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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Jun 06. 2020

'엄마'라고 불리는 순간

육아와 사색_37  나는 너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엄,마?"


 이틀 전부터 갑자기 보석이가 나를 비교적 분명하게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간 보석이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미끄럼틀 아래에 도착한 보석이가 나를 돌아보며 왜 자기를 따라 내려오지 않느냐는 물음을 담은 얼굴로 "엄,마?" 하고 외쳐서 나도, 함께 있던 남편도 깜짝 놀랐다.


 돌 무렵부터 '엄마'와 비슷한 발음을 듣기는 했지만 배고파도 엄마, 화가 나도 엄마 하는 불특정한 외침 같은 엄마 소리에 별다른 감동은 없었다. 그래서 TV 광고에서 아기가 "엄마" 혹은 "아빠"라고 처음 말하는 걸 보고 가족들이 환호하고 감격에 휩싸이는 장면은 꾸며낸 거구나 싶었다.


 나를 지칭하려는 목적으로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17개월 하고도 열흘이 지난, 그 날부터였다. 돌 무렵 엄마를 '말했다'면 이제는 엄마를 '불렀다'고 할 수 있다. 처음으로 의미를 담아 "엄마"라고 불려진 내가 미끄럼틀 위에서 내려다본 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한 컷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도 보석이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에게 "엄,마? 어엄마?" 하면서 일어나 거실로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다. 하루 이틀 밤 사이 갑자기 훌쩍 커버린 아이 모습에 당황스럽다.


 사실 엄마를 제대로 부르기 전에 아빠를 먼저 부르기는 했다. 하루에도 수 차례 아빠를 보고, 아빠 사진을 보고, 그림책 속 아빠를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압빠?"를 외쳤다. 저도 이 언어의 발견이 신기한지 기쁜 얼굴로 아빠를 부르고 또 불렀다. 아빠라고 알아듣게 발음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아빠와 할아버지와 판다를 모두 "빠~!"라고 부르는 기간이 있었다. 세 분 사이의 공통점은 통 모르겠으나 지금까지도 남편의 최대 경쟁자는 판다다. 보석이는 아직도 판다를 보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반갑게 "압, 빠?"라고 외친다. 엄마, 아빠 외에도 고고(가자), 곰, 밥, 물, 빠빠(빠이빠이) 정도 말할 수 있는데 꼭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과 같은 발음이다.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아이가 '엄마'나 '아빠'란 단어를 말할 때, 그것은 엄마나 아빠에 대한 감정의 표현일 뿐 어떤 종류의 개념이나 사고의 표현이 아니다. 생각하는 능력은 이런 식의 말하기에서부터 처음으로 발달한다." 

라고 했다. 보석이가 엄마 아빠를 말하고 스스로 놀라워하며 이 단어를 엄마 아빠의 실체와 연결하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하는 걸 보고서야 이 문장이 이해되었다. 막연히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마? 음마?"하고 발화하는 걸로 시작했으나 그 걸 '엄마'라 듣고 열렬히 환호하며 아기의 의도를 해석해주는 어른의 존재를 통해 아기는 '내가 엄마라고 말하면 대답하고 나를 돌아보는구나'를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이 존재가 '엄마'라고 불리는 걸 알게 되며, 추후에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엄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Photo by Anna Shvets from Pexels


 나와 남편도 보석이가 우리를 엄마, 아빠라는 단어로 지칭함으로써 비로소 진짜 엄마, 아빠가 된 느낌이다. 정체성을 잃을까 봐 염려할 정도로 '엄마'로서 기능하며 살고 있지만 실은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을 때도 많았다. 보석이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다가 화들짝 놀라는 꿈도 심심찮게 꾸었다. 남편을 봐도 그렇다. '보석 아빠'라고 불리는 저 사람은 과연 자신이 누군가의 아빠라는 사실을 완전히 체화했을까. 하지만 보석이가 스스로 나를 엄마로, 남편을 아빠로 부른 순간 우리는 완전히 보석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 이만큼 실감 나는 때가 없었다. 보석이가 내게 와서 자식이라는 꽃이 되고, 내가 보석이에게 가서 엄마라는 꽃이 되었다. 사랑에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온전히 보석이를 사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어 가슴이 벅차다.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결핍이 아이를 낳고 채워지는 경험을 했는데, 내가 어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두려웠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이기심과 자기애가 자꾸 그 사랑을 가리고, 남편을 사랑하지만 남녀 관계라는 일말의 불안정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보석이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한계도, 장애도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보석이와 대립하거나 반목하는 시기가 오고 내 사랑의 방식에 회의가 드는 순간도 오겠지만 적어도 사랑 자체가 멈추지는 않지 않을까. 엄마가 된 지 일 년 반도 되지 않은 때의 섣부른 고백이고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부모가 되는 경험은 이렇다.


 내일도 보석이가 나를 그 외국인 같은 발음으로 엄마라고 실컷 불러주면 좋겠다. 운이 좋으면 동영상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보석이의 엄마'가 되는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게 아쉽다. 글로, 동영상으로 남겨보려고 이렇게 노력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격은 깃털만큼도 담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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