 됩니다. 소통은 단절되고, 불신과 분열만 깊어집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며, 진심을 담아 말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데모스테네스의 겸손과 조지 6세의 진솔함은 모두 그런 '공감의 힘'을 보여줍니다.
말더듬이라는 약점이 오히려 준비와 성찰을 낳았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을 키웠던 겁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말은 화려한 수사나 공격적 논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올바른 말로 행동과 태도를 일치시켜 보세요.
설득력은 자연스레 생길 겁니다.
진정성 있는 공감, 바른말, 그리고 행동과의 일치.
이것이 시대를 초월한 설득의 본질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진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