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인형 Jan 13. 2020

포옹

육아와 사색 29_ 나를 안아주는 너  

 10개월 차 보석이는 요즘 "몇 개월이에요?"라는 질문보다 "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더 많이 받는다.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일견 어린이 같은 얼굴만 보고 "걸어 다니죠?"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이 걷지 못하는 덩치(?)를 시종 안고 돌아다니느라 내 고관절이 무너져 내릴 지경이다. 


 처음 신생아인 보석이를 안을 때는 가녀린 작은 새를 들어 올리는 기분이었다. (벌써 당시의 기분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작은 새라니!) 그러다 4kg, 5kg로 몸무게가 늘어남에 따라, 제법 얼굴을 내 목덜미에 묻고 따뜻한 숨결을 내뿜으면 내가 지금 '한 사람'을 안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이제 10kg에 육박하게 된 보석이는 제법 크고 무거워 안고 있으면 내 가슴팍이 꽉 찬다. 겨울이 되어 살짝 추울 때 아기의 순결한 온기가 내 몸을 덥혀주는 그 느낌은 참으로 포근한데, 3kg 내외의 깃털 같은 신생아를 안고 있었던 작년 겨울과 비교하면 지금 보석이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온기는 얼마나 더 따뜻하고 선명한지 모른다. 마치 그 온기에 내가 안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포옹'이라는 표현을 이제야 쓸 법한가 싶다.

 

                           토닥토닥 by 키 큰 나무                             


 오늘은 그런 보석이를 평소처럼 안았는데, 글쎄 요 녀석이 팔을 둘러 내 목을 감싸는 게 아닌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제 얼굴에 뽀뽀하는 걸 흉내 내는 건지, 침이 가득 묻은 입으로 자꾸 내 턱을 먹었다. 나는 간지럽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해서 녀석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아이를 낳고 나는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던 외로움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부드럽고 작은 사람을 하루 종일 내 맘대로 비비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했을 때도 매일 스킨십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큰 안정감을 줬지만 아이가 태어난 후 남편과의 스킨십에 전만큼의 감흥은 들지 않는 게 사실이다. (여보 미안...) 


 거의 하루 종일, 아기와 나는 피부와 피부로 연결되어 서로의 온기를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 성인이라면 이렇게 종일 누가 만져대는 거 싫다 하겠지만 다행히 아기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손길을 기다린다. 아기는 무력하기 때문에 만사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데다 애정 어린 스킨십을 많이 하는 게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나는 아기를 마음껏 만지도록 허락받은 것이다. 혼자가 아님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요즘, 나는 공허함이나 외로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아침이면 보석이를 안을 생각에 들떠 잠에서 깬다. 


 앞으로 보석이가 20kg, 30kg가 되면 우리는 더 포옹다운 포옹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껴안는 빈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변성기를 맞아 걸걸한 목소리를 지닌 청소년이 되면 심지어 엄마와의 포옹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어서는 간혹 포옹할 기회도 있겠지만, 나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어떤 여성과 포옹하는 것을 더 좋아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내 가슴팍에 안겨 뿜어내던 포근한 온기를 기억해낼 것이다. 10kg의 보석이가 지녔던 그 온기는, 평생 내 가슴팍에 식지 않고 선연히 남아있을 것이다. 나의 일부나 다름없는 기억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Photo by Steven Arenas from Pexels

 

 아, 잠을 포기하고서라도 이 아름다운 포옹의 감각을 고스란히 기록해내고 싶지만 내 언어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이전 09화 퇴근 후 단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