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100억이 있다면
<호>
오늘도 나는 걷는다.
멍~ 때리고,
멍 ~때리며,
메세타 평원을 뚜벅뚜벅 걷는다.
늦가을 평원이라 수확이 끝난 텅 빈 구릉만 바라보며 걷다보니
또 하릴없이 하루종일 머리가 (고차원적 생각보다는)
온갖 잡생각들이 들고난다.
그 중에 하나가 이거다.
만약... 나에게 100억이 있는데 살 날은 얼마 없고, 말 안듣는 말썽꾸러기 아들이 있다고 치자.
이 녀석에게 유산을 조금이라도 물려주고 싶다면?
그 방법 중 하나가 이러면 어떨까.
매년 프랑스길 까미노를 완주하고나서
완주증명서를 받아오면 1억씩 주는 것이다.
800km를 무조건 두 발로 걸어서 다녀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1년중 36.5일(교회에서 말하는 십일조 개념으로)
정도를 투자하고 1억이 생긴다면?
그럼 어떻게든 돈을 받을 욕심으로 산티아고길을 죽어라 걷고,
그 결과 많은 생각과 자그마한 깨달음이라도
얻지 않을까?
매년 한번씩 걸어서 30년을 걸으면 30억원을 준다는데,
이걸 마다할 순 없지 않을까? 하핫!
(그냥 상상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받는 입장이 아니고 주는 사람 입장에서. ㅋㅋ)
오늘도 지평선이 닿을 듯한 대평원 한가운데,
적요 속에서 이런저런 멍상에 빠져본다.
랄랄라 산티아고길을 절뚝절뚝 걸으며.
나에겐 100억은 커녕
계속 달래야 하는 두 무릎과
이런 멍~상을 알 리 없는 '히'가
마냥, 묵묵히
부엔 까미노 길을 1m씩이라도 줄여나가고 있다.