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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킹가위 Jun 08. 2024

비처럼 음악처럼

비처럼 음악처럼

간만에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음악을 들어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회식하고 2차로 노래방을 가면 선배들이 자주 부르던 노래들이 있다. '비처럼 음악처럼'이나 '다시 사랑한다면' 등의 노래들이다. 선배들을 팔았지만 사실 나도 좋아하는 노래다. 노랫말이 예쁜 노래의 경우에는 노래방 화면 아래에 나오는 가사가 마치 시처럼 느껴진다.


전략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김현식, <비처럼 음악처럼> 중에서



화자는 간만에 내리는 비 때문에 떠오른 당신에 대한 생각을 멈출 마음이 없다. 이별의 기억은 아프지만 이렇게라도 당신을 생각하는 순간이 화자에게는 한없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여기서 포인트가 되는 시어는 하루를 그냥 '보내요'라고 할 수 있다. 관찰자가 보기에는 하루를 보내나 하루가 지나가나 별 차이가 없다. 그냥 멍하니 생각에 잠긴 그 혹은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화자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보낸다는 화자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당신을 생각하기 위해 하루를 사용한 거다. 그냥 어영부영 지나가도록 둔 것이 아니다.


작품 마지막의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의 경우에는 문장이나 의미 구조가 꽤나 복잡하다. 간단하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음악=우리의 사랑의 이야기=흐르는 비

=너무 아픔


직유법을 통해 시어들이 얽혀 있지만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흐른다.' 것이다.


슬픈 음악은 흐르고 화자의 사랑도 부질없이 흘러갔고, 마침 비도 구슬프게 흘러 내린다. 너무 그립고 마음이 아픈데 아직 흐를 게 하나 더 남았다. 운다는 얘기는 가사에 없지만 너무 아프기 때문에 분명 '눈물' 함께 흐르고 있을 거다.


한편 음악이나 비는 작품에서 매우 바쁘다. 요즘 말로 N잡러다. 도입부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도 하고, 당신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의 역할도 함과 동시에 화자의 정서를 심화하는 일종의 객관적 상관물로도 기능한다. 시어가 이렇게 바쁘게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바쁘게 움직인 결과 그 흔한 영어 한마디 안 섞고 우리말로만 시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빈틈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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