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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형 Aug 09. 2020

아기 엄마의 두 번째 하루는 밤 열두 시에 시작된다

육아와 사색_41 잠들기엔 너무나 아까운 밤 

 하루 종일 두 살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고 밤잠을 재울 무렵이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다. 아이가 완전히 잠들 때까지 따뜻하고 포근한 아이 방에 함께 누워 있자면 무섭게 몰려드는 잠의 기운을 이기기 어렵다. 다행히 이때의 2,30분 쪽잠은 하루의 피로를 상당히 덜어낼 만큼 강력하다. 


 불현듯 단잠에서 깨어나면 밤 10시다. 나는 다시 소매를 걷어붙이고 난장판이 된 부엌과 거실 앞에 선다. 내일이 돌아갈 수 있도록 빠르게 집안을 원상 복구시켜 놓으려는 것이다. 밤 11시, 집안일이 끝날 무렵 남편이 퇴근한다. 결혼생활 3년 동안 만들어온 우리의 루틴으로 남편이 집에 오면 1시간 정도 티타임을 가지며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한다. 보석이가 태어난 후로는 대개 내가 보석이의 에피소드를 보고하기 바쁘다. 찻잔이 식을 때쯤, 함께 잠을 청하기를 바라는 남편에게는 미안하지만 잘 자라고 입을 맞추고 안방을 빠져나온다.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설레는 마음으로 서재에 들어와 문을 닫는다. 여분의 기저귀 박스와 육아용품을 쌓아두는 창고를 겸하는 서재지만, 그 구석에는 나 홀로 조용히 읽고 쓸 수 있는 책상 한 칸이 있다. 밤 12시, 드디어 나의 두 번째 하루가 시작됐다!


Photo by Burst from Pexels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책상에 앉았음에도 마음이 들떠서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음 날을 위해 너무 늦지 않게 잠도 자야 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기껏해야 1, 2시간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하다. 이 짧고 귀한 시간, 무얼 해야 만족스럽게 잠자리에 누울 수 있을까. 어떤 때는 뭘 하면 이 시간을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다 시간이 다 지나버린 적도 있다. 처음부터 글을 쓰려니 어쩐지 손이 풀리지 않고, 남이 쓴 책을 읽느라 시간을 다 써버리는 것도 탐탁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책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필사할 책과 노트를 꺼내어 명상하는 마음으로 딱, 한 바닥만 적는다. 나는 수필처럼 호흡이 짧은 글이 필사하기 좋다고 생각해서 피천득, 손광성 등 장인과도 같은 수필가들의 수필을 옮겨 쓰고 있다.


 필사는 일종의 명상이다. 필사하고 있는 내용에 온전히 집중을 기울일 때도 있지만, 정신없던 낮 시간에 눌러놓았던 것들이 부유물처럼 다시 올라올 때도 있다. 주문해야 할 생필품이나 육아용품이 생각나기도 하고, 섬세하게 펼쳐보고 싶은 새로운 글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여러 종류의 잡념을 억지로 누르지 않고 그때그때 따로 수첩에 적어둔다. 한 바닥의 필사가 끝날 때쯤이면 내 안의 부유물들은 다시 아래로 침잠하고, 노트에는 수필가들이 세공한 아름다운 단어들이 조약돌처럼 반질반질 펼쳐져 있다.


 필사가 글쓰기 연습이 된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좋은 글을 가장 능동적으로 읽는 행위가 바로 필사다. 눈으로 훌훌 보고 넘겼던 문장들을 손으로 눌러쓰면서 문장 구조와 마침표 하나에까지 고민을 기울였을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다. 몇 달 동안 묵묵히 한 바닥씩 그저 명상하는 마음으로 필사했을 뿐인데, 어느 날 글을 쓰다가 문득 내가 전혀 쓰지 않던 새로운 문체를 사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대가의 숨결이 내 글에 힘을 보태주었던 것이다. 

 

Photo by Ravi Kant from Pexels


 글쓰기이라는 창작 과정에 처음부터 진입하기는 부담스러운데 필사는 이렇게 디딤돌이 되어준다. 필사에 쓰는 노트를 덮으면, 이제 나만의 글을 쓰는 노트를 펼칠 시간이다. 생각해 둔 글감이 있으면 바로 노트북을 켜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동을 걸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내게는 줄리아 카메론의 책 <아티스트웨이>에서 배운 '모닝페이지'가 글쓰기의 시동을 거는 역할을 해준다. 줄리아 카메론은 창조성을 일깨우는 방법으로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세 쪽에 걸쳐 자유롭게 쓰도록 권한다. 검열 없이, 일종의 자유 연상을 하는 것이다. 해보니 2, 30분쯤 걸리는 작업인데 나는 아침에는 도저히 할 여건이 안 되어 아쉬운 대로 일과가 모두 끝난 자정 무렵에 '나이트페이지'를 쓰고 있다. 

  

 세 쪽의 분량을 의무적으로 채우기로 작정하고 뭐든 써 내려가다 보면, 세 쪽이 끝나기 전에 형식을 갖춘 한 편의 글로 써보고 싶은 글감을 만나곤 한다. 복잡하게 얽혀있던 내 마음이 글로 풀어지면서 형체를 갖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생각지도 못한 전혀 의외의 아이디어를 만나 반가울 때도 있다. 여기에 연재하고 있는 <육아와 사색>도,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자유 연상을 휘갈겨 놓았던 것을 하나씩 정리하는 작업이다. 


 이때쯤이면 사실, 책정했던 1, 2시간은 훌쩍 지나있다. 나는 이제 욕심을 버리고 서재의 불을 끌지, 노트북을 열어 새 워드 파일을 열지 결정해야 한다. 나는 글을 쉽게, 빠르게 써 내려가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나 외에 타인이 읽을 것을 고려하면 쓴 글을 고치고, 또 고쳐도 어쩐지 아쉬워서 입맛을 쩝쩝 다시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퇴고를 거듭하며 글을 쓰는 날은 새벽 3시도 훌쩍 넘겨버린다. 4시간도 못 자고 다음 날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나는 점점 더 각성하는 기분이 들어 쉽게 노트북을 닫지 못한다. 산을 오르기 전에는 엄두도 안 나지만 어느 정도 발걸음에 탄력이 붙으면 힘든 줄도 모르고 점점 빠져들게 되는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분출하기 때문이다. 


 오롯이 혼자 존재하는 이런 시간이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러니까 시간이 넘쳐흐를 때는 미처 몰랐다. 그때는 범람하는 시간을 가지고도 고마운 줄 몰랐고 활용할 줄 몰랐다. 그 많던 시간의 대부분이 박탈되고 나서야 나는 남아있는 한 줌의 시간을 움켜쥐려 잠을 기꺼이 포기하는 두 번의 하루를 살고 있다. 


Photo by Mike from Pexels


 돌이켜보면 보석이가 태어나고 나서 나를 위해 주어진 시간의 양은 절대적으로 줄었지만 완성된 글은 오히려 많아졌다. 보석이가 태어난 덕분에 나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집중력을 끌어올려 짧은 시간 동안 중요한 일을 먼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시간에 무엇보다 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보석이의 탄생은 나에게 엄마라는 새 자아를 만들어준 동시에, 기존의 자아를 더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만들어 준 사건이었다. 


 이제 오늘의 두 번째 하루도 여기서 마무리해야 한다. 노트북을 닫고 서재를 나와 잠든 보석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다시 엄마의 옷을 입지만, 하루가 24시간보다 좀 더 길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금방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마침표를 찍어야 할 의무가 있는 덕분에 이 글을 완성할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의 하루도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리라. 어쩔 수 없는 미련은 불 꺼진 서재에 남겨두고, 내일은 어떤 새로운 글감이 나를 찾아올지 기대하며 잠을 청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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