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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Nov 10. 2019

아가야

육아와 사색_ 22  

 아가. 너를 언제까지 아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벌써부터 네가 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너를 더 이상 아가라고 부를 수 없게 될까 봐 겁이 나는구나. 아가야, 내 아가야.


 오늘 아침 네가 잠에서 깨어 부스럭대더니 엉금엉금 기어 자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너의 얼굴을 내 얼굴에 비비었지. 처음 있는 일이라 나는 놀랍고, 기쁘고, 감격에 찼단다.

   

 요즘 너는 신나게 기어 다니며 놀다가 잠이 오면 나에게로 다가와 안아달라는 듯 내 무릎을, 내 가슴을 타고 오른다. 배고플 때는 울부짖으며 부엌까지 쫓아와 내 바지자락을 붙잡지. 배고프거나 졸릴 때 엄마에게 가면 해결된다고 믿는 거야. 그동안은 네가 너무 어려서, 울기만 하면 욕구가 채워지는 전자동 시스템이 아니라 '엄마'라는 대상이 너를 돌보고 있다는 걸 인식하는지 알 수 없었어. 그런데 너는 이제 나와 눈을 맞추고, 원하는 것을 요구하고, 욕구가 만족되면 방긋 웃는다. 그게 어떤 감격인지 너는 꽤 세월이 지나기 전에는 알지 못할 거다. 굳이 묘사하자면, 수백일 동안 매일, 하루 종일 지켜 서서 비바람을 막고 깨끗하게 닦은 조각품이 꿈틀 하고 움직이는 순간이랄까? 흡족한 비유를 들 수 없어 안타깝구나.


 이렇게 네가 나를 무한히 신뢰하고 전적으로 의존해주어서, 불완전한 내가 완전해지는 착각이 든단다. 나라는 사람은 사실 일관성이 부족하고, 즉흥적이고, 때로는 감정적이어서 후회하는 일도 많아. 하지만 네가 밤새 울어 한숨도 자지 못해도, 하루에 6번씩 똥 기저귀를 갈고 씻겨야 해도, 네가 없을 때 당연하게 누려왔던 크고 작은 즐거운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일관적인 좋은 엄마가 되어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리고 어떤 교육보다도 평소 내 생활, 내 말투와 행동을 네가 가장 많이 학습할 거라 생각하며 매사 조심하려 살고 있단다. 네가 내 뱃속에 있을 때, 나는 전처럼 차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거리낌 없이 무단횡단을 하려다 문득 너를 의식하고 걸음을 멈추었어. 네가 나와 손잡고 걸음마를 하여 횡단보도를 건널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생각해야 했단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 안아 달라 팔을 벌리는 너를 보며, 네가 나와 상호작용을 하고 자기주장을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분명히 다른 국면에 접어들게 될 거란 생각이 들었어. 엄마는 어쩌다 너에게 벌컥 화를 내고, 그러고 나서 미안해하며 이랬다 저랬다 변덕스러워질 수도 있겠지. 때로는 질서나 규칙을 어기기도 하고, 엄마가 원하는 바를 위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본래 완벽한 사람이 아니거든.           


 사실 엄마도 두려워. 엄마는 그러니까 지금 ‘신입생 엄마’ 정도란다. 네가 아가인 만큼, 엄마도 초보 엄마야. 이상적인 기대를 갖고 있고, 완벽하려 발버둥 치고 있지. 어떤 기준이나 규칙에서 아직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은 그 기준이나 규칙에 몹시 목을 매곤 한단다.


 엄마는 아직도 너를 포장지도 뜯지 않은 아주 값비싼 선물로 여기는 게 아닐까 모르겠다.  엄마가 포장지를 서툴게 뜯어내며 스스로 괴로워하지 않기를 기도해주렴. 포장이 어떻든 그 안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이 들어있을 거고, 엄마는 그 선물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지금보다 성숙한 엄마가 되고 싶어.


 아가. 온전하지 않은 나를 엄마로 받아들여줘서 고맙다. 태어나줘서, 나에게 엄마가 될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맙다. 네가 어떤 멋진 일을 이루지 않아도, 그냥 이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내 보물이고, 내 자랑이다. 아가야, 사랑하는 내 아가야.


Photo by Matej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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