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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Dec 01. 2019

유모차 산책

육아와 사색_ 23   아기 덕분에 만나는 새로운 세상

 사람들은 유모차를 만나면 친절해진다. 유모차의 아기와 엄마에게 문을 열어주고, 길을 피해 주고, 덕담을 건넨다. 의외의 긴 대화와 연락처를 주고받는 인연으로 이어질 때도 많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에 따라 다양한 생각으로 빠져드는 즐거움과 같다. 아기 덕분에 나는 매일 여행하듯 산책을 나선다.


Photo by Humphrey Muleba from Pexels

 

 땡,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무표정으로 핸드폰만 들여다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조심조심 밀고 들어오는 유모차 속 아기를 향했다. 뽀얀 볼을 가진 아기가 영문 몰라 두리번거리는 걸 보며 굳은 표정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한두 사람이 아기를 향해 수줍게 "안녕~", "몇 살이니?"하고 인사를 건네자 적막했던 엘리베이터에 미소가 번졌다. 말 못 하는 아기 대신 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해야지~", "아직 돌도 안 됐어요."라고 대답해주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휴대폰과 신호등을 번갈아 쳐다보며 표정 없이 시간을 메우고 있었다. 유독 지쳐 보이던 여학생 하나가 문득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아기는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채색으로 그린 그림에 물감을 떨어뜨린 듯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아기나 아기 엄마인 나에게 뭐라 말을 걸진 않았지만 아기의 귀여움에 집중하느라 잠시나마 가지고 있던 수심을 잊은 표정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빵집이 있는 상가로 향하는데 바로 옆에서 또 다른 유모차를 미는 기척이 느껴졌다. 우리 아이보다 조금 더 큰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있는 할머니였다. 낯선 곳에서라도 육아 동지를 만나면 빠른 속도로 마음을 열게 된다. “몇 개월 됐어요~?”로 말문을 터서 스스럼없이 육아 생활을 공유한다. 특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를 봐주는 할머니들은 말동무를 더 반가워하는 것 같다.


 막힌 수로가 열린 듯 이야기를 쏟아낸 할머니는 삼 형제의 할머니였다. 첫째와 둘째를 키워서 각각 학교와 유치원에 보내 놓았는데 또 힘이 넘치는 남아가 태어났다고 한숨을 쉬는 할머니는 연세보다도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그렇게 힘들다 하면서도 세 명의 손주를 키워낼 수 있는 것은 아마 그가 삼 형제의 할머니여서가 아니라, 삼 형제의 엄마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 다니는 딸이 육아에 매이지 않고 자기 꿈을 펼치게 하고픈 엄마의 마음이다. 나는 그 딸이 된 양, 할머니에게 고맙고 미안해 몸 둘 바를 몰랐다.     


 빵집에서 계산을 하려는데 어떤 엄마와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이 줄을 서 있다. 유모차를 탄 우리 아기 한 번, 자기 아들 한 번 쳐다보며 그 엄마는 “너도 저만했었는데……”하고 애수에 젖는다. 자기 자식이 아기였을 때를 회상하는 엄마의 눈빛은 그 아들이나 딸이 다섯 살이든, 스물다섯 살이든 모두 같다. 반면 그 엄마의 아이는 다섯 살이든, 스물다섯 살이든 모두 한결같이 '뭐래~' 하는 눈빛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다 큰 자식의 갓난아기 모습을 떠올리며 홀로 추억에 잠기는 엄마의 마음을 이제 일부나마 알 것 같다. 우리 아이도 이제 제법 커서 돌이 되었냐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는데, 내 눈에는 아직 신생아 모습이 겹쳐 보인다. 스스로 기어가 자기 원하는 것을 잡고, 먹기 싫은 음식은 뱉어내며 분명한 자기주장을 할 정도로 자랐음에도, 목도 가누지 못해 조심스럽게 받쳐 들어야 했던 3-4kg짜리 신생아를 대할 때의 감각을 잊을 수가 없다.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된다 해도 엄마의 기억 세포는 그 강렬한 기억을 지울 수 없지 않을까? 범죄자의 어머니가 “우리 애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에요.”라고 부르짖는 마음도 아마, 자식이 무력하고 무고한 자그마한 아기였던 기억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돌아오는 길에 운동을 다녀오는 금슬 좋은 노부부를 만났다. 은퇴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정정한, 우리 부모님 뻘 되는 연세 같다. 처음에는 멀찍이서 유모차 안의 아기를 흘끔거리며 서로 말을 주고받더니,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기 손을 슬그머니 붙잡아보고는 아버지뻘 되는 분이 수줍게 말했다. “내 자식 키울 때는 몰랐어. 일만 하느라 바빴지, 이 사람 혼자 고생하고 나는 애 이쁜 것도 모르고 살았어. 지금은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안 오네. 자식들이 애를 안 낳겠대.” 부인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주책이라는 듯 남편 손을 잡아끌고 간다.     


 우리 시아버지는 군인 출신이시다. 남편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매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그랬다던 시아버지께서 지금은 손주만 보시면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다. 가끔 보석이를 맡기면 시어머니보다도 열성적이시다. 아기를 땅에 내려놓을 틈 없는 헌신 육아를 하면서 남몰래 배시시 웃음 지으시는 걸 보며 참 재미있다. 친정아버지는 은퇴하고 약간의 우울증과 같은 상태였는데, 손주를 본 후 완전히 밝아지셨다. 보석이가 외할아버지만 보면 방싯거리며 안겨서 잘 잔다고 어깨를 으쓱하시니, 덕분에 나는 종종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보러 갈 수 있다. 남편과 나는 보석이를 낳음으로써 우리 부모님에게 최고의 효도를 하고 있음을 느낀다. 내가 아무리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어온다 해도, 이런 웃음을 짓게 만들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Photo by VisionPic .net from Pexels


 그날은 덥지도 춥지도 않은 아름다운 가을날이었고, 산책길에는 단풍이 흐드러져 있었다. 마침 사람도 거의 없어 온 세상에 보석이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알아듣는지 알 길 없지만 보석이에게 단풍을 쥐어주며 가을을 말해주었다. 설명하려 하니 가을의 아름다움이 처음 겪는 것처럼 찬란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취해있다가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셀카 버튼을 눌렀다. 나와, 유모차에 앉아 있는 보석이와, 아득한 단풍 숲이 함께 나오는 셀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 사진을 찍어주느냐고 물었다. 대여섯 살 이상 되는 아이 둘을 데리고 온 또 다른 엄마였다.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줄도 모르고 셀카를 찍느라 정신없었다는 게 조금 창피했지만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가 찍어준 사진에는 나와, 보석이와, 단풍이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보석이와, 나와, 호의로운 세상이 함께하는 행복한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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